만년필을 사게 된 이유

올해 연간 프로젝트 중 가장 공을 들였던 것 중 하나가 드디어 끝났다.

너부 비싸지도 않고, 너무 싸지도 않은 것 중에서 하나 골라 '나에게 주는 선물'을 하고자 했다. 그렇게 내가 고른 것은 만년필과 잉크! 

글은 써야 늘고, 직접 종이에 글씨를 한자 한자 쓰는 것이 글쓰기 실력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 키보드로 쓰는 글은 아무래도 깊이에 있어 손글씨만 못하다는 것이 내 생각. 하지만 생각보다 손글씨 쓰기는 여간 공이 들어가야 하는게 아니고, 조금만 귀찮아도 우선순위에 밀려 잘 쓰지 않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만년필이라는 것이 아주 오묘한게, 글씨를 막 쓰고 싶게끔 만들어주는 능력이 있다. 만년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명언이나 유행가의 가사를 쓰는 일은 아주 흔하다. 써야 할 컨텐츠는 없지만 그래도 막 쓰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오르는 것을 대신 해결해주니까. 

그만큼 만년필은 뭔가를 쓰게 만드는 능력 하나만은 인정하는 바이다. 메모를 통해 다양한 사고를 필요로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만년필은 그의 생각에 날개를 달아주는 역할을 충분히 해줄 것이다. 


파이롯트 커스텀74를 선택한 이유

작년 이 맘때쯤 만년필 필기를 시작했다. 시작은 아주 대중적인 만년필로 알려진 라미(LAMY)사의 사파리(safari)라는 브랜드의 만년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약 3~4만원 정도에 살 수 있는 저가형 만년필이다. 값이 싸다고 질이 떨어지지 않는다. 독일제의 라미 만년필은 만듦새나 필감이 가격에 비해 성능이 월등히 뛰어난 이른바 가성비가 좋은 제품이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 라미 사파리 만년필은 촉이 스틸로 구성되어 있다. 만년필을 많이 써본 사람들은 스틸이 아닌 금 촉을 썼을 때 필감이 색다르다는 평을 한다. 그 궁금증이 나로 하여금 만년필을 또 사게 만든 것이다.


파이롯트사의 커스텀74는 우리나라에서 구입할 수 있는 금 촉의 만년필 중 가장 저렴한 편에 속하는 만년필이다. 비슷한 일제 브랜드로는 플래티넘이나 세일러가 있으며, 가격대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사실, 내가 정말 원했던 브랜드는 독일의 '펠리컨'이라는 브랜드였으나, 가격이 비싸 눈물을 머금고 나중을 기약하기로 했다.


이리저리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일제 만년필 중 가장 가성비가 좋은 녀석이 뭘지 한참을 돌아봤다. 그리하여 낙점이 된 것이 바로 파이롯트 커스텀74. 그 중에서도 SF닙이라 하여 경성 만년필에 연성의 느낌을 더 했다고 하는 그런 촉으로 선택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낭창낭창한' 느낌을 마구마구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제 만년필이 워낙 세필이라 굵기에 있어 내가 원하는 느낌의 굵기보다 한단계 더 굵은 걸 선택하라는 조언을 따랐다. 


나의 커스텀74

인터넷에서 일본 구매대행을 해주는 사이트에서 8만9천원을 주고 샀다. 결제일에서 배송을 받은 날까지 휴일 포함 6일만에 도착했으니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어 좋았다. 


드디어 만년필 개봉박두!! 가장 설레는 시간^^


박스를 열어보니 검은 만년필의 자태가 비닐에 쌓여져 있다. 


펜 뚜껑에는 SF닙이라는 표시의 스티커가 붙어 있었고, 검은 색 바디와 금색 장식이 아주 멋드러지게 어울린다.


내가 커스텀74만년필을 사게 된 결정적인 이유! 바로 금으로 만들어진 닙(nib). 역시나 고급스러움이 한껏 내뿜어진다.


이번에는 내가 가지고 있던 라미 사파리 만년필과 비교 샷! 바디의 전체 길이는 라미 사파리보다 살짝 긴 느낌이다. 그리고 두께는 살짝 두꺼우며, 광택이 흐르는 게 라미 사파리보다 훨씬 고급스러움이 느껴진다. 


이번에는 기본적으로 들어있던 검은색 카트리지를 장착하고 라미 사파리 펜과 글씨를 비교해봤다. 연성느낌의 SF닙이라 그런지 아직 글씨를 쓰는데 여간 어색한게 아니다. 원래 잘 쓰지도 못하는 글씨가 더욱 꼬부랑 글씨가 된다. 역시 이 '낭창낭창하다'는 느낌은 실제로 써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글씨를 쓸 때 힘을 주면 저렇게 닙이 살짝 벌어져 글씨가 굵어진다.


글씨 두께는 라미와 파이롯트 펜 사이에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주 살짝 커스텀74 펜이 굵다고 볼 수 있으나, 실제로 그 차이를 확연하게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일제 만년필이 가늘게 나온다는 뜻이리라.


그리고 이번에 만년필과 같이 사게 된 파이롯트 이로시주쿠 잉크. 잉크병의 생김새가 워낙 이뻐서 선택을 하기도 했지만, 역시나 사기로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잉크의 색이다. '심해'라는 이름을 가진 잉크의 색은 이름 그대로 깊은 바다의 푸름을 나타내는 색이다. 


잉크를 살 때, 검은색도 아니면서, 푸른 색도 아닌 것을 사고 싶었다. '남색'의 느낌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색이 오묘해 계속 쓰고 싶게 만드는,, 그런 느낌을 원했다. 하지만 너무나도 시필을 해보고 싶어 검은색 카트리지를 끼기도 했고, 잉크를 담을 컨버터도 아직 구매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 저 잉크를 써보는 것은 좀 기다려야 할 듯 하다.



총 평

10만원도 안되는 가격에서 이런 고급스러움을 낼 수 있어 정말 만족한다. 금으로 된 닙의 부드러움과 낭창낭창함을 경험하게 된 것은 정말 행복 그 자체이다. 이 펜으로 많은 이야기를 써 나가야 겠다. 


최근 글로벌 IT트렌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중, 여행업계에 조금씩 들어오고 있는 새로운 기술, 챗봇에 대한 아이디어를 정리했다.

 

# 고관여제품/상품 (High Involvement Product)

고관여상품은 보통 고가의 상품에 해당한다. 해외여행은 싸야 수십만원에서 시작하고거리와 시간이 늘어날 수록 비용이 늘어 수백만원에 이르는 상품도 무수히 많은 시장이다. 그리고 고관여 상품은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릴 경우, 소비자에게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해외여행상품을 구매했는데계획된 일정을 빼먹는다거나, 예정된 숙박시설의 등급이 아닐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고관여 상품은 구매 하기 전에 정보탐색에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구매자는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심사숙고해 결정하게 된다해외여행을 가기 전에 많은 소비자들이 블로그에 올라온 평판을 찾아보고, 다양한 여행 상품 검색을 통해 종합적으로 분석을 하고 나서야 구매를 결정하게 된다.

 

전통적인 고관여제품인 자동차


#1. 컨시어지 서비스 

고관여 상품을 구매함에 있어 보다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해당 정보들을 취급하는 산업이 발생하기도 한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비즈니스로는 웨딩 플래너, 자산관리 컨설턴트 같은 것이 있다. 여행업계에서는 '플래너', '컨설턴트' 라는 용어보다는 '컨시어지' 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컨시어지(Concierge)는 프랑스어로 중세시대 성에서 머물면서 초를 들고 방문객을 안내하는 '촛불 관리자(le comte des cierges)'에서 유래된 단어로, 쉽게 말해 '건물의 관리인'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에 와서는 호텔 로비에 상주하면서 고객을 맞이하는 것부터 짐을 들어주거나, 여행에 필요한 교통, 관광, 쇼핑, 음식점 안내 및 예약, 고객의 불편사항 해결 등 객실서비스 전반적인 관리를 맡고 있는 직원이나 서비스를 컨시어지라고 칭하고 있다.

보통 호텔업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여행상품을 구매함에 있어 적절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적합한 상품을 추천해주는 '여행 컨시어지' 서비스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여행 컨시어지란, 기업과 진짜 고객의 정보가 혼합된 요즘같은 정보과잉 시대에서 해당 분야의 믿을 수 있는 전문가를 통해 여행상품과 서비스 만족도를 높이고 성공적인 소비를 위해 존재하는 역할이 될 것이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2. 챗봇의 출현과 성장 

우리 회사에서는 작년부터 모바일에 관심을 보이고 있고, 그로 인해 나에게는 모바일 관련 프로젝트가 주어졌다. 그런데 나는 이 전까지 마케팅 업무를 주로 담당했었고, IT직군에 대한 조그만 이해와 지식이 매우 부족한 사람이었다. 업무를 맡게 되면서 나름대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는데아직까지 알게 된 것이라곤 업무를 하기 위한 최소한의 대화가 겨우 가능한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지금부터 하는 얘기들은 전문가가 아닌 초보자의 허황된 공상 수준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점.

페이스북 최고경영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지난 4월 연례 개발자 회의 기조연설에서 챗봇 플랫폼과 이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엔진 등 개발 도구를 공개했다. '챗봇(chatbot)'이란 채팅로봇, 즉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을 말한다저커버그는 챗봇이 페이스북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했다. 구글이나 네이버의 핵심 서비스인 검색을 메신저가 대신하게 되면서 메신저 위주로 시장이 재편될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머지 않은 미래에서는 사람들이 검색엔진을 통해 필요한 것을 직접 검색하기 보단 점차 메신저를 통해 질문하는 방식으로 필요한 정보를 얻게 될 것이다

 

"페이스북의 미래는 메신저에 있다" by 주커버그


#3. 여행 챗봇의 현재 

KLM네덜란드 항공은 올 3월 챗봇을 도입해 여행일정 확인부터 체크인 알림, 항공권 발권, 예약 변경 관련 고객 응대를 처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툴은 바로 앞서 언급한 페이스북 메신저봇이다. KLM은 인공지능 승무원을 공개한 첫 달에만 11 5천명의 고객이 이용했다고 한다

 

KLM 항공의 챗봇


호텔 예약 서비스를 제공하는 부킹닷컴에서도 챗봇 출시 계획을 밝혔다. 호텔의 체크인, 체크아웃 시간부터 엑스트라 베드 추가 사용 여부 등 간단한 질문들을 처리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질문들은 사용자들의 언어에 맞춰 자동 번역까지 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호텔 리셉션 직원이 영어로 고객에게 메세지를 보냈는데 예약자가 한국인이라면 예약자의 챗봇에는 한국어로 해당 직원의 메시지가 번역돼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4. 여행 챗봇, 아직은 멀었다.

올해 구글의 알파고가 딥 러닝의 인공지능으로 바둑계의 천재 이세돌과 붙어 승리를 한 것이 꽤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사람들은 김칫국을 마셔가며 영화 '터미네이터'와 같은 세상이 올 것이라 떠들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 바둑이라는 게임에 한해 사람을 뛰어넘었을 뿐이다

챗봇도 이제 막 발걸음을, 아니 말문을 뗀 상태다간단하고 정형화된 질문에는 답을 할 수 있겠지만 아직 여행상품에 대한 상담을 해줄 정도는 아닌 것이다떠나고 도착하는 시간과 장소가 정형화된 항공권 구매나 호텔 예약의 경우에는 챗봇이 해당 상품을 추천할 수준은 된다. 하지만 여행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누구와 가는지, 어떤 목적으로 가는지 등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감성적인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다

 

천재바둑기사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


#5. 여행 챗봇, 어떻게 이용할까?

인공지능을 이용한 순수한 챗봇을 쓰는 것에는 아직 한계가 있다면, 그런 미래가 오기 전까지 챗봇에는 인간의 개입이 필요하다다시 말해, 단순한 정보 처리는 지금의 챗봇이 대신해주면서, 맥락(Context)을 필요로 하는 수준이 되면 전문 상담원이 넘겨받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일 인천에서 출발해 LA로 가는 비행기를 예매하고 싶다"라는 문장을 받았다면 이 문장에서는 출발일, 출발지와 목적지가 언급되어 있다. 기본적인 항공권 검색을 위해서는 몇 명인지, 왕복여부, 여행기간 정도의 정보만 더 알아내면 자동으로 상품을 검색해서 추천해줄 수 있다. 이는 현재까지 나온 챗봇 서비스에서 일부 적용되어 있는 알고리즘이다.

하지만 다른 예로 "세부와 보라카이 중 어디가 여행하기 더 좋나요?"라는 질문에는 '좋다'라는 사람의 주관적인 감정을 얘기해야 하고, 여행지에 대한 가치 판단을 스스로 할 수 있어야 답을 할 수 있다. 오늘날의 기술로 기계가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현재 존재하고 있는 콜센터의 상담 매뉴얼을 분석해 챗봇의 예상 커뮤니케이션을 부분적으로 자동화시키는 과정이다. 개별적인 고객에게 최적화된 상품을 추천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질문들이 필요하다. 이런 질문을 정형화시키고, 필요한 정보를 얻는 단계까지는 기계가 사람을 대신해줄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먼저 거친 후에, 인적 상담이 필요하면 연결해주는 제안을 고객에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면 상담원들은 챗봇에서 얻어진 기초적인 정보들을 바탕으로 소모적인 정보 취득의 단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이 단계부터는 상담원의 역량과 가치판단에 의한 정보 편집이 일어나고, 고객은 전문가에게 보다 다양하고 비정형 상태의 질문과 답을 얻을 수 있다.

 


#6. 왜 문자로 서비스를 해야 할까?

나는 앞서 이 서비스의 명칭을 '컨시어지'라고 정의했다. 호텔에서 사용되는 전통적인 컨시어지 서비스의 고객 접점은 대면 서비스이거나 전화 서비스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컨시어지 서비스를 챗봇을 통한 메신저 서비스로 알아보았다. 왜 전화가 아닌 문자인가? 에 대한 답을 이 단계에서 말해보고자 한다.

 

현재 우리 항공본부에서는 B2B 대상으로 전화 컨시어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전화 컨시어지 서비스의 주된 목적은 우리 직원들이 근무하는 시간과, 세계 각지로 나가 있는 고객들이 여행사를 필요로 하는 시간이 맞지 않는 순간이 많다는 점에서 시작되었다. 외주로 전화 컨시어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우리 회사가 근무하는 시간외의 모든 콜을 응대해줘 고객과 회사의 접점 가능 시간의 공백을 메꿨다. 지금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의 강점은 즉각적인 응대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화를 사용하기에 한번에 한 명의 고객만 상대할 수 있다는 점이 한계점으로 작용한다. 전화 콜이 많으면 많을 수록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상담원이 많이 필요하게 된다. 하지만 문자로 응대를 하게 된다면 한 명의 상담원이 여러 문자를 동시에 응대할 수 있게 된다

 

해외에서 우리 고객이 여행사의 컨시어지 서비스를 급하게 원할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럴 때 해외에서 국내로 전화를 하기 위해서는 국제전화비용을 고객이 부담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데이터를 이용한 문자를 이용할 경우, 전화를 사용할 경우보다 적은 비용의 데이터비용이 발생한다. 또는 고객이 와이파이가 되는 장소에 있을 경우 데이터비용은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서로 톡하는거 아냐?


젊은 세대들은 모바일을 이른 나이부터 경험하면서 사람을 직접 상대하는 전화보다는 데이터를 이용한 문자 대화에 더 친숙하게 느끼고 있다. 심지어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오면 거부를 하고 문자에만 반응하는 '폰포비아'세대라고 불릴 정도로 문자 의존도가 심하다. 이들에게 다가서기 위해서라도 문자 서비스는 활성화되어야 한다. 물론 중장년층의 기존 고객들은 전화 서비스에서 더욱 만족도를 느낄 것이다. 하지만 이들도 해외에서는 국제 전화비를 부담하면서까지 전화 응대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꺼려질 것이다.   

 

#7. 챗봇의 미래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우리는 가장 빠른 변화의 중심에 살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의 휴대폰이 이렇게까지 발전하리라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아마 앞으로의 10년도 마찬가지이거나, 어쩌면 더 빠른 변화를 목격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거 알면 최소 아재


30년 전에 전격Z작전이라는 미드가 유행을 했다. 거기 나온 차는 자율주행이 가능하고, 주인공과 대화가 가능한 인공지능을 갖추고 있었다. 주인공은 차를 부를 때, 손목에 있는 스마트워치를 향해 명령을 하면 된다. 여기에 나온 기술들은 어떠한가? 30년 전에는 그저 막연한 꿈에 불과했던 것들이 현재 시점에서는 점점 현실이 되어가는 중이다.

챗봇의 미래도 이와 같을 것이다. 앞으로는 여행 상담과 고객의 주문을 처리하기 위해 많은 노동력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올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고용에 대한 불안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내 직업을 기계로 대체하면 어떡하지? 라는 고민을 하는 것이다.

챗봇이 발전하게 되면 당연히 지금껏 사람이 해오던 일을 기계가 상당수 처리를 해줄 것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예측만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단순업무를 기계에게 위임함으로써 비로소 우리 인간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창조적인 활동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1. 송출객은 늘었으나 이익은 줄었다
얼마 전 모두투어의 2분기 실적이 발표됐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각각 37억원, 36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9%, 13% 떨어졌다. 하지만 내국인의 해외출국자 수는 연간 1,700만 명이 넘어갈 것으로 예상되며, 모두투어 또한 지난 7월 최대 해외여행객 송출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15만 2천명 (현지투어와 호텔 포함)의 해외여행판매를 기록하며 전년동기 대비 33%의 성장을 했다.

전체 여행시장은 성장하고 있고, 모두투어도 그에 맞춰 송출객은 늘고 있으나 수익은 점차 감소하고 있는 형세다. 여행상품에 대한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조금 더 깊게 바라보면 여행상품 중 패키지 시장이 정체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여행사는 전통적으로 패키지로 구성된 여행상품을 기획하고, 고객이 현지에 대한 정보를 쉽게 접하기 어려운 점에서 수익을 발생시켰다. 하지만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소비자들은 현지에 대한 정보를 더 이상 여행사에 의존하지 않게 되었고, 국내 시장이 아닌 글로벌 마켓에서 여행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합리적인 소비를 하고자 하는 행동이 따라오게 된 결과다.

#2. 답(FIT시장)은 정해져있고, 너는 대답(신규 시장 진입)만 하면 돼?
패키지 시장이 정체되었다면, 여행사의 미래 먹거리는 무엇일까? 그에 대한 답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나와있었다. 바로 FIT(개별자유여행) 시장이다. 대규모 패키지 수요를 창출해 공급원가를 절감하는 규모의 경제로 운영했던 여행사들은 FIT시장에 대한 진출을 시도한 것은 꽤나 오래된 일이다. 하지만 기존의 관성에 의해 FIT시장을 제대로 공략한 여행사는 전무했다. 패키지에 비해 자유여행은 품은 더 들고, 수익은 저조했다. 조직개편 시즌이 오면 매번 여행사들은 개별여행사업에 대한 조직을 만들었다 해체하는 것을 반복했다. 미래의 먹거리가 FIT라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성공할 수 없다는 생각이 업계 전반에 자리잡게 되었다. 



#3. 플랫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BM)
비즈니스 모델이란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어떻게 소비자에게 제공하고, 어떻게 마케팅하며,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 하는 계획 또는 사업 아이디어를 말한다. 오늘날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설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비즈니스 모델이 사업의 시작 단계에서 사업의 목표를 정확히 규정하는 설계도의 역할을 수행해 비즈니스의 성공 가능성을 높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이 기업활동의 중심에 서기 시작하면서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이 주목을 받고 있다.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들은 타 비즈니스 모델과는 다른 몇 가지 특징을 보이고 있다. 충분한 규모의 구매자나 판매자를 확보하는 것은 기본 특징이다. 통상 비즈니스 규모의 경제를 가질 때 수익성을 확보하는데, 플랫폼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좋은 창구인 것이다. 이 중 상거래형(commerce) 비즈니스 모델은 다양한 상품 공급자와 수요자들이 만나는 상거래 모델과 사이트를 플랫폼으로 운영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말한다.

#4. 현지투어 서비스 플랫폼 런칭
작년에 업무혁신기획팀의 프로젝트 중 하나로 '현지투어 서비스 플랫폼'을 기획하는 작업을 수행했고, 10월달에는 현지투어 서비스를 런칭하게 되었다. 현지투어 상품은 모두투어에서 직접 상품을 기획하여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랜드사(공급자)가 상품을 기획해 직접 사이트에 노출시키고, 고객이 공급자에게 해당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다. 모두투어는 현지투어 상품을 판매하는 플랫폼을 제공하고, 공급자에게 판매에 따른 커미션을 수익모델로 삼고 있다.

기존 패키지 시장은 여러 단품 구성요소들을 하나의 단체로 구성하고, 해당 단체에 여러 주문을 연결시켜 상품을 운영하는 구조다.  즉, 공급자인 모두투어가 상품을 설정하고 그 하위에 해당 상품의 출발일에 따라 여러 단체를 생성해둔다. 단체에 주문을 받고, 같은 단체에 모인 여러 주문예약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현지투어는 단체를 기반으로 하지 않고 아이템을 기반으로 한다. 상품을 설정하고 그 하위에 단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상품은 곧 아이템으로 처리되며, 아이템에 대한 주문이 먼저 발생하고 해당 주문에 의한 단체가 생성되는 시스템이다. 너무 어렵게 설명했는데, 쉽게 얘기하자면 '현지투어' 상품은 온디맨드(On-Demand) 상품이라고 정의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5. 온디맨드 (On-Demand)
온디맨드는 말 그대로 수요(Demand)에 초점을 맞춘 서비스로 소비자가 원하면 언제든지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 포인트다.여행&숙박에는 다양한 레저 등을 만들어서 등록 및 예약할 수 있는 프렌트립, 마이리얼트립, 가자고가 있고, 숙소를 예약할 수 있는 코자자, 여기어때, 야놀자 등이 있다. 이들은 상품 자체를 하나의 컨텐츠로 다루고 있다. 이제 여행은 더 이상 공장에서 찍어내는 획일적인 상품이 아니라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캐치하고, 그것을 컨텐츠로 만들어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컨텐츠는 다양한 셀러가 참가해 자신만의 컨텐츠를 구성할 수 있는 플랫폼 위에서 구현될 수 있어야 한다. 여행사 직원들은 더 이상 자신이 스스로 상품을 기획하고 구성해 모객을 하는 데 힘을 쏟을 것이 아니라, 셀러들이 올리는 컨텐츠들을 소비자가 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MD기능을 수행하게 되어야 한다. 

여행 MD는 소비자가 원하는 컨텐츠를,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방식은 세계적인 온라인 여행 그룹인 '프라이스라인'의 역경매 방식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프라이스라인 그룹의 시가 총액은 618.8억 달러(약 67.8조원)이다. 국내 시가총액 2위인 현대자동차 (약27.8조)보다 30조원이나 크다. 지난 해 프라이스라인 그룹이 벌어들인 총 수입은 92억달러 (약 11조원)이다. 프라이스라인 그룹에 속한 아고다, 부킹닷컴, 카약과 같은 굵직한 여행 관련 서비스들을 합친 금액이지만 말이다. 

#6. 프라이스라인 
호텔과 항공사들은 일부 예약된 고객들을 제외하고는 남는 객실이나 항공권들은 시간이 지나면 그대로 소멸되고 만다. 프라이스라인은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 그대로 소멸되는 서비스에 관심을 두었다. 이렇게 서비스를 소멸시키느니, 호텔이나 항공사 입장으로는 저렴한 가격에라도 넘기는 것이 이익이 된다. 그래서 이들 기업들이 남는 재고를 프라이스라인에 넘기면, 프라이스라인이 이 서비스가 필요한 고객들을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프라이스라인은 물건을 내놓고 소비자가 가격을 부르며 필요한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가격이 상승하는 기존의 경매방식과는 정반대의 역경매 방식을 취하고 있다. 즉 소비자가 먼저 원하는 가격을 제시하면 공급자가 이 기준에 맞춰 가격을 낮춰 판매하는 방식이다. 프라이스라인에서 소비자가 원하는 여행지의 숙소와 등급, 가격 등을 설정하면, 프라이스라인 프로그램이 그 조건에 맞는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하고 소비자는 결제하는 방식을 띄고 있다. 

Name Your Own Price라는 슬로건으로 다른 여행 중개업과는 다른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소비자들의 만족을 극대화하고 프라이스라인은 공급자와 소비자를 연결시키는 플랫폼을 통해서 수익을 가져가는 구조로 되어 있으며, 전 세계의 소비자들이 프라이스라인이 제공하는 이러한 역발상의 서비스를 누리고 있다.


#7. 여행사의 미래는 무엇인가?
지금까지의 대형 여행사들은 공장에서 찍어내듯 상품을 만들어내고, 전국의 대리점을 통한 간접판매로 대규모의 물량을 확보해 수익을 창출해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더 이상 공장에서 찍어낸 상품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대리점을 통한 상담보다 온라인에서 직접 정보를 구하고 구매까지 이어지는 행동으로 변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우리 회사를 비롯한 여행사가 앞으로 어떻게 변해야 할지 몇 가지 키워드들을 통해 알아보고자 했다. 

Target
패키지 시장이 단숨에 시장에서 지는 별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도 많은 소비자들은 자신의 발품을 팔아 정보를 구하는 대신 여행사를 통해 합리적인 소비를 하려고 한다. 하지만 패키지 시장의 성장은 더디거나 줄어들게 될 경향이 크다. FIT시장은 아직 떠오르는 시장이고, 여행사들은 이 고객들을 확보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FIT 시장의 주요 고객들은 패키지 시장의 고객들보다 상대적으로 젊다. 그들은 인터넷을 어렸을 때부터 접하고 자랐으며, 스마트폰의 출현으로 인해 모바일 시장에서 큰 구매력을 가진 집단으로 성장했다.

Market
모름지기 '시장'이라는 곳은 다양한 판매자와 다양한 소비자가 만나 소비자가 원하는 물건을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온라인에서 시장을 구성하고 소비자들이 보다 쉽게 상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돕는 장소를 '플랫폼'이라고 한다. 그리고 다양한 판매자와 소비자가 만나 온라인에서 거래하는 산업을 'e-커머스'라고 한다.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서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 곳에서 판매를 해야 한다. 

Solution
온라인 플랫폼에서 많은 판매자와 소비자들을 불러와 활성화가 된 시장이라면, 소비자들에게 보다 합리적인 소비를 촉진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주어야 한다. 기업은 항상 '고객 중심 사고'를 해야 하고, 이것이 요새는 '온디맨드'라는 말로 치환되었다. 고객에게 상품을 제시해주는 방법 중 하나로 프라이스라인의 '역경매 방식'을 언급했다. 하지만 프라이스라인은 이런 역경매 방식의 비즈니스 모델을 특허화했다. 남들이 함부로 따라하지 못하게 제한을 걸어두었다는 것이다. 만약 새로운 솔루션을 기획하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시킬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 나온다면 그 기업이 제 2의 프라이스라인이 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여행사의 미래는 대충 이렇다. 기존의 판매방식을 엎어야만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기술한 내 생각에도 아직 오류와 모순이 많이 존재한다. 그래서 이 논의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더 넓게 다루어져야 한다. 부족한 생각이라 많이 부끄럽지만, 우리 회사를 비롯한 여행업계가 더 나은 미래를 맞이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글을 쓰게 되었다.



작가 천명관

먼저 천명관이라는 작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고래>라는 이 소설은 천명관 작가가 어떤 인물인지 모른 채로 읽는다면 소설을 읽는 내내 당혹감이라는 감정이 생길 수도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기껏 소설을 읽는데 무슨 당혹감 씩이나 느끼려나 하며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역설적인 말로 들리겠지만, 이 소설은 소설이 아닌 소설이다. 이건 또 무슨 말이냐고? 조급해하지 말고 이야기를 더 들어보시라. (소설 <고래> 중에서 이렇게 작가가 직접 독자들에게 말을 거는  순간이 있어 오마주를 해보았다.)

우리는 학창시절, 소설의 시점에 대해 배운 것을 기억할 것이다. 1인칭 화자 시점, 3인칭 관찰자 시점, 전지적 작가의 시점 등. 이 이야기는 전지적 작가가 관찰자의 시점으로 그려진다. 이 말인 즉슨, 작가는 우리에게 마치 옛날 옛날 구전으로 떠돌던 이야기를 아주 재밌게 풀어내는 것처럼 얘기한다. 하지만 작가는 얘기를 전하는 순간 순간마다 주인공과 주변인물들을 좌지우지하는 신의 입장이 되기도 한다. 학문적으로 봤을 때는 내 해석은 짝퉁이고, 거짓말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일단 이 소설이 전형적인 소설의 형태가 아니라는 것을 아주 과장해서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천명관 작가는 소설을 쓰기 이전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였다고 한다. 그러한 이력 덕분인지, 그의 소설은 마치 영화를 보듯이 세밀한 장면 묘사가 뛰어나다. <고래>에서도 이야기 위주의 시나리오 기법을 엿볼 수 있게 하며, 여타 소설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천명관의 인터뷰

"난 시인이 부러운데. 소설가는 구차하게 사는 거에요. 멋있는 걸 포기하고 길게 쓰는 거죠. 저는 다시 태어나면 3분짜리를 할 거야.

3분짜리 뭐요?

음악."

한 잡지에 실린 천명관 작가의 인터뷰 중 일부를 발췌했다. 예술은 다양한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하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비슷하다. 음악, 미술, 문학. 이것들은 창작자들이 고통을 감내해가며 만들어낸 것들이고, 그것들에는 창작자가 하고픈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그리고 대중은 창작자들의 작품을 보고 감동하고, 재미를 느끼는 등 마음에 동요를 일으키는 순간을 경험한다. 그런 면에서 이 인터뷰는 천명관이라는 작가가 자신의 업을 예술을 대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고, 장르를 넘어선 다른 예술들도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통찰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천명관 작가는 한국 소설이 본래 가지고 있는 엔터테인먼트의 기능을 잃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소설을 많이 읽는다. 물론 인기있는 소설은 대부분 장르 소설이지만, 영화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영화는 비주얼로, 소설은 스토리로 착실히 나아가고 있다. 할리우드에 이야기를 공급하는 건 다 소설이다. 최근 할리우드의 변화는 만화에서 가져온다. 만화를 실사로 재현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야기꾼들은 또 다시 어디로 가고 있느냐, '미드'로 갔다. 당대 최고의 이야기꾼들은 지금 다 미드 쪽에 있다. 미드를 발전시키고 있는 것도 스토리 즉, 소설이다. 그런데 한국 소설은 이도저도 아니다.

천명관에게 <고래>가 어떤 소설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세상에 대해 할 이야기가 없는 인간이 원고지 2천 매를 쓰라는 미션을 받았을 때 쓰는 소설이라고. 작가에게 에세이를 요구하는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글을 잘 쓰는 전문가들이 많다. 인생은 김난도, 여행은 한비야, 정치는 김어준, 요리는 박찬일.. 작가가 굳이 여기 끼어들이서 경쟁한들 이길 수 있겠는가?


천명관의 인터뷰까지 보고나면 그가 어떤 생각으로 <고래>를 집필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고래>가 왜 그렇게 유독 다른 소설들과 다르다는 것인지 대강의 느낌은 올 것이다. <고래>는 시대적으로 3대에 가까운 시기의 서사를 그려내고 있는데, 그 구조가 매우 탄탄하고 흐름이 유려하다. 이 소설을 요약하고자 든다면, 그 어느 하나 버려야 할 사건들이 없고, 줄여도 될 표현들이 없다. 단언하건대, 이 소설은 결코 영화화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만에 하나 영화화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망할 것이다. 455페이지에 달하는 대서사를 단 2시간 내외의 영화로 표현해낼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들과 표현들이 함축되고, 묵살되어버릴 것이다. 진정한 <고래>는 없어지고 관객은 앙상한 뼈만 남은 형태를 보며 공룡을 상상해내듯이 영화를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스토리는 : 1부

이 소설은 크게 3부로 나뉘어 있다. 극 중 등장인물이 많은데 확실히 이름이 나오는 인물은 이 소설의 주인공 격인 금복과 그의 딸 춘희다. 소설의 시작은 감옥에서 나온 춘희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에서 시작한다. 춘희란 인물은 왜 감옥에 가게 된 것일까? 이제부터 그 궁금증을 파헤쳐보기 위해 다시 먼 과거로 돌아가야만 한다.

국박집을 하는 박색의 노파가 있다. 박색에다 가진 것도 없던 노파는 젊은 시절 부엌데기를 해주던 주인집의 반편이 아들과 스캔들을 일으키며 쫓겨난다. 여기서 이 노파의 세상에서 버려졌다는 마음에서 불거진 세상에 대한 복수극이 시작된다. 노파는 세상에 복수하기 위해 악착같이 돈을 모은다. 하지만 말년에 그 노파는 스캔들을 일으킨 장본인인 주인집 반편이 아들과의 정사로 가지게 된 본인의 딸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렇게 악착같이 벌어둔 돈의 행방은 묘연할 뿐이다.


그래도 스토리는 :  2부

이 소설의 주인공인 금복이 등장하게 된다. 그녀는 어리지만 도화살이 가득한 요망한 젊은 처녀다. 산속 시골에서 자라나, 세상을 떠돌던 생선장수를 만나 고향을 버리고 도망간다. 생선장수와 함께 건어물 장사를 시작하며 장사의 수완을 발휘해 잘 살아볼까 하지만 생선장수에게 사랑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그녀는 그녀의 진정한 사랑인 걱정을 만나 살림을 차리게 된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걱정은 불의의 사고로 불구자가 되어버린다. 생계가 어려워진 금복은 시내 영화관에서 만난 칼자국의 유혹으로 허영과 사치를 경험하게 된다.

스토리를 사건 중심으로 압축해보려고 했지만 이런 식으로 했다가는 나도 4백페이지의 소설을 다시 옮겨 적어야 할 것만 같다. 앞서 얘기한 사건들처럼 금복은 그녀를 원하는 수 많은 남정네들을 겪어가며 엄청나게 굴곡진 인생을 살아간다. 그녀가 벌이는 사업들도 상대하는 남자가 바뀌어 가면서 흥망성쇠를 모두 경험하게 된다. 주된 내용은 이러하며, 이 외의 이야기들은 중요한 스포가 될 수 있어 뒤로 갈 수록 나는 말을 줄여야겠다.


그래도 스토리는 : 3부

3부에서는 금복의 딸 춘희가 주인공이 된다. 소설에는 나오지만 나는 말할 수 없는 그런 사유로 춘희가 감방을 가게 되었고, 감방 안에서 갖은 고초를 겪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10년의 세월이 흘러 춘희는 감옥에서 나오게 되지만, 세상에는 더 이상 그녀의 출옥을 반겨줄 이가 하나도 없다. 춘희는 본인이 자랐던 고향으로 돌아갔고, 어릴 적 아버지에게 배웠던 벽돌을 만드는 기술을 살려 벽돌을 구워내며 산다. 춘희에게 있어 벽돌은 세상 사람들을 다시 자기에게로 불러줄 매개체가 되리라 믿었다. 마지막 춘희의 행방과 벽돌의 쓰임새는 이 소설을 읽을 독자들을 위해 생략한다.


총평

내가 올 해 읽었던 책들을 보면 유독 작가를 중심으로 선택해 읽은 책들이 눈에 띈다.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을 읽고 난 그녀의 팬이 되었다. 그래서 다른 소설도 궁금했던 나머지 그녀의 최신작인 <종의 기원>도 일었고, 그 이전에 그녀를 유명해준 <28>이란 소설도 읽기 위해 책을 빌려놨다. 정유정 작가는 내가 알고 있는 한 한국문단에서 가장 스릴러를 트렌디하고 재밌게 구성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녀의 소설은 굉장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는데, 사건의 전개와 등장인물들의 갈등관계가 마치 씨줄과 날줄이 잘 엉겨있는 직물을 보는 듯한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 이번에 읽은 천명관 작가에 비한다면 매우 뛰어난 모범생이 창의력도 겸비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정유정 작가에 비해 천명관 작가는 야생에서 날것의 생생함을 그대로 글로 옮겨놨다. <고래>를 읽고나서 든 생각은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대책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만 그렇게 느낀 건가 싶어 각종 블로그 리뷰들을 봤다. 그런데 하나같이 공통된 표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보통 훌륭한 소설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 작가의 문장력이나, 스토리가 가진 구성력, 이런 것들을 근거로 내어놓는다. 하지만 천명관 작가에게 수여된 평은 많은 사람들이 '대단한 이야기꾼' 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는 작가나 소설가라는 표현보다는 '이야기꾼'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소설을 썼다. 이 소설을 읽고나면 마치 조선시대 최고의 입담꾼에게 뒤가 궁금해서 미칠 지경에 이르는 이야기를 듣고 난 기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천명관 작가는 일부러 다른 소설을 보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이종격투기장에서 그 누구도 선보인 적 없는 유술을 이용해 상대를 유린하는 파이터같은 소설을 써버린 것이다. 아마 <고래>는 올해 내가 읽은 책 BEST에 들어갈 유력한 후보가 될 것 같다.




우리는 중,고등학교 시절을 통틀어 수 많은 시를 배우게 된다. 각 음절마다 어떻게 끊어 읽는 것이 옳은 것인지, 각 단어마다 내포하고 있는 숨겨진 의미가 무엇인지를 분석하고 해석한다. 교과서엔 그러한 설명들이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고, 시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그것이 시를 해석하는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대한다.

아마 학창시절에 나처럼 시를 '배워야'지만 '이해'가 가능하다고 느꼈던 많은 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를 읽어본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왜냐면 난 교과서의 도움이 없이는 시를 분석하고, 정의하고, 해석할 능력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교과서에 나온 내용을 비판없이 머릿 속에 욱여넣기 바빴던 탓에 교과서에 나오지 않은 새로운 시를 도저히 해석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마침맞게 어울리는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시는 쓰는 사람이 아닌 읽는 사람의 것이다.

지금껏 우리는 주입식 교육의 피해자로 살아왔다. 영화 <곡성>을 보면서 인터넷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난무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누가 '정답'에 가까운 해석을 하는 것인지를 가늠하는 판으로 변질되었다. 영화를 보고 그 영화를 어떻게 해석하고 느낄지는 그 영화를 본 관객의 몫이다. 유명한 영화평론가가 내놓은 해석에 휘둘리는 우리들은 모두 단 하나의 정답을 찾는 과정에 익숙한 주입식 교육의 피해자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라는 책은 우리를 피해자의 입장에서 구제를 받기 위한 첫걸음에 해당한다. 더 이상 시에 휘둘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느껴보려고 해보자.


과연 시는 그렇게 배워야 알 수 있는 것일까?

책 <시를 잊은 그대에게>를 쓴 작가는 한양대에서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시는 정재찬 교수님의 강의 내용을 풀어놓았다. 그는 우리가 그동안 기계적인 학습에 의존한 시 해석에서 벗어나, 시를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책에 가장 처음 실리는 시는 '유명한' 시가 아닌 대중가요의 가사다. 대중가요의 가사도 운율이 있는 시에 속한다.


시가 숨겨놓은 시인의 이야기

시를 알고자 하면, 시인이 그 시를 썼을 당시의 개인적/사회적인 배경을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책의 중간에는 인순이가 부른 <거위의 꿈> 노래를 듣고 혼혈이라는 사회적 편견을 이겨낸 그녀의 개인적 배경을 이야기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누구나 폴 포츠가 되고 인순이가 될 수 있다는 환상과 신화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희망을 노래하라고 권하고 싶다. 희망이 시가 되고, 시가 노래가 된다. 그리고 노래가 다시 희망을 준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름다운 꿈을 꾸는 사람들이라면, 출세하지 않아도, 돈이 많지 않아도, 병들어 늙어도, 정녕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우리라. 안치환이 곡을 붙인 정지원 시인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원시를 감상하여 보라. 그리고 힘차게 노래해 보라. 시인의 말대로 노래가 우리를 지켜 주리라."


우리가 잘 아는 인순이의 노래로 시작해 희망에서 시작해 시와 노래를 언급하고 마지막에는 그에 걸맞는 시를 한편 소개해주는 식이다. 이 얼마나 이해하기 쉽고, 감동스러운 표현이란 말인가.



시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p.138)

피천득의 <기다림>이라는 시를 소개해준다. 시에서는 어린 자녀가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이의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아빠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자식이 이런 마음 알까? 몰라 줘도 상관없다. 그게 사랑이니까. 몰라 주는 섭섭함이야 야속하기 짝이 없지만, 내가 좋아 사랑하는 한, 알아주는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게 사랑인 게다.

하지만 어릴 적에는 누구나 힘든 게 기다림이다. 동네 야구를 하더라도 사구를 기다리느니 휘두르다 삼진 먹고 죽는 편이 나았다."



시는 아련한 그리움이다. (p.210)

김소월의 시와 신경림의 시를 통해 아버지를 바라보는 두 가지 상반된 시를 소개해준다. 그러면서 작가는 그리운 아버지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풀어낸다.

"적어도 나는 김소월이나 신경림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았고 제법 효자라고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틀렸다. 틀려도 한참 틀렸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서야 나는 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훌륭하신 분이었는지, 나는 얼마나 형편없는 아들이었는지 깨닫고 후회하고 감사하며 산다. 운전을 하던 중이었다. 라디오 사연을 듣다가 그만 "아빠!"하고 큰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오십이 넘은 이 아들이 어릴 적 맘 놓고 불렀덙 그 이름, 부를 때마다 세상에 겁날 게 없던 그 이름을 오랜만에 맘 놓고 크게 불러 보고 싶었던 게다. "아빠!" 그리고 펑펑 눈물이 터졌다. 또 부르고 또울고, 아버지의 이름을 실컷 불렀다. 죄송해서 한참 슬펐고 감사해서 한참을 행복해 했다.

풍수지탄이라고, 어리석게도 우리는 늘 뒤늦게야 이를 깨닫는다. 나는 지금 냉면 먹으러 간다."


우리는 시를 통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캐치해야 할 때도 있지만, 이렇게 나에게 대입해 나만의 이야기를 덧붙일 수 있는 것이다. 시의 문장을 자근자근 곱씹다보면 어느새 그 단어 하나하나에서 나의 이야기가 새어나오게 된다. 이제 막 19개월에 접어드는 사랑스러운 딸이 생각나기도 하고,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모습이 역력히 드러나는 우리 아버지가 생각나기도 한다.



이 책을 읽은 사람에게 추천하는 또 다른 책


<시를 잊은 그대에게>를 읽으면서 평소 어렵게 느꼈던 시를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면, 좀 더 넓은 인문학의 세계로 초대하는 책을 추천하고 싶다. 바로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 라는 책이다. 박웅현씨는 창의적인 표현을 잘 하는 유명한 광고 디렉터다. 그가 자신이 읽은 여러 책들을 소개하며 자신이 느꼈던 느낌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어떤 것들을 배웠는지 쉽게 쉽게 풀어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까지 읽고 나면 시, 산문, 소설 등 여러 문학 장르의 입문과정을 모두 배우게 되는 셈이다. 특히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을 통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알려준다. 기술은 발전했어도 사람이 느끼는 감정과 갈등관계를 통한 긴장감은 고전들이 작성되었던 시기에서 변한 것은 없다.

<책은 도끼다> 책을 처음 산게 아마 4~5년전 즈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독서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으례 손이 잘 가지 않던 고전들을 섭렵하기 시작했고, 문장이 가진 힘을 느끼고 그 문장들을 따라해보려는 움직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인문학의 열풍이 불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성인들의 독서량은 저조하다. 만약에 인문학에 대한 호기심은 있으나, 독서에 두려움을 느껴서 시작을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반드시 추천해주겠다.



이 책을 읽은 사람에게 추천하는 또 다른 책2


이번에 읽은 <시를 잊은 그대에게> 책과 바로 앞서 추천한 <책은 도끼다>에서 공통적으로 소개하는 책이 있다. 바로 김훈의 <자전거여행>이다. 김훈은 기자출신의 작가로 <칼의 노래>라는 유명한 소설을 쓴 작가로 알려져 있다. 김훈의 <자전거여행>은 그가 전국을 자전거로 누비면서 보고, 듣고, 맛보면서 느낀 모든 것들을 아름답고 강한 문체로 풀어낸 산문이다. 김훈의 글에서는 거칠고 강인한 남성적인 힘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적재적소에 알맞은 방법으로 쓰인 아름다운 우리말을 참 맛깔나게 사용한다. 내가 글을 쓴다면 단연코 김훈 작가를 오마주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김훈 작가의 글을 필사하면서 그의 필력을 훔쳐내고자 노력한다.

김훈 작가는 <칼의 노래>를 집필하면서 이 소설의 첫 문장을 쓰며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와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 사이에서 엄청난 갈등을 했다고 한다. 단순한 조사 한글자의 차이로 문장 전체의 의미와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김훈 작가의 글에서는 이렇게 단어, 글자 하나하나마다 그가 얼마나 많은 창작의 고통을 감내해가며 써내려갔는지 느껴진다.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가 세상에 나왔을 당시에 인문학의 열풍이 불었다면, 최근에는 '글쓰기 열풍'이 불고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제 인문학에서 보고 배우고 느낀 것들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해내고자 하는 욕구가 생긴 것 같다. 만약에 당신이 글쓰기를 잘 하고 싶다면, 글쓰기를 어떻게 하면 잘 하는지 기술해낸 유수의 책들보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필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배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장담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총평을 읽던 중 포스트잇에 적어보았다.


사랑스러운 우리 딸과 본가 부모님들을 모시고 여주로 1박2일의 여행을 다녀왔다. 점심시간 쯤 미리 알아본 식당으로 가서 부모님과 만났다. 오늘 우리 가족이 먹을 점심은 바로 사찰음식! 메뉴는 각종 나물로 이뤄진 다양한 반찬들과 맛보는 한식이다.


가게이름은 '걸구쟁이네' 여주IC에서 나와 차로 1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해있다. 차가 없으면 가기 어려울 정도로 시골 길 중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만약 걸구쟁이네로 간다면 꼭 차를 이용해 가길 추천한다.


먼저 식당의 전경이다. 시골 언덕길 중턱에 위치해있고, 넓은 마당을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정말 이 곳을 검색해서 알지 못했다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길에 있다. 


마당에는 장독대도 있고, 노란 꽃이 피어 있어 시골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분위기를 갖추고 있다. 


식당에 들어서자, 이 식당이 어떤 곳인지 잘 알게끔 안내문이 있다. 사찰음식을 파는 곳으로 육류, 어류, 젓갈류와 파, 마늘, 달래, 흥거 등 매운 채소를 쓰지 않고, 화학 인스턴트 조미료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2살배기 우리 딸에게 먹여도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영돈PD의 먹거리 X파일>에서 검증한 착한식당 푯말을 달고 있었다. 이영돈PD는 다른 일로 구설수에 올라 더 이상 출연하지 않는 프로그램이지만, 이 프로그램에서 착한 식당으로 인정했다는 것은 그만큼 음식을 함에 있어 고객들을 속인다거나, 꼼수를 쓰지 않는다는 걸 나타냈다고 볼 수 있다. 먹기도 전부터 건강해지는 느낌을 받는 것 같다.


내부는 시골밥집같은 모습이다.


순서대로 나오는 각종 반찬들은 우리가 늘상 집에서 먹던 밥상 위 반찬들이 좀 더 정갈한 모습을 갖추고 나왔다는 느낌을 받는다. 맛은 천연조미료만 썼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것 같은 맛이다. 모든 음식의 간이 강하지 않고 은은하며, 맛은 살짝 심심하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무난하다. 정말 이런 음식들이라면 어린 딸에게 먹여도 전혀 이상없을 듯.


항상 간이 센 외부 식당 음식을 사먹었던 내 입맛에는 아무래도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그나마 간이 센 묵 무침의 간장을 소스로 해서 각종 나물들과 함께 비벼 먹었다.




총평 (★★★★★ : 5.0 / 5.0)


유독 우리나라의 식당들에게서 'OO의 효능' 이라고 써놓은 곳들이 많다. 마치 음식이 약이라도 되는 양, 과장을 보태 음식이 마치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듯 다루는 글을 식당에 붙여놓는다. 

사찰음식을 내어주는 걸구쟁이네라면 '먹기만 해도 건강해질 것 같은 음식' 이라는 광고를 할 법 한데도, 그런 광고는 전혀 없다. 다만, 사찰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간략하게 기술해놓기만 했다.

사실, 음식은 그저 음식일 뿐이다. 약이 아니다. 음식은 맛으로 느끼는 것이고, 자연에서 우러나오는 맛을 이용해 재료 본연의 맛을 느끼는 것은 '재미'다. 음식은 재밌게 먹어야 하는 것이다. 효능을 보고 먹는 약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걸구쟁이네 음식은 정말 재밌는 음식들이다. 화학조미료에 길들여진 나는 먹으면서 심심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뭘 먹긴 했는데 배가 헛부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점심에 밥을 먹고 난 후, 속이 개운하고 오래도록 든든한 걸 보면 정말 잘~ 먹었다는 얘기가 절로 나오게 된다.


음식관련 포스팅을 하면서 만점을 준게 아마도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한다. 그만큼 이 음식은 재밌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친구가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교대 허벅지'. 개업식을 한다고 하여 친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개업을 한 친구를 축하해주기 위하여, 친구 덕에 맛있는 숯불 닭갈비를 먹어보러.


간판은 복고풍의 감성이 묻어나는 폰트와 색감을 사용해 레트로 디자인 스타일을 갖추고 있다. 거기에 B급 정서를 담은 키치한 그림이 어우러져 재미를 더했다. 최근 프랜차이즈로 유명한 '칠성포차'와 '봉구비어'를 적절히 섞은 느낌이랄까.


가게 내부는 역시 새 집이라 그런지 깔끔하다. 원형 양철 테이블과 의자는 흔히 말하는 '대폿집 스타일'로 되어 있다. 천장은 노출식으로 구성되어 1층의 낮은 구조에서도 시원한 느낌을 주고 있다. 특히 이 집의 특징 중 하나는 연기를 빨아들이는 환풍기 입구의 위치를 조절 할 수 있다는 것. 그 말인 즉슨, 여러 사람들이 모여 테이블의 위치를 조절해도 환풍기를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며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모임에서부터 대규모 회식자리까지 커버가 가능해보인다.


메인메뉴 중 가장 으뜸에 놓인 것은 역시 '숯불 허벅지'이다. 1인분에 330g이나 되는데 가격은 12,000원 밖에 하지 않는다. 이 외에도 같은 닭을 주제로 한 닭발과 닭똥집이 있고, 숯불에 같이 구워먹을 수 있는 숯불 통오징어가 있다. 


사이드메뉴에는 다양한 식사거리가 준비되어 있다. 메밀소바, 된장찌개, 계란찜, 주먹밥, 쌈밥 등 메인 메뉴와 함께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것들로 구비되어 있으며, 소바 같은 경우는 고기 먹고 난 후 냉면을 먹듯 후식 대용으로 먹어도 괜찮을 것 같다.


자리에 앉으면 어디나 그렇듯 물이 먼저 내어진다. 하지만 교대허벅지는 다른 곳과 다르게 조그만 생수병을 준다. 여느 식당들 같으면 같은 물통 안에 물만 다시 채워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곳은 위생을 생각한 것인지 가격은 제법 나가겠지만 새 생수병을 준다.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이 집에 작은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기본 반찬들이 나왔다. 간장에 양파를 절인 개인 접시와 김치, 무쌈, 깻잎이 나온다. 그리고 닭갈비를 찍어먹도록 소스가 3가지가 나오는데 쌈장, 칠리소스, 사과소스가 나온다. 쌈장이야 누구나 아는 그 맛이고, 칠리소스는 숯불양념통닭에 쓰일 법한 그 양념의 맛이긴 한데, 조금 더 부드러운 맛이다. 그리고 제일 묘한 건 이 사과소스다. 달달한 소스의 맛에 마늘이 들어간 것인지 깔끔하게 잡아주는 뭔가가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칠리소스와 사과소스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숯불이 올라왔다. 숯은 은은하듯, 강렬하듯 그렇게 놓여진다. 어서 빨리 숯의 향을 밴 닭갈비를 먹어보고 싶게 생겼다. 그리고 그 위에 올려진 석쇠가 조금 특이하다. 얇은 살을 가지고 있어 숯의 열을 닭이 직접 맞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 석쇠판이 일반적인 석쇠보다 비싼거라 하던데, 과연 맛에서는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기대가 된다.


드디어 닭고기가 나왔다. 편의상 우리는 '닭갈비'라는 말을 쓰긴 했는데, 엄밀히 따지면 여기는 닭의 허벅지살로 만들었기 때문에 '숯불허벅지'가 메뉴에 적힌 대로 불러줘야 맞는 것 같다. 나는 원래 닭고기 중에서 닭다리살을 가장 좋아하기 때문에 이건 왠만하면 만족스러운 맛을 내어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허벅지살은 두껍기 때문에 허벅지살을 얇게 포를 떴다. 그리고 간이 잘 배이도록 염지를 잘 해놨겠지.. 초벌이 되어 나왔기 때문에 우리 불판에서는 숯의 향을 입히면서 바삭하게 만들어주는 정도로 구워주면 된다.


굽는 동안 이 집의 필살기가 들어가게 된다. '마약소스' 뿌리기! 이 집만의 비법으로 만든거겠거니 해서 뭘로 만들었는지 굳이 물어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짐작컨대, 색이 노란색인걸 보아하니 카레가루가 들어간건 확실해 보였다.


닭고기는 껍질은 크리스피하게 바짝 익히고, 속살은 육즙을 머금을 수 있도록 최대한 늦게 자르면서 겉면을 잘 익혀주는게 포인트다. 그렇게 겉면을 익히고 나서야 비로소 한입크기로 잘라서 마지막 속살까지 굽는 것이 포인트. 뼈가 있는 부분은 두꺼워서 잘 익지 않기 때문에 가장자리에 두고 오래 익히는 것이 타지 않고 익히는 방법이다. 


사이드 메뉴 중 첫번째로 계란찜을 시켰다. 뚝배기 위로 봉긋 솟아오른 계란찜이 먹음직스럽게 생겼다. 계란찜 중에 유명한 것이 '볼케이노 계란찜'인데 그 비주얼을 살짝 따라하다 그친듯한 모양이다. 정갈하게 생기긴 했는데 조금 지저분해 보이더라도 진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완숙이 아닌 살짝 촉촉한 상태의 계란찜을 만들었더라면 더욱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개업 초기라 숯불 통오징어를 서비스로 주고 있다. 그래서 같이 구워보는 중. 오징어는 내장손질이 깔끔하게 된 채 완전 생 오징어가 나온다. 그걸 숯불에 구워서 먹는 것이다. 통통하고 쫄깃한 맛이 살아있다. 오징어는 식사라기 보다는 술안주로 더 적합해 보인다. 닭다리살만 먹으면 쉽게 물릴 수 있으니, 닭고기로 배채우지 말고 숯불오징어를 곁들여 먹으면 먹는 재미를 더할 수 있다.


국물닭발을 시켰다. 무지 매콤한 것이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그 닭발의 매콤함이다. 여기 닭발은 뼈가 있다. 국물이 있는데다가 뼈있는 닭발을 쓴 탓에 먹기가 조금 불편한 감이 있다. 그래도 이 국물은 매콤함과 짠맛이 적절히 조합되어 있어 라면사리를 넣고 먹으면 '존맛' 이라는 거. 


메밀소바도 시켰다. 이 친구가 인천에 민물장어집을 하면서 먹어봤던 그 메밀과 동일한 맛이다. 간장으로 맛을 낸 국물이 아주 깔끔하고 시원하다. 다른 메밀소바 전문점에 비교해봐도 손색이 없는 맛이다. 숯불허벅지 고기를 다 먹기 전에 시켜서, 고기와 함께 먹으면 이건 존맛2!


시켜보는 김에 닭똥집도 시켰다. 닭똥집은 그냥 무난한 맛이다. 일반적인 주점에서 먹을 수 있는 그런 닭똥집의 맛. 다만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닭똥집의 크기가 매우 실하다. 그리고 조리가 과하지 않아 탱글탱글한 근육의 씹힘이 괜찮다. 하지만 간이 좀 약하다.. 술 안주라면 일반 음식보다 간이 좀 세야 할텐데, 이 정도의 간이라면 그냥 집에서 먹는 반찬과 비슷하달까. 




총평 (오늘은 별점 없음)


내 맛집 포스팅 중 별점이 없는 첫 포스팅이다. 아무래도 친구가 운영하는 곳이다 보니 점수로 환산하기가 껄쩍지근하다. 만점을 주자니 솔직하지 못한 것처럼 보일거 같고, 점수를 짜게 주자니 친구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 것 같고.. 난 개인적으로 아주 만족했으니 점수가 없더라도 알아서 판단해야 할 듯.


닭고기는 뭘 어떻게 요리해도 맛 없기가 힘들다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정작 닭고기 요리를 '맛있게' 잘 하는 것이 쉬운 일은 또 아니다. 즉, 닭고기를 소재로 하는 식당들은 그 맛이 굉장히 애매해질 수 있다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교대허벅지는 다행히 이 함정을 잘 피해 닭고기 본연의 맛을 살리면서 숯불로 구웠을 때의 강점으로 잘 포장해서 웰메이드 숯불허벅지를 만들어냈다. 주변 음식도 구색을 잘 갖추었으나, 교대허벅지는 메인메뉴 한 가지에 잘 집중한 보기드문 맛집이다. 과한 욕심에 이것저것 탐내지 않고, 이 가게가 가장 잘 하는 메뉴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남들에게 추천할 의향은?

물론, 당연하게 하나마나 한 얘기다. 추천 뿐 아니라, 내가 직접 주변인들을 데리고 끌고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곳이다. 그러니, 흥해라!


※ 이 포스팅은 사장 친구의 협찬은 전혀 받지 않고 돈 내고 먹은 친구의 솔직한 후기다. 이 후기를 내 친구 기준이에게 바친다. ㅋ

 

주소 :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1567-9




만년필을 쓰다 보니 한 자루의 만년필로는 필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왜냐하면 여러 색을 쓸 필요가 있기 때문에. 그래서 검은색 글씨는 주로 라미 사파리를 쓰고 있으니, 조금 더 저렴한 모델로 파란색 글씨를 쓸 만년필을 알아보다가 카쿠노 만년필을 사게 되었다.


아기자기하게 박스에 포장되어 있는 카쿠노 만년필.


만년필을 꺼내어 자와 함께 찍었다. 뒤에 뚜껑을 끼지 않았을 때 약 13cm 정도 된다.


뚜껑을 뒤에 꽂으면 약 16cm가 넘는 길이로 길어진다.


카쿠노 만년필 F 닙. 카쿠노 만년필의 특징은 닙에 그려진 *,< 찡긋 하고 있는 저 그림. 귀엽다.


라미 사파리 만년필과의 사이즈 비교.



<카쿠노 만년필 사용 후기>

라미 사파리보다 종이를 긁는 느낌이 더 강하다. 아무래도 파란색 글씨는 검은색 글씨보다 적게 쓰다 보니 길을 들이는 데 그만큼 시간은 더 걸리는 걸 수도 있다. 아니면 딱 가격차이 만큼의 질적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던가. 어느 쪽인지는 잘 모르겠다.


처음 산 라미는 EF닙이었고, 카쿠노는 F닙이다. 그래서 라미보다 많이 두꺼울 줄 알았으나, 실제 사용에 있어 두께감의 차이가 그리 크게 나지는 않는다는 느낌을 준다. 파이로트의 파란색 카트리지를 끼워 사용 중이며, 파란색의 발색은 조금 짙은 파란색의 느낌을 준다. 


뚜껑에 라미처럼 펜클립이 없기 때문에 잘 굴러다닌다. 그 점이 단점이라면 단점. 만년필의 그립부분은 사진에는 잘 나오지 않았지만 각이 둥글게 처리된 삼각형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손에 쥐면 착 감기는 느낌이랄까. 그립감은 나쁘지 않다, 아니 좋은 편이다. (닙이 종이를 긁는 느낌을 빼면..)


남들에게 추천한다면? 

카쿠노 만년필은 카트리지까지 포함해 1만원대에 구입했다. 라미의 1/3 정도 수준. 저렴한 맛에 서브로 사용하기에는 나쁨이 없다. 하지만 만년필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카쿠노보다는 라미를 적극 추천할 것이다. 카쿠노 만년필은 만년필을 쓴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좀 비싼 볼펜을 쓰는 느낌을 주는 반면, 라미는 진짜 만년필을 쓴다는 느낌을 확실히 주기 때문이다. 단, 나처럼 서브로 쓸 계획이라면 추천할 만 하다. 

  복면사과 까르네 3G 구매 후기 보러가기

 

 

지난 겨울, 만년필을 위한 노트를 고르면서 복면사과 까르네를 알게 되었다.  그 당시 샀던 건 모두 타블렛 사이즈로 위클리 1권, 무선 2권, 유선 1권을 구매했다.
위클리는 처음 써보는 노트 양식이었고, 아무래도 스마트폰에서 다양한 어플로 일정을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손에 잘 안익어서 쓰는게 영 어색했고, 아직도 1권을 다 못썼다. 아니 52페이지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다 못쓰는게 당연한데.. 난 겨우 앞에 몇 장을 썼을 뿐이다. 무선은 개인 노트로 거의 일기로 작성했고, 유선은 독서노트로 활용했다. 독서노트는 책을 부분적으로 필사하는 것도 있고, 내 생각을 더해 쓰다 보니, 아무래도 글의 양이 많아져 유선이 효율적이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탄조 공방의 가죽 커버를 들여 위클리, 무선, 유선 각 1권씩 총 3권을 들고 다니며 유용하게 잘 쓰고 있다. 그리고 만년필 생활을 시작하는 단계의 욕심에 업무노트는 미도리 MD 노트를 구매해서 따로 썼다.

그렇게 올해의 절반을 살아온 것 같다. 그렇게 손으로 쓰는 글씨 연습을 해오며 느낀 것은 그냥 차라리 하나 들고 다닐 때 모든 노트를 들고 다니자! 였다. 미도리노트와 복면사과 노트를 따로 구분해서 쓰니 업무노트의 휴대성이 떨어졌다. 그리고 종종 떠오르는 업무 아이디어들은 왠지 개인노트에 적기 싫어 메모를 꺼려하기도 했던 단점도 있었다. 노트를 통합하자! 이게 나에게 든 생각이다.

그러던 사이 어느새, 복면사과의 까르네는 3G를 지나 4G의 출시를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예고된 사진을 보니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보다 감각적인 색이 출시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쓰고 있는 노트들도 아직 많이 남아있지만.. 지름신은 그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이것이 새로나온 4G의 색인 라즈베리와 블루베리다. 유선과 무선 각각 색깔별로 1권씩 총 4매를 구매했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미도리 MD 노트와 사이즈 비교를 위해 찍어 본 사진이다. 업무 노트는 이 전에 몰스킨 무선으로 많이 썼었는데, 미도리 MD 노트는 유선으로 구입했었다. 그리고 유선을 업무노트로 써본 결과, 업무에는 무선보다 유선이 조금 더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 복면사과 까르네도 유선은 업무노트와 독서노트로 활용할 생각이다. 무선은 여전히 나의 개인노트로 쭉 쓸 계획이고.

 

그리고 위클리를 3권이나 구입했다. (무려 3년치..) 
사실, 위클리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할 용도로 구입했다. 무선도, 유선도 아닌 위클리를 선물용으로 구매한 것에는 나름의 의미를 부여했다. 위클리 노트는 시간관리나 할일관리를 위해 작성하는 노트다 보니, 조금이나마 선물받으시는 분의 생활에 도움이 되시라는 의미를 담기로 했다.
또한 복면사과의 까르네를 주변에 나름대로 홍보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이렇게 가볍고, 팬시한 노트도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써보고, 선물받으시는 분이 맘에 들면 무선이나 유선도 구매하시겠지~ 하는 마음이다.
아, 그리고 이번에도 서비스 노트가 한 권 딸려 왔다. 복면사과님도 나의 마음을 눈치채신걸까, 선물용으로 구매한 위클리를 서비스로 주셨다. 덕분에 선물할 사람이 한 명 더 늘었다. 4G에서는 더 이상 위클리가 안나온다고 하던데... 내가 쓸 분량을 위해 쟁여놔야 하는 마음도 있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보는 걸로 하고, 베풀어야겠다.

그럼 앞으로 쓸 노트에 대한 나의 정리
  1. 위클리
  2. 유선 (업무노트)
  3. 무선 (개인노트)
  4. 유선 (독서노트)
이 순서대로 노트들을 끼워 다녀야 겠다. 이동간에는 이렇게 노트커버에 총 4권의 노트를 들고 다니면서, 업무시간에는 커버에서 분리해 업무노트와 위클리를 따로 들고 다니는 방법도 써야겠다. 

지난 3월달에 구입한 미도리MD노트는 이만큼 썼다. (아직 많이 남음 ㅜㅜ) 

 

 


대학시절, 존경하던 한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며 동양고전에 대해 공부하던 시절이 생각났다. 비록 한 학기의 수업에 그쳤기 때문에, 그다지 깊이있는 연구를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중국의 제자백가 중 유명한 이들이 어떤 주장을 했고, 어떠한 배경에서 학문이 발전하게 되었는지 대강의 그림을 그리는 수준까지는 경험을 해봤다.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에는 '인문학'에 대한 열풍이 불었다. 삼성이 스마트폰의 하드웨어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애플의 아이폰만큼 고객들에게 감성을 자극하는 일이 드물었다. 사람들은 삼성과 애플의 차이에 대한 원인을 '인문학의 부재'로 꼽았다. 스티브 잡스는 살아 생전 기술보다는 심미성에 중점을 두었고, 동양의 철학에도 깊은 조예를 보였다고 한다. 그러한 밑바탕이 아이폰의 성공에 대한 원인이 되었다는 얘기다.

인문학의 인기는 '고전 다시 읽기'라는 행동을 불러왔다. 광고업계에서 유명한 박웅현씨는 고전을 통해 얻은 다양한 통찰들을 <책은 도끼다> 라는 책으로 엮었고 사람들에게 매우 인기를 얻었다. 그는 마치 어려운 고전들을 무턱대고 읽어내면 모두가 통찰을 얻을 수있을 거라는 환상을 심어주었다. 사실,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은 우리가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데 있어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기원전 철학자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와닿을 수 있을까? 장자가 살았던 시기의 '국가'의 개념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시대에서의 '국가' 개념은 완전히 다를 것이다. 국가 뿐이겠는가. 정치, 사회, 문화,, 모든 것들이 그 시대와는 전혀 다르게 돌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나는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을 읽으며 다시 한번 동양고전에 대한 의미를 되돌아보았다. 내가 <담론>을 읽지 않았더라면 이번 <그때 장자를 만났다>를 읽지 않았을 것이다. 신영복 선생님은 담론을 통해 동양고전 중 일부 내용들을 설명하고 이를 어떻게 우리의 삶에 반영할 수 있는지 설명했다. 강상구 기자가 펴낸 <그때 장자를 알았다>는 본인이 장자를 읽으며 얻은 것들을 그리스신화와 연결지어 해석하려는 시도를 했다. 이 점은 분명 색다르고 재미있는 시각이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강상구 기자의 '꼰대스러움'이 곳곳에 묻어나있다는 사실이다. 저자가 서문을 통해 고백했듯 그는 그가 찾은 정답을 후배에게 강요했다. 후배들 역시 그들의 방식으로 정답을 찾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치 못했다면서 말이다. 그런 꼰대가 장자를 읽으며 생각이 바뀌었다고 고백했지만, 본문을 읽어가면서 내가 느낀 건 아직 일말의 꼰대스러움이 아주 흐리게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약한 수위라 못느낀 사람들도 있겠지만 성차별적인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포털에서 강상구 작가에 대해 검색을 해보았다. 그는 'TV조선'이라는 종편업체에서 근무하는 기자다. 내가 바라보는 종편은 편협한 시각에 갇힌 수구(보수)적 집단이다.

어쩌면 종편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이 편협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강상구 기자가 종편에 근무한다는 사실은 이 책을 읽고난 이후였다. 저자에 대한 배경을 알게된 게 책을 다 읽고난 후라 책을 읽을 당시에는 다행히 고정관념이 생성되기 전이었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한 평가는 다행히 온전히 책에 대해서만 할 수 있었다.



내 마음에 들어온 구절

(p.25)
어떤 사람이 탈레스에게 물었다. "무엇이 어려운 일인가요?"
"자기 자신을 아는 것."
"그럼 무엇이 쉬운 일인가요?"
"남에게 충고하는 것."
어떤 똑똑한 사람이 더 똑똑한 사람에게 용 잡는 법을 배웠다. 전 재산을 다 털어놓으며 열심히 배웠더니, 삼 년 만에 용을 잡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그 기술을 쓸 곳이 없었다. (열어구)

->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요, 남에게 충고하는 것은 쉬운 일이라는 말이다. 장기를 두면 흔히 장기판을 직접 두고 있는 선수보다 옆에서 훈수두는 사람이 더 앞 길에 밝은 경우를 볼 수 있다. 이 경우에 딱 들어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직접 장기판에 서 있는 사람에게는 사각형의 장기판이 하나의 프레임으로 작용해 보다 큰 그림을 그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가 두는 한 수, 한 수가 때로는 결정적인 승패를 좌우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게 된다. 하지만 옆에서 훈수두는 사람은 승패에 따른 책임을 지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한 발 떨어져 생각을 하기 때문에 보다 큰 그림을 볼 수 있다. 


(p.59)
못 보고, 못 듣고, 말 못하면서 세상과 치열하게 소통했던 헬렌 켈러가 남긴 글 중에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글이 있다. 한 번도 세상을 본 적 없는 사람에게 세상을 볼 수 있는 단 사흘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하고 싶은 일들을 적은 것이다. 첫째 날은 아는 사람들을 다 불러다가 그 얼굴들을 찬찬히 뜯어보면서 마음에 기억한다. 둘째 날은 미술관에 간다. 셋째 날은, 마지막으로 해 뜨는 광경을 보겠다고 한다. 우리가 매일매일 아무 생각 없이 하거나, 너무나 당연해서 아예 하지 않는 일들이다. 그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경이로운 일들이다.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맺는다. "내일이면 앞을 못 보게 될 것처럼 당신의 눈을 사용하세요. 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축복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 작년에 나는 녹내장 초기 판정을 받았다. 녹내장은 안구 내부의 압력이 증가해 시신경을 압박해 점차 시력을 잃어가는 병이다. 치료를 안하고 방치할 경우, 실명까지 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병이다. 다행히 병을 발견한 이후, 매일같이 눈에 안약을 넣으며 현 상태를 잘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 
녹내장이라는 병명을 얻게된 직후, 나에게 든 생각은 내가 장님이 된다면? 이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봤다. 나는 앞을 못보기 때문에 일을 할 수 없을 것이고,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일상 생활이 정상적으로 하는 게 불가능해질 것이다. 책은 점자책으로 봐야 하며, TV는 소리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안내자가 없다면 집 앞의 슈퍼에 가는 것도 나에겐 매우 큰 모험이고 위험한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다른 것보다 가장 큰 걱정이 하나 있다. 지금 자라나는 내 딸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 내가 지금 시력을 잃게 된다면 나는 우리 딸의 2살 모습 밖에 기억을 못하게 될 것이다. 딸이 자라며 얼마나 예쁜 여자로 자라는지, 커서는 어떤 남자랑 결혼하는지 나는 알 수가 없을 것이다. 내가 시력을 잃어 단 하나의 걱정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까르페 디엠(Carpe diem)' 이라는 말이 있다. 현재를 즐기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과욕이나 탐욕을 내라는 뜻은 아니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현재를 놓치지 말라는 말이다. 헬렌 켈러가 "내일이면 앞을 못 보게 될 것처럼 당신의 눈을 사용하세요." 라는 말을 했다. 내일이면 어짜피 앞을 못 보게 될 터이니, 자극적인 시각을 주라는 말이 아니다. 헬렌켈러는 아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미술관에 가고, 해 뜨는 광경을 보겠다고 했다. 지극히 평범하면서 무난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이다. 현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사명과도 같은 것이다.
매일 밤 자기 전에 스스로에게 되물어봐야겠다. "나는 오늘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가?"




(p.63)
역사상 가장 싸움 잘하는 장군이라는 피로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자신이 왜 싸우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중략) 편히 쉬기 위해서 하는 싸움이라면, 싸움을 하지 않는 편이 더 편히 쉴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고 산다.
(중략)
진실은 가까이에 있다.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서, 마치 발에 너무 잘 맞는 신발처럼, 평소에는 깨닫지 못할 뿐이다. 이미 잘 맞는 신발을 신고 있으면서 자꾸만 더 멋진 남의 신발만 탐을 낸다. 그게 더 눈에 잘 띄니까. 눈 크게 뜨고 잘 보명 내 발에 이미 너무나도 잘 맞는 신발이 신겨져 있다. 중요한 건 내 신발의 가치를 찾는 일이다.

-> 피로스 장군은 전쟁을 통해 세력을 넓혀가는 것을 즐겨했다. 아랫사람이 왜 전쟁을 하냐는 질문에 자신의 왕국을 넓히는 것이라 대답한다. 그러면 왕국을 넓힐 수 있는 데까지 넓히고 나면 무엇을 할거냐고 묻는다. 피로스 장군은 그제서야 마음놓고 편히 쉬면서 살겠다고 말한다. 그에게 전쟁의 끝은 '쉼'이다. 이는 수단과 목적의 상관관계가 지극히 떨어지는 논리다. 그는 이미 자신의 왕국을 가진 왕이고, 그가 하고 싶은대로 쉬고 싶다면, 쉴 수 있는 사람이다. 굳이 전쟁을 해가며 자신을 피곤하게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사느냐고 물으면 '행복하게 살기 위해' 라는 답을 가장 많이 한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과연 무엇인가? 행복은 어떠한 수단과 행위의 끝에 오는 결과물이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하고, 내가 즐길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바로 행복이다. 가족과 함께 있다는 것이 지금은 너무나 당연해서, 그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할 뿐인 것이다. 이미 사랑하는 가족을 가지고 있으면서 무엇을 더 추구해야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내가 신은 신발이 나에게 잘 맞으면 신발의 존재를 잊고 살게 된다. 신발의 존재가 나에게 각인되는 것은 신발이 없거나, 맞지 않거나, 닳아서 불편해지는 경험을 해보고 나서야 느끼게 된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살아가는 것들과 함께하는 행복에 대한 가치다.




(p.102)
멘토르는 해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정답은 어차피 없다. 답은 텔레마코스의 마음속에 있다. 그 답을 스스로 찾도록 한다. 멘토의 역할은 그렇게 찾은 답에 신뢰를 보내는 것이다.
답을 찾지 못해 끙끙거리는 사람 중에는 자기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를 모르는 일이 많다. 더 나아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른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면, 그래서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알면 답은 의외로 쉽게 모습을 드러낸다.주변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이란 여기까지다. 인생 좀 더 살아봤다고 섣불리 정답을 제시하는 건 욕심이자 오만이다. 어디까지나 자기 기준에서 정답일 뿐이다. 다른 사람에게도 정답일 리가 없다.

-> 아이에게 물고기를 잡아줄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주라는 말이 있다. 물고기를 잡아주기만 하면 그 아이는 물고기를 잡아주는 사람이 없어지면 당장 굶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면 스승이 없어도 굶지 않고 물고기를 잡으며 살아갈 수 있다. 나도 이제는 회사생활이 7년차가 되면서 배움을 받기 보다 가르치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작년에 입사한 신입사원에게 멘토의 역할을 해주었는데, 그 후배에게 나는 어떤 멘토였을까? 회사에서 설정한 멘토의 의무기간을 마치고 난 그 후배에게 신경을 거의 쓰고 살지 못했다. 그랬더니 그 후배의 업무역량이 생각보다 늘지 않았다는 것을 1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3개월의 의무 멘토기간을 통해 나는 기초적인 업무 스킬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그 스킬들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치지 못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일을 왜 해야 하는지, 그 일을 통해 본인은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근원적인 목적 의식을 심어주지 못했다. 
나는 다시 한번 그 후배를 가르치기로 했다. 이번에는 스킬이 아닌 일의 근본을 가르쳐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가급적이면 자신이 스스로 해보면서 본인이 그 이유를 깨닫도록 유도해주고 싶다. 왜냐면 같은 일을 하면서도 나와 그 후배가 느끼는 것이 다를 것이라는 전제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일을 하는 목적은 직원들마다 다를 수 있다. 본인이 왜 이 일을 하는지 그에 대한 목적은 스스로 깨닫는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나는 그 후배에게 나의 업무를 보여주고, 그 업무를 모방하고 자신의 방향을 찾을 때까지 무기한으로 옆에서 봐줄 것이다. 그는 나에게 있어 풀지 못한 숙제이고, 일련의 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는 해방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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