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천명관

먼저 천명관이라는 작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고래>라는 이 소설은 천명관 작가가 어떤 인물인지 모른 채로 읽는다면 소설을 읽는 내내 당혹감이라는 감정이 생길 수도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기껏 소설을 읽는데 무슨 당혹감 씩이나 느끼려나 하며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역설적인 말로 들리겠지만, 이 소설은 소설이 아닌 소설이다. 이건 또 무슨 말이냐고? 조급해하지 말고 이야기를 더 들어보시라. (소설 <고래> 중에서 이렇게 작가가 직접 독자들에게 말을 거는  순간이 있어 오마주를 해보았다.)

우리는 학창시절, 소설의 시점에 대해 배운 것을 기억할 것이다. 1인칭 화자 시점, 3인칭 관찰자 시점, 전지적 작가의 시점 등. 이 이야기는 전지적 작가가 관찰자의 시점으로 그려진다. 이 말인 즉슨, 작가는 우리에게 마치 옛날 옛날 구전으로 떠돌던 이야기를 아주 재밌게 풀어내는 것처럼 얘기한다. 하지만 작가는 얘기를 전하는 순간 순간마다 주인공과 주변인물들을 좌지우지하는 신의 입장이 되기도 한다. 학문적으로 봤을 때는 내 해석은 짝퉁이고, 거짓말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일단 이 소설이 전형적인 소설의 형태가 아니라는 것을 아주 과장해서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천명관 작가는 소설을 쓰기 이전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였다고 한다. 그러한 이력 덕분인지, 그의 소설은 마치 영화를 보듯이 세밀한 장면 묘사가 뛰어나다. <고래>에서도 이야기 위주의 시나리오 기법을 엿볼 수 있게 하며, 여타 소설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천명관의 인터뷰

"난 시인이 부러운데. 소설가는 구차하게 사는 거에요. 멋있는 걸 포기하고 길게 쓰는 거죠. 저는 다시 태어나면 3분짜리를 할 거야.

3분짜리 뭐요?

음악."

한 잡지에 실린 천명관 작가의 인터뷰 중 일부를 발췌했다. 예술은 다양한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하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비슷하다. 음악, 미술, 문학. 이것들은 창작자들이 고통을 감내해가며 만들어낸 것들이고, 그것들에는 창작자가 하고픈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그리고 대중은 창작자들의 작품을 보고 감동하고, 재미를 느끼는 등 마음에 동요를 일으키는 순간을 경험한다. 그런 면에서 이 인터뷰는 천명관이라는 작가가 자신의 업을 예술을 대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고, 장르를 넘어선 다른 예술들도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통찰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천명관 작가는 한국 소설이 본래 가지고 있는 엔터테인먼트의 기능을 잃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소설을 많이 읽는다. 물론 인기있는 소설은 대부분 장르 소설이지만, 영화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영화는 비주얼로, 소설은 스토리로 착실히 나아가고 있다. 할리우드에 이야기를 공급하는 건 다 소설이다. 최근 할리우드의 변화는 만화에서 가져온다. 만화를 실사로 재현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야기꾼들은 또 다시 어디로 가고 있느냐, '미드'로 갔다. 당대 최고의 이야기꾼들은 지금 다 미드 쪽에 있다. 미드를 발전시키고 있는 것도 스토리 즉, 소설이다. 그런데 한국 소설은 이도저도 아니다.

천명관에게 <고래>가 어떤 소설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세상에 대해 할 이야기가 없는 인간이 원고지 2천 매를 쓰라는 미션을 받았을 때 쓰는 소설이라고. 작가에게 에세이를 요구하는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글을 잘 쓰는 전문가들이 많다. 인생은 김난도, 여행은 한비야, 정치는 김어준, 요리는 박찬일.. 작가가 굳이 여기 끼어들이서 경쟁한들 이길 수 있겠는가?


천명관의 인터뷰까지 보고나면 그가 어떤 생각으로 <고래>를 집필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고래>가 왜 그렇게 유독 다른 소설들과 다르다는 것인지 대강의 느낌은 올 것이다. <고래>는 시대적으로 3대에 가까운 시기의 서사를 그려내고 있는데, 그 구조가 매우 탄탄하고 흐름이 유려하다. 이 소설을 요약하고자 든다면, 그 어느 하나 버려야 할 사건들이 없고, 줄여도 될 표현들이 없다. 단언하건대, 이 소설은 결코 영화화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만에 하나 영화화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망할 것이다. 455페이지에 달하는 대서사를 단 2시간 내외의 영화로 표현해낼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들과 표현들이 함축되고, 묵살되어버릴 것이다. 진정한 <고래>는 없어지고 관객은 앙상한 뼈만 남은 형태를 보며 공룡을 상상해내듯이 영화를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스토리는 : 1부

이 소설은 크게 3부로 나뉘어 있다. 극 중 등장인물이 많은데 확실히 이름이 나오는 인물은 이 소설의 주인공 격인 금복과 그의 딸 춘희다. 소설의 시작은 감옥에서 나온 춘희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에서 시작한다. 춘희란 인물은 왜 감옥에 가게 된 것일까? 이제부터 그 궁금증을 파헤쳐보기 위해 다시 먼 과거로 돌아가야만 한다.

국박집을 하는 박색의 노파가 있다. 박색에다 가진 것도 없던 노파는 젊은 시절 부엌데기를 해주던 주인집의 반편이 아들과 스캔들을 일으키며 쫓겨난다. 여기서 이 노파의 세상에서 버려졌다는 마음에서 불거진 세상에 대한 복수극이 시작된다. 노파는 세상에 복수하기 위해 악착같이 돈을 모은다. 하지만 말년에 그 노파는 스캔들을 일으킨 장본인인 주인집 반편이 아들과의 정사로 가지게 된 본인의 딸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렇게 악착같이 벌어둔 돈의 행방은 묘연할 뿐이다.


그래도 스토리는 :  2부

이 소설의 주인공인 금복이 등장하게 된다. 그녀는 어리지만 도화살이 가득한 요망한 젊은 처녀다. 산속 시골에서 자라나, 세상을 떠돌던 생선장수를 만나 고향을 버리고 도망간다. 생선장수와 함께 건어물 장사를 시작하며 장사의 수완을 발휘해 잘 살아볼까 하지만 생선장수에게 사랑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그녀는 그녀의 진정한 사랑인 걱정을 만나 살림을 차리게 된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걱정은 불의의 사고로 불구자가 되어버린다. 생계가 어려워진 금복은 시내 영화관에서 만난 칼자국의 유혹으로 허영과 사치를 경험하게 된다.

스토리를 사건 중심으로 압축해보려고 했지만 이런 식으로 했다가는 나도 4백페이지의 소설을 다시 옮겨 적어야 할 것만 같다. 앞서 얘기한 사건들처럼 금복은 그녀를 원하는 수 많은 남정네들을 겪어가며 엄청나게 굴곡진 인생을 살아간다. 그녀가 벌이는 사업들도 상대하는 남자가 바뀌어 가면서 흥망성쇠를 모두 경험하게 된다. 주된 내용은 이러하며, 이 외의 이야기들은 중요한 스포가 될 수 있어 뒤로 갈 수록 나는 말을 줄여야겠다.


그래도 스토리는 : 3부

3부에서는 금복의 딸 춘희가 주인공이 된다. 소설에는 나오지만 나는 말할 수 없는 그런 사유로 춘희가 감방을 가게 되었고, 감방 안에서 갖은 고초를 겪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10년의 세월이 흘러 춘희는 감옥에서 나오게 되지만, 세상에는 더 이상 그녀의 출옥을 반겨줄 이가 하나도 없다. 춘희는 본인이 자랐던 고향으로 돌아갔고, 어릴 적 아버지에게 배웠던 벽돌을 만드는 기술을 살려 벽돌을 구워내며 산다. 춘희에게 있어 벽돌은 세상 사람들을 다시 자기에게로 불러줄 매개체가 되리라 믿었다. 마지막 춘희의 행방과 벽돌의 쓰임새는 이 소설을 읽을 독자들을 위해 생략한다.


총평

내가 올 해 읽었던 책들을 보면 유독 작가를 중심으로 선택해 읽은 책들이 눈에 띈다.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을 읽고 난 그녀의 팬이 되었다. 그래서 다른 소설도 궁금했던 나머지 그녀의 최신작인 <종의 기원>도 일었고, 그 이전에 그녀를 유명해준 <28>이란 소설도 읽기 위해 책을 빌려놨다. 정유정 작가는 내가 알고 있는 한 한국문단에서 가장 스릴러를 트렌디하고 재밌게 구성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녀의 소설은 굉장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는데, 사건의 전개와 등장인물들의 갈등관계가 마치 씨줄과 날줄이 잘 엉겨있는 직물을 보는 듯한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 이번에 읽은 천명관 작가에 비한다면 매우 뛰어난 모범생이 창의력도 겸비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정유정 작가에 비해 천명관 작가는 야생에서 날것의 생생함을 그대로 글로 옮겨놨다. <고래>를 읽고나서 든 생각은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대책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만 그렇게 느낀 건가 싶어 각종 블로그 리뷰들을 봤다. 그런데 하나같이 공통된 표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보통 훌륭한 소설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 작가의 문장력이나, 스토리가 가진 구성력, 이런 것들을 근거로 내어놓는다. 하지만 천명관 작가에게 수여된 평은 많은 사람들이 '대단한 이야기꾼' 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는 작가나 소설가라는 표현보다는 '이야기꾼'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소설을 썼다. 이 소설을 읽고나면 마치 조선시대 최고의 입담꾼에게 뒤가 궁금해서 미칠 지경에 이르는 이야기를 듣고 난 기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천명관 작가는 일부러 다른 소설을 보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이종격투기장에서 그 누구도 선보인 적 없는 유술을 이용해 상대를 유린하는 파이터같은 소설을 써버린 것이다. 아마 <고래>는 올해 내가 읽은 책 BEST에 들어갈 유력한 후보가 될 것 같다.




우리는 중,고등학교 시절을 통틀어 수 많은 시를 배우게 된다. 각 음절마다 어떻게 끊어 읽는 것이 옳은 것인지, 각 단어마다 내포하고 있는 숨겨진 의미가 무엇인지를 분석하고 해석한다. 교과서엔 그러한 설명들이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고, 시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그것이 시를 해석하는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대한다.

아마 학창시절에 나처럼 시를 '배워야'지만 '이해'가 가능하다고 느꼈던 많은 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를 읽어본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왜냐면 난 교과서의 도움이 없이는 시를 분석하고, 정의하고, 해석할 능력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교과서에 나온 내용을 비판없이 머릿 속에 욱여넣기 바빴던 탓에 교과서에 나오지 않은 새로운 시를 도저히 해석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마침맞게 어울리는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시는 쓰는 사람이 아닌 읽는 사람의 것이다.

지금껏 우리는 주입식 교육의 피해자로 살아왔다. 영화 <곡성>을 보면서 인터넷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난무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누가 '정답'에 가까운 해석을 하는 것인지를 가늠하는 판으로 변질되었다. 영화를 보고 그 영화를 어떻게 해석하고 느낄지는 그 영화를 본 관객의 몫이다. 유명한 영화평론가가 내놓은 해석에 휘둘리는 우리들은 모두 단 하나의 정답을 찾는 과정에 익숙한 주입식 교육의 피해자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라는 책은 우리를 피해자의 입장에서 구제를 받기 위한 첫걸음에 해당한다. 더 이상 시에 휘둘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느껴보려고 해보자.


과연 시는 그렇게 배워야 알 수 있는 것일까?

책 <시를 잊은 그대에게>를 쓴 작가는 한양대에서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시는 정재찬 교수님의 강의 내용을 풀어놓았다. 그는 우리가 그동안 기계적인 학습에 의존한 시 해석에서 벗어나, 시를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책에 가장 처음 실리는 시는 '유명한' 시가 아닌 대중가요의 가사다. 대중가요의 가사도 운율이 있는 시에 속한다.


시가 숨겨놓은 시인의 이야기

시를 알고자 하면, 시인이 그 시를 썼을 당시의 개인적/사회적인 배경을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책의 중간에는 인순이가 부른 <거위의 꿈> 노래를 듣고 혼혈이라는 사회적 편견을 이겨낸 그녀의 개인적 배경을 이야기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누구나 폴 포츠가 되고 인순이가 될 수 있다는 환상과 신화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희망을 노래하라고 권하고 싶다. 희망이 시가 되고, 시가 노래가 된다. 그리고 노래가 다시 희망을 준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름다운 꿈을 꾸는 사람들이라면, 출세하지 않아도, 돈이 많지 않아도, 병들어 늙어도, 정녕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우리라. 안치환이 곡을 붙인 정지원 시인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원시를 감상하여 보라. 그리고 힘차게 노래해 보라. 시인의 말대로 노래가 우리를 지켜 주리라."


우리가 잘 아는 인순이의 노래로 시작해 희망에서 시작해 시와 노래를 언급하고 마지막에는 그에 걸맞는 시를 한편 소개해주는 식이다. 이 얼마나 이해하기 쉽고, 감동스러운 표현이란 말인가.



시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p.138)

피천득의 <기다림>이라는 시를 소개해준다. 시에서는 어린 자녀가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이의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아빠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자식이 이런 마음 알까? 몰라 줘도 상관없다. 그게 사랑이니까. 몰라 주는 섭섭함이야 야속하기 짝이 없지만, 내가 좋아 사랑하는 한, 알아주는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게 사랑인 게다.

하지만 어릴 적에는 누구나 힘든 게 기다림이다. 동네 야구를 하더라도 사구를 기다리느니 휘두르다 삼진 먹고 죽는 편이 나았다."



시는 아련한 그리움이다. (p.210)

김소월의 시와 신경림의 시를 통해 아버지를 바라보는 두 가지 상반된 시를 소개해준다. 그러면서 작가는 그리운 아버지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풀어낸다.

"적어도 나는 김소월이나 신경림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았고 제법 효자라고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틀렸다. 틀려도 한참 틀렸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서야 나는 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훌륭하신 분이었는지, 나는 얼마나 형편없는 아들이었는지 깨닫고 후회하고 감사하며 산다. 운전을 하던 중이었다. 라디오 사연을 듣다가 그만 "아빠!"하고 큰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오십이 넘은 이 아들이 어릴 적 맘 놓고 불렀덙 그 이름, 부를 때마다 세상에 겁날 게 없던 그 이름을 오랜만에 맘 놓고 크게 불러 보고 싶었던 게다. "아빠!" 그리고 펑펑 눈물이 터졌다. 또 부르고 또울고, 아버지의 이름을 실컷 불렀다. 죄송해서 한참 슬펐고 감사해서 한참을 행복해 했다.

풍수지탄이라고, 어리석게도 우리는 늘 뒤늦게야 이를 깨닫는다. 나는 지금 냉면 먹으러 간다."


우리는 시를 통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캐치해야 할 때도 있지만, 이렇게 나에게 대입해 나만의 이야기를 덧붙일 수 있는 것이다. 시의 문장을 자근자근 곱씹다보면 어느새 그 단어 하나하나에서 나의 이야기가 새어나오게 된다. 이제 막 19개월에 접어드는 사랑스러운 딸이 생각나기도 하고,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모습이 역력히 드러나는 우리 아버지가 생각나기도 한다.



이 책을 읽은 사람에게 추천하는 또 다른 책


<시를 잊은 그대에게>를 읽으면서 평소 어렵게 느꼈던 시를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면, 좀 더 넓은 인문학의 세계로 초대하는 책을 추천하고 싶다. 바로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 라는 책이다. 박웅현씨는 창의적인 표현을 잘 하는 유명한 광고 디렉터다. 그가 자신이 읽은 여러 책들을 소개하며 자신이 느꼈던 느낌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어떤 것들을 배웠는지 쉽게 쉽게 풀어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까지 읽고 나면 시, 산문, 소설 등 여러 문학 장르의 입문과정을 모두 배우게 되는 셈이다. 특히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을 통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알려준다. 기술은 발전했어도 사람이 느끼는 감정과 갈등관계를 통한 긴장감은 고전들이 작성되었던 시기에서 변한 것은 없다.

<책은 도끼다> 책을 처음 산게 아마 4~5년전 즈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독서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으례 손이 잘 가지 않던 고전들을 섭렵하기 시작했고, 문장이 가진 힘을 느끼고 그 문장들을 따라해보려는 움직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인문학의 열풍이 불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성인들의 독서량은 저조하다. 만약에 인문학에 대한 호기심은 있으나, 독서에 두려움을 느껴서 시작을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반드시 추천해주겠다.



이 책을 읽은 사람에게 추천하는 또 다른 책2


이번에 읽은 <시를 잊은 그대에게> 책과 바로 앞서 추천한 <책은 도끼다>에서 공통적으로 소개하는 책이 있다. 바로 김훈의 <자전거여행>이다. 김훈은 기자출신의 작가로 <칼의 노래>라는 유명한 소설을 쓴 작가로 알려져 있다. 김훈의 <자전거여행>은 그가 전국을 자전거로 누비면서 보고, 듣고, 맛보면서 느낀 모든 것들을 아름답고 강한 문체로 풀어낸 산문이다. 김훈의 글에서는 거칠고 강인한 남성적인 힘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적재적소에 알맞은 방법으로 쓰인 아름다운 우리말을 참 맛깔나게 사용한다. 내가 글을 쓴다면 단연코 김훈 작가를 오마주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김훈 작가의 글을 필사하면서 그의 필력을 훔쳐내고자 노력한다.

김훈 작가는 <칼의 노래>를 집필하면서 이 소설의 첫 문장을 쓰며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와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 사이에서 엄청난 갈등을 했다고 한다. 단순한 조사 한글자의 차이로 문장 전체의 의미와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김훈 작가의 글에서는 이렇게 단어, 글자 하나하나마다 그가 얼마나 많은 창작의 고통을 감내해가며 써내려갔는지 느껴진다.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가 세상에 나왔을 당시에 인문학의 열풍이 불었다면, 최근에는 '글쓰기 열풍'이 불고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제 인문학에서 보고 배우고 느낀 것들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해내고자 하는 욕구가 생긴 것 같다. 만약에 당신이 글쓰기를 잘 하고 싶다면, 글쓰기를 어떻게 하면 잘 하는지 기술해낸 유수의 책들보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필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배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장담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총평을 읽던 중 포스트잇에 적어보았다.



대학시절, 존경하던 한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며 동양고전에 대해 공부하던 시절이 생각났다. 비록 한 학기의 수업에 그쳤기 때문에, 그다지 깊이있는 연구를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중국의 제자백가 중 유명한 이들이 어떤 주장을 했고, 어떠한 배경에서 학문이 발전하게 되었는지 대강의 그림을 그리는 수준까지는 경험을 해봤다.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에는 '인문학'에 대한 열풍이 불었다. 삼성이 스마트폰의 하드웨어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애플의 아이폰만큼 고객들에게 감성을 자극하는 일이 드물었다. 사람들은 삼성과 애플의 차이에 대한 원인을 '인문학의 부재'로 꼽았다. 스티브 잡스는 살아 생전 기술보다는 심미성에 중점을 두었고, 동양의 철학에도 깊은 조예를 보였다고 한다. 그러한 밑바탕이 아이폰의 성공에 대한 원인이 되었다는 얘기다.

인문학의 인기는 '고전 다시 읽기'라는 행동을 불러왔다. 광고업계에서 유명한 박웅현씨는 고전을 통해 얻은 다양한 통찰들을 <책은 도끼다> 라는 책으로 엮었고 사람들에게 매우 인기를 얻었다. 그는 마치 어려운 고전들을 무턱대고 읽어내면 모두가 통찰을 얻을 수있을 거라는 환상을 심어주었다. 사실,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은 우리가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데 있어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기원전 철학자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와닿을 수 있을까? 장자가 살았던 시기의 '국가'의 개념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시대에서의 '국가' 개념은 완전히 다를 것이다. 국가 뿐이겠는가. 정치, 사회, 문화,, 모든 것들이 그 시대와는 전혀 다르게 돌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나는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을 읽으며 다시 한번 동양고전에 대한 의미를 되돌아보았다. 내가 <담론>을 읽지 않았더라면 이번 <그때 장자를 만났다>를 읽지 않았을 것이다. 신영복 선생님은 담론을 통해 동양고전 중 일부 내용들을 설명하고 이를 어떻게 우리의 삶에 반영할 수 있는지 설명했다. 강상구 기자가 펴낸 <그때 장자를 알았다>는 본인이 장자를 읽으며 얻은 것들을 그리스신화와 연결지어 해석하려는 시도를 했다. 이 점은 분명 색다르고 재미있는 시각이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강상구 기자의 '꼰대스러움'이 곳곳에 묻어나있다는 사실이다. 저자가 서문을 통해 고백했듯 그는 그가 찾은 정답을 후배에게 강요했다. 후배들 역시 그들의 방식으로 정답을 찾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치 못했다면서 말이다. 그런 꼰대가 장자를 읽으며 생각이 바뀌었다고 고백했지만, 본문을 읽어가면서 내가 느낀 건 아직 일말의 꼰대스러움이 아주 흐리게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약한 수위라 못느낀 사람들도 있겠지만 성차별적인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포털에서 강상구 작가에 대해 검색을 해보았다. 그는 'TV조선'이라는 종편업체에서 근무하는 기자다. 내가 바라보는 종편은 편협한 시각에 갇힌 수구(보수)적 집단이다.

어쩌면 종편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이 편협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강상구 기자가 종편에 근무한다는 사실은 이 책을 읽고난 이후였다. 저자에 대한 배경을 알게된 게 책을 다 읽고난 후라 책을 읽을 당시에는 다행히 고정관념이 생성되기 전이었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한 평가는 다행히 온전히 책에 대해서만 할 수 있었다.



내 마음에 들어온 구절

(p.25)
어떤 사람이 탈레스에게 물었다. "무엇이 어려운 일인가요?"
"자기 자신을 아는 것."
"그럼 무엇이 쉬운 일인가요?"
"남에게 충고하는 것."
어떤 똑똑한 사람이 더 똑똑한 사람에게 용 잡는 법을 배웠다. 전 재산을 다 털어놓으며 열심히 배웠더니, 삼 년 만에 용을 잡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그 기술을 쓸 곳이 없었다. (열어구)

->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요, 남에게 충고하는 것은 쉬운 일이라는 말이다. 장기를 두면 흔히 장기판을 직접 두고 있는 선수보다 옆에서 훈수두는 사람이 더 앞 길에 밝은 경우를 볼 수 있다. 이 경우에 딱 들어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직접 장기판에 서 있는 사람에게는 사각형의 장기판이 하나의 프레임으로 작용해 보다 큰 그림을 그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가 두는 한 수, 한 수가 때로는 결정적인 승패를 좌우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게 된다. 하지만 옆에서 훈수두는 사람은 승패에 따른 책임을 지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한 발 떨어져 생각을 하기 때문에 보다 큰 그림을 볼 수 있다. 


(p.59)
못 보고, 못 듣고, 말 못하면서 세상과 치열하게 소통했던 헬렌 켈러가 남긴 글 중에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글이 있다. 한 번도 세상을 본 적 없는 사람에게 세상을 볼 수 있는 단 사흘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하고 싶은 일들을 적은 것이다. 첫째 날은 아는 사람들을 다 불러다가 그 얼굴들을 찬찬히 뜯어보면서 마음에 기억한다. 둘째 날은 미술관에 간다. 셋째 날은, 마지막으로 해 뜨는 광경을 보겠다고 한다. 우리가 매일매일 아무 생각 없이 하거나, 너무나 당연해서 아예 하지 않는 일들이다. 그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경이로운 일들이다.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맺는다. "내일이면 앞을 못 보게 될 것처럼 당신의 눈을 사용하세요. 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축복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 작년에 나는 녹내장 초기 판정을 받았다. 녹내장은 안구 내부의 압력이 증가해 시신경을 압박해 점차 시력을 잃어가는 병이다. 치료를 안하고 방치할 경우, 실명까지 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병이다. 다행히 병을 발견한 이후, 매일같이 눈에 안약을 넣으며 현 상태를 잘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 
녹내장이라는 병명을 얻게된 직후, 나에게 든 생각은 내가 장님이 된다면? 이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봤다. 나는 앞을 못보기 때문에 일을 할 수 없을 것이고,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일상 생활이 정상적으로 하는 게 불가능해질 것이다. 책은 점자책으로 봐야 하며, TV는 소리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안내자가 없다면 집 앞의 슈퍼에 가는 것도 나에겐 매우 큰 모험이고 위험한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다른 것보다 가장 큰 걱정이 하나 있다. 지금 자라나는 내 딸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 내가 지금 시력을 잃게 된다면 나는 우리 딸의 2살 모습 밖에 기억을 못하게 될 것이다. 딸이 자라며 얼마나 예쁜 여자로 자라는지, 커서는 어떤 남자랑 결혼하는지 나는 알 수가 없을 것이다. 내가 시력을 잃어 단 하나의 걱정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까르페 디엠(Carpe diem)' 이라는 말이 있다. 현재를 즐기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과욕이나 탐욕을 내라는 뜻은 아니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현재를 놓치지 말라는 말이다. 헬렌 켈러가 "내일이면 앞을 못 보게 될 것처럼 당신의 눈을 사용하세요." 라는 말을 했다. 내일이면 어짜피 앞을 못 보게 될 터이니, 자극적인 시각을 주라는 말이 아니다. 헬렌켈러는 아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미술관에 가고, 해 뜨는 광경을 보겠다고 했다. 지극히 평범하면서 무난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이다. 현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사명과도 같은 것이다.
매일 밤 자기 전에 스스로에게 되물어봐야겠다. "나는 오늘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가?"




(p.63)
역사상 가장 싸움 잘하는 장군이라는 피로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자신이 왜 싸우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중략) 편히 쉬기 위해서 하는 싸움이라면, 싸움을 하지 않는 편이 더 편히 쉴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고 산다.
(중략)
진실은 가까이에 있다.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서, 마치 발에 너무 잘 맞는 신발처럼, 평소에는 깨닫지 못할 뿐이다. 이미 잘 맞는 신발을 신고 있으면서 자꾸만 더 멋진 남의 신발만 탐을 낸다. 그게 더 눈에 잘 띄니까. 눈 크게 뜨고 잘 보명 내 발에 이미 너무나도 잘 맞는 신발이 신겨져 있다. 중요한 건 내 신발의 가치를 찾는 일이다.

-> 피로스 장군은 전쟁을 통해 세력을 넓혀가는 것을 즐겨했다. 아랫사람이 왜 전쟁을 하냐는 질문에 자신의 왕국을 넓히는 것이라 대답한다. 그러면 왕국을 넓힐 수 있는 데까지 넓히고 나면 무엇을 할거냐고 묻는다. 피로스 장군은 그제서야 마음놓고 편히 쉬면서 살겠다고 말한다. 그에게 전쟁의 끝은 '쉼'이다. 이는 수단과 목적의 상관관계가 지극히 떨어지는 논리다. 그는 이미 자신의 왕국을 가진 왕이고, 그가 하고 싶은대로 쉬고 싶다면, 쉴 수 있는 사람이다. 굳이 전쟁을 해가며 자신을 피곤하게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사느냐고 물으면 '행복하게 살기 위해' 라는 답을 가장 많이 한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과연 무엇인가? 행복은 어떠한 수단과 행위의 끝에 오는 결과물이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하고, 내가 즐길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바로 행복이다. 가족과 함께 있다는 것이 지금은 너무나 당연해서, 그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할 뿐인 것이다. 이미 사랑하는 가족을 가지고 있으면서 무엇을 더 추구해야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내가 신은 신발이 나에게 잘 맞으면 신발의 존재를 잊고 살게 된다. 신발의 존재가 나에게 각인되는 것은 신발이 없거나, 맞지 않거나, 닳아서 불편해지는 경험을 해보고 나서야 느끼게 된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살아가는 것들과 함께하는 행복에 대한 가치다.




(p.102)
멘토르는 해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정답은 어차피 없다. 답은 텔레마코스의 마음속에 있다. 그 답을 스스로 찾도록 한다. 멘토의 역할은 그렇게 찾은 답에 신뢰를 보내는 것이다.
답을 찾지 못해 끙끙거리는 사람 중에는 자기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를 모르는 일이 많다. 더 나아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른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면, 그래서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알면 답은 의외로 쉽게 모습을 드러낸다.주변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이란 여기까지다. 인생 좀 더 살아봤다고 섣불리 정답을 제시하는 건 욕심이자 오만이다. 어디까지나 자기 기준에서 정답일 뿐이다. 다른 사람에게도 정답일 리가 없다.

-> 아이에게 물고기를 잡아줄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주라는 말이 있다. 물고기를 잡아주기만 하면 그 아이는 물고기를 잡아주는 사람이 없어지면 당장 굶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면 스승이 없어도 굶지 않고 물고기를 잡으며 살아갈 수 있다. 나도 이제는 회사생활이 7년차가 되면서 배움을 받기 보다 가르치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작년에 입사한 신입사원에게 멘토의 역할을 해주었는데, 그 후배에게 나는 어떤 멘토였을까? 회사에서 설정한 멘토의 의무기간을 마치고 난 그 후배에게 신경을 거의 쓰고 살지 못했다. 그랬더니 그 후배의 업무역량이 생각보다 늘지 않았다는 것을 1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3개월의 의무 멘토기간을 통해 나는 기초적인 업무 스킬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그 스킬들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치지 못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일을 왜 해야 하는지, 그 일을 통해 본인은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근원적인 목적 의식을 심어주지 못했다. 
나는 다시 한번 그 후배를 가르치기로 했다. 이번에는 스킬이 아닌 일의 근본을 가르쳐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가급적이면 자신이 스스로 해보면서 본인이 그 이유를 깨닫도록 유도해주고 싶다. 왜냐면 같은 일을 하면서도 나와 그 후배가 느끼는 것이 다를 것이라는 전제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일을 하는 목적은 직원들마다 다를 수 있다. 본인이 왜 이 일을 하는지 그에 대한 목적은 스스로 깨닫는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나는 그 후배에게 나의 업무를 보여주고, 그 업무를 모방하고 자신의 방향을 찾을 때까지 무기한으로 옆에서 봐줄 것이다. 그는 나에게 있어 풀지 못한 숙제이고, 일련의 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는 해방구이다. 


벌써 2016년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다. 2016년 상반기의 내 삶을 돌아보며 부문별로 결산을 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그 첫 번째 아이템은 독서다.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2013년부터는 내가 어떤 책을 읽었는지 독서목록을 에버노트를 통해 쭉 기록해왔다. 벌써 4년째를 맞이하고 있는 기록 덕분에 이번 결산이 좀 더 의미있게 다가오는 느낌이 든다.


올 해 나는 6개월동안 총 15권의 책을 읽었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연간 100권씩 읽는다고 하니 나는 거기에 비하면 자라나는 새싹 수준일 것이다. 하지만 기록을 하고 난 뒤 나의 독서량은 매년 늘어났다. 그 점은 내가 꽤나 자부하고 있다. 특히 올 해부터는 전자책 리더기를 통해 보다 손 쉽게 독서에 빠져들 수 있었다. 아래는 주요 통계를 통해 내가 어떤 독서 생활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내용과, 내가 읽은 책의 제목과 그들에 대한 짧은 감상평으로 결산을 진행해보도록 하겠다.



<독서 상반기 결산 요약>


내가 읽은 책들을 각 분야별로 구분을 해봤다. 소설이 무려 60%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전자책의 특징으로 말미암은 경향이 있는데, 전자책을 책의 전체를 한번에 꿰뚫어보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현재 내가 읽고 있는 페이지만 구현이 되기 때문에 책의 두께를 통해 내가 얼마나 읽었는지, 앞뒤를 뒤적여가며 읽는 것에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전자책을 통해서는 주로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겨 읽어내는 소설을 많이 읽게 된다. 앞뒤 문맥을 파악해가며 읽거나 중간 중간 발췌해가며 읽어야 하는 분야의 책들은 전자책으로 읽기 힘들다.



앞서 얘기했듯, 나는 올 상반기에 15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기록을 시작한 2013년부터 연간 독서량을 비교해봤다. 올 해는 절반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15권의 수치가 가히 적어보이지는 않는다. 이대로라면 올 해도 독서량에 대해 신기록을 세울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나는 가을에 책을 몰아 읽기에 강하다. 작년의 경우, 9월 한 달간 읽은 책만 무려 8권이나 된다. 올 해는 드디어 내가 연간 목표로 세우고 있는 30권 읽기를 달성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자책의 경우, 두께를 알기 어렵기도 하고 실제 책의 페이지 구성과 다를 확률이 매우 높다. 글씨 크기나 여백을 독자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기 때문에 환경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페이지가 많이 차이나게 된다. 그래서 각 권별 페이지를 체크할 때는 네이버에서 도서검색을 해보고 기록해두었다.

그리고 예전에 봤던 '1만 페이지 독서력' 이라는 책을 응용해 독서를 하면서 내가 읽은 누적 페이지 수를 기록했다. 연간 1만 페이지를 읽는게 목표라고 한다면 올 해 상반기에 벌써 5,386 페이지를 달성했으니 이대로 간다면 누적 1만 페이지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월별로 다소 편차가 있는 편이다. 그 이유는 2가지를 들 수 있겠다. 첫 번째로는 이상하게 읽히지 않는 책이 생겼을 경우다. 올 해 읽은 책 중 유독 '내 앞의 생' 이라는 소설은 진도를 나가는게 너무 힘들었다. 두 번째 이유는 독서보다 급했던 나의 생활이 있었던 기간이 있었다. 업무적으로 올 해 처음 시작하는 일이 있어 그것에 몰입해야 할 기간이 4월에 있었다. 그래서 독서량이 좀 적은 편이었다. 하반기에는 첫 번째 이유가 아니라면 독서량이 줄어들 일은 크게 없으리라고 예상한다.



마지막으로 독서 형태를 분류해봤다. 역시나 올 해는 전자책 리더기의 원년이다. 리디북스의 페이퍼 라이트 라는 전자책 리더기를 사고 난 뒤, 독서의 편리함이 매우 증가했다. 휴대성이나 편의성이 아주 뛰어나다. 하지만 아직까지 종이책을 완전히 놓을 수도 없다. 왜냐하면 내가 읽고 싶은 모든 책들이 전자책 시장에서 구현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모든 책들이 전자책으로 나오는 세상이 오겠지.



<내가 읽은 책과 짧은 감상평>

1 : 동물농장 (조지오웰/김병익 역) : 1월 리페라 / p.190

 - 감상평 : 약 70년 전에 쓰인 소설이지만, 마치 현재의 세계를 풍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권력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고, 순환한다는 것. 과연 우리는 권력 앞에서 진보한 삶을 살아가기 어려운걸까?


2 :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2 (채사장) : 1월 리페라 / p.376 (누적 566)

 - 감상평 : 정말 아주 얇게만 알고 있던 철학의 연대와 사조에 대해 알게 되었다. 철학 외에 종교, 예술, 과학 등도 있었으나, 철학에 가장 관심이 갔다. 리디북스를 이용해 얻은 책들을 통해 철학 고전들을 많이 섭렵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3 : 달과 6펜스, 과자와 맥주 (서머싯 몸/이철범 역) : 1월 리페라 / p.450 (누적 1,016)

 - 감상평 : 자기밖에 모르는 천재 화가 스트릭랜드와 그 주변의 이야기. 아주 어렸을 때 제목만 보고 뭔가 심오한 내용일 것 같아 내내 피해오다 결국에 읽게된 고전이다. 현실(6펜스)과 이상(달)의 사이에서 고민하고 번뇌하는 예술가의 삶을 바라보았다.


4 : 라면을 끓이며 (김훈) : 12월 영풍문고 구입 / p.412 (누적 1,428)

 - 감상평 : 김훈의 언어는 강하고 정제되어 있는 전형적인 마초의 느낌이다. 그러나 언어의 표현력이 너무 아름답다. 일상에서, 그리고 사회 이슈들을 접하면서 그는 저런 깊은 생각과 표현을 할 수 있구나 싶다. 필사하며 그의 문장력을 훔치고 싶다.


5 : 나의 한국현대사 (유시민) : 1월 리페라 / p.420 (누적 1,848)

 - 감상평 : 작가 유시민의 문장은 명쾌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그가 대한민국에서 살아온 55년의 역사를 그의 관점에서 기술했다. 똑똑한 운동권 선배로부터 우리나라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쟁취했는지 강의를 듣는 느낌이었다. 


6 :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 2월 리페라 / p.358 (누적 2,206)

 - 감상평 : 고아로 대리모에게서 자라는 모하메드(모모)의 성장 이야기.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 세상은 행복하게 살기 어려운 곳이다. 험한 세상에서 자기를 돌봐주는 사람에게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다루고 있다. 어린 모모가 동네 할아버지에게 묻는 말이 가슴을 울린다. "사람은 사랑없이 살 수 있나요?'


7 : 수상한 사람들 (히가시노 게이고) : 3월 리페라 / p.280 (누적 2,486)

 - 감상평 : 짧은 추리소설 7편이 담겨있는 책이다. 장편의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작가와 심각한 두뇌싸움을 하기 마련인데,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추리소설들은 깊이가 깊지 않으면서도 재치있게 풀어낸 추리로 읽는 이로 하여금 재미를 느끼게 한다.


8 : 백마산장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 3월 리페라 / p.334 (누적 2,820)

 - 감상평 : 백마산장에서 오빠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정확히 1년뒤, 그 때 그 사람들이 다시 모이는 그곳으로 동생이 찾아가 산장에 얽힌 미스테리를 풀어나간다. 마치 '소년탐정 김전일'의 만화를 소설로 읽는 듯한 느낌. 범인은 이 안에 있어! 모든 비밀은 풀렸다!


9 : 11문자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 4월 리페라 / p.304 (누적 3,124)

 - 감상평 :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초기 대표작이다. 그래서 그런건지 추리의 전개가 좀 올드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일본 이름은 왜이리 헷갈리는지.. 어디서는 이름을 썼다가 다른 부분에서는 성을 쓰니까 동일인물을 말하고 있다는 걸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다. 


10 : 데미안 (헤르만 헤세) : 5월, 작년에 구입한 책 / p.239 (누적 3,363)

 - 감상평 : 헤세의 대표작 '데미안'은 자아를 찾아가는 젊은이의 이야기다. 니체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은 헤세는 소설이지만 그 어떤 철학책보다 깊은 통찰을 요구하는 글을 썼다. 중학교 1학년때 처음으로 데미안을 읽었었는데, 그 때 지금 읽고 이해한만큼 얻는 것이 있었더라면 지금의 내 삶이 조금은 더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11 : 시민의 교양 (채사장) : 5월 리페라 / p.348 (누적 3,711)

 - 감상평 : 채사장의 전작,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의 후속작으로 경제학적인 입장에서 '세금, 국가, 자유, 직업, 교육, 정의, 미래' 라는 7가지 현실 인문학을 하나로 꿰뚫어 쉽게 설명했다. 야구에 이런 말이 있다. 수비자가 어려운 타구를 멋있게 처리하는 것보다, 쉽게 처리하는 것이 실력이다! 채사장은 이렇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주변 지식을 탐구했을지. 참 재밌게 읽었다.


12 : 7년의 밤 (정유정) : 5월 리페라 / p.523 (누적 4,234)

 - 감상평 : 우리나라 작가 중에 감히 최고의 서스펜스 스릴러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첫장부터 센스있는 작가의 문체부터 흥미를 불러오기 시작해, 무서울 정도로 치밀한 얼개와 구조로 단단한 성을 쌓아 나가는 느낌이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장까지 내 숨이 가쁠 정도로 내달려 읽게 만드는 이야기다. 난 이제 정유정 작가의 팬이다.


13 : 담론 (신영복) : 6월, 작년에 구입한 책 / p.428 (누적 4,662)

 - 감상평 : 동양고전을 통해 '관계론'에 대해 넓게 알아보는 1부와, 감옥에서 다른 사람을 관찰하며 알아보는 '안간론'을 담은 2부! 신영복 선생님은 20년이 넘는 투옥생활을 통해 사람은 '관계'를 통해 정의되고, 발전할 수 있다고 배웠다고 한다.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가장 기본적인 인간성마저 몰락시켜버리는 이 사회 구조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일러주는 책이다.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다.


14 : 이기는 프레임 (조지 레이코프) : 6월 리페라 / p.272 (누적4,934)

 - 감상평 :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라는 책으로 정치에서 프레임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설명해주었던 책의 저자가 쓴 책이다. 조지 레이코프는 진보의 입장에서 보수파가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어떤 프레임으로 아젠다를 이끌어 갈 것인지 설명했다. 단, 이 책의 모든 소스는 미국 정치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온전히 우리나라에 대입시킬 수 없다. 그리고.. 번역이 개판이다.


15 : 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 6월 리페라 / p.452 (누적 5,386)

 - 감상평 : 츤데레의 전형을 보여주는 오베라는 남자. 그가 살아온 일생에 대한 이야기와, 그가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하지만 그만의 방식으로 사랑했던 아내를 세상에서 떠나보내고 그도 따라가려고 자살을 시도하는 헤프닝들에 대한 이야기다. 오베의 말투와 행동으로 인해 읽는 이를 웃음짓게 만들지만, 그 이야기의 끝에서는 눈물을 쏙 빼는 마법을 부린다.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 소설, 읽는 내내 오베의 뜨거운 사랑을 느낄 수 있었던 소설, 복잡하게 살아가는 우리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따뜻한 소설이었다.




데미안을 처음 봤을 때

청소년 필독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책이 바로 '데미안'이다. 중학교 시절, 필독서로 지정되어 나도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20년이 지나 다시 읽어 보니, 과연 내가 읽고 이해했던 그 책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심오한 철학적 내용이 담긴 책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책에 적힌 글자를 그 표면만큼도 이해를 못했던 것 같다.

내가 중학교때 읽고 느꼈던 것 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데미안'같은 나의 우상 찾기였다. 중산층 네 명의 가족의 첫째로 자라난 내 성장환경은 조금은 싱클레어와 비슷한 점이 있었다. 프란츠 크로머같이 나를 괴롭히는 아이가 있으면 부모에게 알리지 않고 나 혼자 전전긍긍했던 점. 나에게도 데미안과 같은 형이 있다면 크로머의 괴롭힘에서 벗어나고, 또래 아이들보다 성장한 의식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며 말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나에게는 데미안과 같은 우상을 발견할 수는 없었고, 나는 악의 세계에서 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내가 더 악인인 척 하는 불량한 사춘기를 보냈던 것 같다. 그 때의 나는 '권선징악'이라는 순수의 세계에서 벗어나 어른의 세계로 들어간다고 생각했었다. 이 세상은 나쁜 놈이 오히려 더 성공할 수 있는 사회고, 착하다는 건 바보같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데미안을 두번째 봤을 때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데미안에서 나오는 가장 유명한 말이다. 우리 모두는 알에서 나오고자 하는 새이며, 새가 진정한 새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그 새를 보호해주던 알을 스스로 깨야 한다는 말이다. 싱클레어는 부모가 모든 것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세계를 깨는 데 데미안의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 싱클레어는 이제 막 알에서 깨어났으나 본인은 유약한 정신으로부터 벗어나질 못했다. 이 즈음에서 싱클레어는 술을 마시며 방황하는 삶을 산다. 그리고 그 방황의 끝에서 다른 이들과의 관계를 통해 점점 더 구도자의 모습을 완성해 나간다.

내가 데미안을 두번째로 봤을 땐 대학생이었다. 교양으로 인문학 수업을 들으며 과제 비슷하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두번째 읽은 데미안에서는 청소년에서 갓 성인이 된 상태에서 부모의 보호를 '알'로 표현한 것을 몸소 체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첫 알을 깨고 나왔으나 나는 아직도 '대학'이라는 울타리에서 보호받는 어린 양이었음을 알았던 것은 덤이고. 하지만 중학교 이후 나의 성장은 겨우 여기까지였다. 내 자신에 대해 깊게 성찰하고, 진정한 내 삶을 만들어가는 것은 전혀 하지 못했다. 대학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사회에 던져졌을 때 나는 발가벗겨진 채 거리로 내몰린 아이처럼 부끄럽고,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는 것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스펙은 부모가 만들어준 허울이었고,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내가 읽은 책으로 만든 지성은 현실에서는 초라한 티끌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사회에 나오고 깨달았다.


(p.66)

누구나 이런 어려움을 겪는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인생의 분기점이다. 자기 삶의 요구가 가장 혹심하게 주변 세계와 갈등에 빠지는 점, 앞을 향하는 길이 가장 혹독하게 투쟁으로 쟁취되어야 하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의 운명인 이 죽음과 새로운 탄생을 경험한다. 삶에서 오로지 한 번, 유년이 삭아가며 서서히 와해될 때, 우리의 사랑을 얻었던 모든 것이 우리를 떠나가려고 하고 우리가 갑자기 고독과 우주의 치명적인 추위에 에워싸여 있음을 느낄 때 경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이 절벽에 매달려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지나간 것에, 잃어버린 낙원의 꿈에, 모든 꿈 중에서 가장 나쁘고 가장 살인적인 그 꿈에 한평생 고통스럽게 들러붙어 있다.


그리고, 세번째 데미안..

우리나라 나이로 서른넷. 어느덧 30대의 중반을 향해 가고 있다. 더 이상 원대한 꿈을 찾아 방황하는 나이도 아니고, 적당히 현실과 타협도 할 줄 아는 나이가 된 것이다. 하지만 타협을 '할 줄' 아는 것과 능수능란하게 밀당을 하는 것과는 엄격한 차이가 있다. 나는 아직 그러한 일에 닳고 닳은 노인이 아니다. 자칫 그런 것에 도취되어 내 자신을 기만하면 그대로 도태되어 버릴 것이다. 현실과 타협한다는 것은 도전의 반대말이요, 안주한다는 것의 동의어에 지나지 않다. 도전하지 않는 삶은 청춘이라 부를 수 없다. 어찌보면 세번째로 데미안을 읽게 된 이유는 내가 아직 청춘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 답을 찾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시 도전하는 마음으로 데미안을 읽었다.


자아를 찾는 여행

진정한 자아를 찾는다는 걸 요새 주변에 얘기해보면 그런건 10대때나 고민하는거라며 코웃음친다. 하지만 우리들은, 과연 자아를 찾았을까? 극 중 싱클레어는 초등학교부터 시작해 대학시절까지 자아를 찾아 고민하고 방황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데미안은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해주는 인물이다. 10대의 극중 인물을 통해 심오한 철학적 문답을 하기도 한다.


(p.76)

내가 물었다. "하지만 의지는 어떻게 되는 거지? 자유의지란 없다고 말했잖아. 그런데 다시, 오직 자기 의지만 확고하게 그 무엇에 쏟으면 된다고 말했지, 그러면 자기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고. 그건 말이 맞지 않잖아! 내가 내 의지의 주인이 아니라면, 내가 의지를 마음대로 이런저런 데로 향하게 할 수도 없는 것 아니야"

그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그건 내가 그를 기쁘게 할 때 그가 언제나 하는 행동이었다.

"네가 그걸 묻다니 훌륭해!" 하고 그가 웃으며 말했다.

"언제나 물어야 해, 언제나 의심해야 하구. 그러나 일은 아주 간단해. 예를 들면 그런 나방이 자신의 뜻을 별이나 뭐 비슷한 곳까지 향하게 하려 했다면, 그건 이룰 수 없는 일이겠지. 다만 나방은 그런 따위 시도는 안해. 나방은 자기에게 뜻과 가치가 있는 것,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 자기가 꼭 가져야만 하는 것, 그것만 찾는 거야.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일도 이루어지는 거지. (후략)"


꿈이 없는 청년들이 늘어났다고 세상이 떠든다. 그들을 탓할 수는 없다. 경쟁적인 학업 평가와 허울만 좋은 스펙 쌓기에 내몰린 그들에게 꿈을 꿀 시간과 여유조차 주지 못한 것은 이 사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꿈을 꾸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언제나 물어야 하고, 언제나 의심해야 한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질 것인지, 그 끝에 만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먼 미래의 원대한 꿈을 꾸는 것은 몽상가들이 하는 것이다. 현실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은 자기에게 뜻과 가치가 있는 것,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 자기가 꼭 가져야만 하는 것들을 먼저 이루고 얻어내야 하는 것이다. 꿈은 '무엇이 되는' 형태의 be동사가 아닌, '무엇을 하는' do동사로 구성되어야 한다. 무엇을 '하는 것'에서 가치를 찾는다면 그 가치는 그것을 행하는 순간 순간이 목표 달성의 연속이 될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되어 버리면' 그 이후가 없다. 



사랑은 쟁취하는 것

<자기 앞의 생>에서 모모가 하밀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사람이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살 수 있지, 슬프지만."

우리가 사랑없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슬프지만 살 수 있다는 하밀 할아버지의 말에 나는 동의하지 못할 것 같다. 나는 사랑없이는 이 세상을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을 사랑하고, 나의 아내와 딸을 사랑하고, 20년지기 친구들을 사랑한다. 그 외에도 나와 연을 맺고 같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한다. 나에게 사랑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그 모든 사람들이 없어져야 가능한 일이다. 불가능하기도 하겠지만,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난 사랑없이 살아갈 수 없다.


(p.200)

"사랑은 간청해서는 안 돼요." 그녀가 말했다.

"강요해서도 안 됩니다. 사랑은, 그 자체 안에서 확신에 이르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은 더 이상 끌림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끕니다. 싱클레어, 당신의 사랑은 나에게 끌리고 있어요. 언젠가 내가 아니라 당신의 사랑이 나를 끌면, 그러면 내가 갈 겁니다. 나는 선물을 주지는 않겠어요. 쟁취되겠습니다."


요새 젊은 층에서 쓰는 말 중에 '관심종자' 라는 것이 있다. 사람들의 관심(사랑)을 받고 싶어 무리한 일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소설 데미안에서 주인공 싱클레어는 그가 꿈꿔온 이상형을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바로 자신의 멘토인 데미안의 어머니다. 쉽게 말해 친구의 어머니를 사랑한다는 말이다. 우리의 정서상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사랑을 갈구하는 싱클레어에게 에바부인은 사랑은 간청해서 되는 게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라고 일러준다. 무리한 행동을 하면서까지 나를 봐달라며 간청할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매력적인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얘기다. 



책을 덮으며.

배가 대양을 건너기 위해 항해를 할 때, 처음 목표를 지정하고 끝까지 그 길을 고수하면서 가지 않는다. 끊임없이 지도와 나침반을 이용해 나의 위치를 찾고, 지금 뱃머리가 향하는 방향이 맞는지 점검하고 방향을 수정해가며 길을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풍랑에 휩쓸려 처음 목표를 세웠던 곳이 아닌 전혀 엉뚱한 지역에 도착하고 말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배를 항해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한번 정해둔 목표를 향해 앞만 보며 달려가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목표를 향해 내가 얼만큼 왔고, 지금 가는 방향이 맞는지 반성하고 다시 설계해야 한다. 배가 지도와 나침반을 이용해 점검을 한다면, 내 인생에 있어 '데미안'이라는 소설이 내 인생의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해주는 것 같다. 길을 잃은 것 같은 지점마다 데미안이 다가와 내 인생의 방향을 다시 잡게 해주었다. 언젠가 데미안은 다시 읽힐 것이다. 그 날에 지금을 돌아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

인문학으로 떠나는 가장 먼 여행.

보통 소설책은 막 불타오르는 연애의 감정으로 읽게된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고, 더 빨리 읽고 싶고, 손에서 내려놓기 너무나 아쉬운 그런 감정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뜨겁게 읽어내버리고 끝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 읽고 난 후에는 '정말 재밌었어' 하는 추억의 장으로 넘겨 곱게 갈무리를 하는 것으로 매조짓게 된다.

하지만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을 읽을 때는 마치 결혼 후 부모님을 찾아뵙는 마음으로 읽어냈다. 출가 후 간간히 찾아뵙는 부모님은 나이듦이 눈에 보여, 조금이라도 젊은 모습을 내 마음속에 각인하고픈 마음에 오래두고 천천히 보고싶고, 오늘 본 내용을 마음 속 깊이 새겨두고 싶다.

더 이상 신영복 선생님의 새로운 책이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기 그지없다. 일면식도 없는 분이지만, 그 분은 나에게 책을 통해 스승의 자리에 계신 분이다. 조금 더 일찍 그분을 알고, 살아 생전 그 분의 강의를 청강이라도 해봤음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후회가 드는 마음이다.



내 마음에 들어온 구절


(p.200)
우리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룬 것이 많을 수 없습니다. 꼬리를 적신 어린 여우들입니다. 그 실패 때문에 끊임없이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자위합니다. 한비자의 졸성이 그런 것이라 하겠습니다. 졸렬하지만 성실한 삶, 그것은 언젠가는 피는 꽃입니다. 빅토르 위고가 <레미제라블>에서 한 말입니다. "땅을 갈고 파헤치면 모든 땅들은 상처받고 아파한다.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꽃 피우는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사실입니다. 아름다운 꽃은 훨씬 훗날의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하물며 열매는 더 먼 미래의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씨앗과 꽃과 열매의 인연 속 어디쯤 놓여 있는 것이지요. 고전의 아득한 미래가 바로 지금의 우리들인지도 모릅니다. 그 미래 역시 아직은 꽃이 아니라고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동안 고전 강의는 다루지 못한 것이 많고 또 다루었다고 하더라도 미흡하기 짝이 없습니다. 고전은 태산이라고 합니다. 호미 한 자루로 그 앞에 서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습니다.


(p.209)
나는 같은 추억이라고 하더라도 당사자들의 마음에 남아 있는 크기가 서로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힘겨운 삶을 이어 왔을 그들에게 청구회에 대한 추억이 나의 것과 같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p.226)
<한 발 걸음>을 함께 읽기로 하겠습니다. 이 글의 핵심은 이론과 실천의 통일입니다. '한 발'이란 실천이 없는 독서를 비유한 표현입니다. 감옥에서는 책 읽고 나면 그만입니다. 무릎 위에 달랑 책 한 권을 올려놓고 하는 독서. 며칠 지나지 않아서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시루에 물 빠져나가도 콩나물은 자란다고 하지만, 사오십 페이지를 읽고 나서야 이미 읽은 책이란 걸 뒤늦게 알아차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책 제목마저 기억 못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독서가 독서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실생활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독서이기 때문입니다. 화분 속의 꽃나무나 다름없습니다. 이론과 실천의 변증법적 발전 과정에서 '실천'이 제거된 구조입니다. 실천이 없다는 사실은 한 발 보행이나 마찬가지입니다.


(p.258)
마지막으로 교도소는 인간학의 교실입니다. 우리가 가장 많이 공부하는 것이 '사람'공부입니다. 인생의 70%가 사람과의 일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에 대한 공부가 쌓여서 어느덧 인간에 대한 공부로 비약합니다. 사람 공부가 인간학으로 비약하려면 우선 수많은 만남과 공부를 통하여 내공을 쌓아 가야 합니다. 그것을 내공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란 많기도 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이 복잡하기도 하고, 보여주는 모습도 천의 얼굴입니다. 여러 경우의 사람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조금씩 공부하기로 하겠습니다.

(p.284)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쓴 이야기입니다. 결혼을 앞둔 여인이 친구로부터 그 사람과 결혼하기로 결심한 이유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 여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 사람과 함께 살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야." (I really conceived I could be a better person with him) 인간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정곡을 찌르는 답변입니다.


(p.324)
~만남으로 채워진 여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행은 떠나고 만나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종착지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 변화된 자기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비단 여행에서만 확인되는 것은 아닙니다. 생각하면 여행만 여행이 아니라 우리의 삶 하루하루가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소통과 변화는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의 존재 형식입니다. 부단히 만나고, 부단히 소통하고, 부단히 변화하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여행도 그렇고, 우리의 삶도 그렇고, 우리가 함께 만들고 있는 인문학 교실도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p.329)
여행은 '돌아오는 것'입니다. 떠나고 만나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 전 과정이 자기 변화로 이어지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것은 아무리 멀리 이동하고 아무리 많은 것들을 만났더라도 진정한 여행은 아닙니다.


(p.337)
오늘날도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고 이 발상의 전환을 강조하는 예로서 반드시 콜럼버스가 등장합니다. 여러분도 잘 아는 계란 이야기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계란을 책상 위에 세우지 못하는데 콜럼버스만이 계란을 세웠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단지 발상의 전환에 관한 일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계란의 모양은 어미 닭이 체온을 골고루 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모든 알이 그렇습니다. 어미 품을 빠져나가 굴러가더라도 다시 돌아오게끔 만들어진 타원형의 구적입니다. 바로 생명의 모양입니다. 이것을 깨트려 세운다는 것은 발상의 전환이기에 앞서 생명에 대한 잔혹한 폭력입니다. 잔혹한 폭력을 발상의 전환이라고 예찬하는 우리의 무심함은 무심함이 아니라 비정함에 다름 아닙니다.


(p.343)
인간의 자유는 카르마karma를 제거하는 일입니다. 부정적 집합 표상을 카르마라고 합니다. 표상(representation)은 인간의 인식활동입니다. 우리는 남산을 바라보지 않고도 남산을 표상할 수 있습니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떠올릴 수 있는 것처럼 대상과 격리되어 있지만 대상을 재구성하는 인식 능력입니다. 대상은 그에 대한 1개의 표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표상 즉 집합표상으로 구성됩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도 고유의 집합표상이 있습니다. 중세에는 마녀라는 집합 표상이 있었습니다. 마녀라는 집합표상은 부정적이란 점에서 카르마입니다. 이 카르마를 깨뜨리는 것이 달관입니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선언이 바로 '카르마의 손損'입니다. 카르마를 깨뜨리지 않고는 그 시대가 청산되지 못합니다. 봉전제의 집합표상이 청산되지 않는 한 프랑스 혁명이 성공할 수 없습니다. 
~~ 한사람의 개인은 물론이고 한 시대가 다음 시대로 나아가려면 부정적 집합표상인 카르마를 청산해야 합니다.

(p.418)

<자기 앞의 생>에서 모모가 하밀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사람이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살 수 있지, 슬프지만." 하밀 할아버지의 대답은 정답이 못 됩니다. 살 수 있다면 결코 슬프지 않습니다. 생각하면 우리가 생명을 저버리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한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것ㅇ느 기쁨만이 아닙니다. 슬픔도 사랑의 일부입니다. 마치 우리의 삶이 그런 것처럼.




일흔을 맞이해 '당신'에게 바치는 소설

작가에게 있어 나이듦이란 작품의 깊이를 더해가는 과정이다. 작가 박범신은 어느덧 일흔을 맞이하여 마흔두 번째 장편소설 <당신>을 최근 세상에 내놓았다. 터져오를 것 같은 붉은 색을 뿜어내는 황혼에서 한소끔 지나 짙푸른 어둠과 교차하기 시작하는 나이, 일흔. 작가는 노년과 사랑, 그리고 기억에 대한 글을 썼다. 치매에 걸린 노부부를 통해 한 평생의 삶과 사랑하는 이들과의 관계, 그 속에 숨겨진 이면을 조심스럽게 들춰낸다.


박범신의 소설을 그리 많이 아는 편이 않았다. 아니, 사실 이름만 들어보았지 거의 아는 게 없는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영화 <은교>를 통해 원작이 박범신 작가의 것이라는 정도만 아는 정도였으니. 부끄럽지만 이제서야 노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되었고, 다 읽은 후에 나는 박범신 작가의 팬이 되어가고 있다.


<당신>의 줄거리

2015년, <당신>에서 '당신'으로 나오는 주인공 윤희옥은 마치 오래도록 준비해온 사람처럼 남편의 시신을 조용히 처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윤희옥은 남편의 사망신고가 아닌 실종신고를 하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딸과 함께 남편 주호백을 찾기 위한 여행을 하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치매에 걸린 남편에 대한 지금의 추억, 그리고 지난 날의 기억을 현재 시점과 과거 시점을 오가며 진행된다. 윤희옥은 남편 주호백과 첫사랑 김가인에 대해 밝히고 싶지 않았을 관계의 어두운 면이 있었다. 김가인의 딸을 배었지만, 주호백과 결혼할 수 밖에 없었던 사연. 그리고 한 평생 아내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노년에 치매에 걸려버린 주호백. 그런 치매에 걸린 주호백을 일흔 넷이라는 늦은 나이에 비로소 주호백을 사랑한다는 것을 느낀 윤희옥. 이야기는 가슴 아프지만 어쩔 수 없었던 그들의 선택과 그 선택으로 인한 인내의 삶을 조명한다.


치매에 걸린 남편을 간병하고, 죽음을 맞이하고, 제 손으로 남편을 묻은 윤희옥. 그런 그녀가 자신도 치매가 진행되고 있어 남편의 죽음을 잊고 돌아올 리 없는 남편을 기다리며 지낸다.



마음을 사로잡은 구절들


" 그는 평생 동안 나에게 당신의 본심을 감추면서 살아왔다. 울어야 할 때 그는 웃었고, 화가 날 때 그는 침묵했으며, 욕망이 생길 때 그는 그것으로부터 도망쳤다."

주호백은 첫사랑의 아이를 가진 윤희옥을 자신의 아내로 맞아들인다. 그리고 한평생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자신을 미워하는 아내에게 지극 정성의 자세로, 마치 그녀의 노예같은 삶을 살아낸다. 어찌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걸까? 서로가 '공평'하게 사랑하더라도 살아가면서 싸우고, 화해하고 지지고 볶으면서 사는게 부부의 삶이다. 주호백은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걸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 나의 아내에 대한 사랑에 대해 돌아보게 해주었다. 아무것도 받는 게 없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했던 주호백. 나는 그 주호백의 사랑에 비해 절반이라도 하고 있는걸까?


" 그는 두 개의 인격을 가지고 살아온 게 사실이다. 하나의 인격은 자애와 헌신과 인내로 시종한 관용의 얼굴이고, 다른 하나의 인격은 상처와 분노와 슬픔 등 보편적 희노애락을 날것으로 갖고 있는 얼굴이다. 거의 평생 나와 인혜에게 그는 첫번째 인격으로 대응했으며, 이 방에 들어와 혼자 앉아 있을 때 비로소 두번째 인격의 실체와 맞닥뜨리거나 그것의 해방을 경험했을 터이다. 때로 혼자 울고, 때로 분노를 참지 못해 주먹으로 벽을 치고, 또 때로 그 모든 감정을 가지런히 하려는 고통스러운 내적 투쟁과 정면으로 마주쳤겠지. 치매가 깊어진 다음 그가 보여준 그 본능적 반응들. 이 방에 간직된 것들은 그러므로 그가 환자가 되기 전 한사코 감춰온 그의 이면에 대한 생생한 증거들이다. 한 지붕 아래에서도 그는 두 개의 인격으로 살았을 뿐만 아니라 시시때때 그로 인한 내적 분열을 거듭해왔다는 뜻이다."

그래,, 주호백이 성자가 아닌 이상에야 그의 일방적인 사랑이 주호백의 모든 모습이 아니었다. 그도 헌신적인 사랑을 해주는 한편, 사랑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상처와 분노, 슬픔을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내 앞에서는 절대로 그런 뒷면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에게는 다행히 그 마음을 풀어놓을 수 있는 다락방이라는 공간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주호백과 나의 공통점은 일기를 통해 내면을 풀어낸다는 것. 나의 일기야 이것 저것 많은 주제들로 채워지는데, 일이든 사랑이든, 사람관계든.. 상처가 생겼을 때 그것을 털어놓는 일기가 있어 그나마 위로가 된다는 것이다. 난 그래서 주호백의 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 상처를 받았으면서도, 나도 위로받고 싶으면서도 끝내 가면을 쓴 모습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그의 마음을.


" 당신 가슴속을 좀 들여다보구려. 평생에 걸쳐, 거기, 당신 가슴속에 내가 집 하나를 지었소. 고대광실로다가. 죽은 다음에도 들어가 살 집. 당신 가슴속인데 당신 허락을 받지 않고 몰래 지어서 미안해요. 미웠던 적은 있었지만, 당신과 헤어지고 싶었던 순간은 한 번도 없었소. 그런 점에서 나는 성공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참, 아무것도 후회하진 말아요. 후회하면 당신 가슴속에 지은 내 집이 무거워질 거요. 아이고, 그 집이 무거워지면 당신, 무슨 수로 걷고 춤출 수 있겠소. 당신은 춤출 때가 가장 아름다운데. "

주호백이 아내에게 바치는 마지막 고백이다. 작가의 표현이 너무 섬세하고 아름답다. 그는 헌신적인 외면을 보여주면서 내면으로는 자신을 항상 가슴속에 담아주길 바라는 고백한 것이다. 이 고백은 거칠고 직선적인 남자의 고백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녀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시적인 표현을 통해 우회하고 있다. 




책을 덮으며.

사랑을 주제로 한 책은 무수히 많이 읽은 것 같다. 풋풋한 사랑을 겪을 10대 때부터, 열렬한 사랑에서 사랑의 아픔을 겪어봤던 20대, 그리고 결혼 후의 사랑을 느끼고 있는 30대. 이제는 사랑을 다룬 소설에서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박범신의 소설은 무엇인가 달랐다. 일평생을 통해 정제해온 사랑의 순수한 결정체를 만들어 내기 위해 그 사랑이 겪어야 할 모든 고통을 감내했다. 그 과정이 주는 감동은 기존에 내가 알았던 말랑말랑한 연애소설이나 사랑에 대한 감정을 풀어낸 소설과는 달랐다.


소설 <당신>의 마지막에 나오는 윤희옥이 부르는 노래 소절을 적으며, 후기를 마친다.


"꽃잎보다 붉던 내 젊은 시간은 지나고,

기억할게요, 다정한 그 얼굴들.

나를 떠나는 시간과 조용히 악수를 해야지."

지난 7월에 2015년 상반기 영화 결산을 포스팅한 적이 있다.

그래서 이번엔 왠지 의무감에.. 1년 전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 71편의 영화를 보다!

영화를 보고, 어떤 영화를 봤는지 기록해놓은 건 2015년이 처음이다. 그래서 이게 정량적으로 많이 본 해인지, 적게 본 해인지 감이 잘 오지는 않지만 내 주관적인 판단으로는 평균치는 되는 듯하게 느껴진다. 

평균적으로 한달에 약 6편을 본 셈이다. 주로 출퇴근 시간때를 이용해 영화를 봤는데, 영화를 본 환경이 썩 좋지 못했기 때문에 왠지 평점이 잘 안나왔을 것으로 추측했다.




보통 영화에 평점을 매기는 건, 영화를 보고난 직후가 아니라 하루 정도는 머리속에서 숙성을 시킨 뒤 평점을 매겼다. 그래야 영화를 보고 난 뒤에 느껴지는 감동으로 과하게 점수 주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나름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5점을 만점으로, 별 5개를 기준으로 평점을 매겼다. 각 별 구간에 점수가 매겨진 영화의 갯수는 위와 같다. 그리고 이를 숫자로 환산했을 때 평균 점수는 약 2.7점. 중간 값이 2.5점이라고 한다면, 거의 중간 값에 수렴하는 수를 보이고 그래프 모양도 나름 정규분포 곡선을 그리는 듯 하다. (나름 객관적으로 평가했다고 자부한다.)



■ 장르별 분석


나는 한 해동안 어떤 장르의 영화를 많이 봤을까?



나름대로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이 알게 모르게 반영이 되어있는 것 같다. 나는 영화를 선택할 때, 책과 마찬가지로 다른 삶을 들여다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영화를 통해 간접체험을 한다는 사실에 입각하여, 내가 원하는 간접체험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영화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장르별로는 드라마가 월등히 많이 나왔다. 


다음으로는 피곤한 출퇴근 길에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줄 파괴적인 액션과 영화를 통해 기분이 좋아지는 코메디 영화가 차지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멜로와 스릴러는 내가 그리 즐기는 장르가 아니다. 




각 장르별 평점을 분석해보면 나의 취향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애니메이션은 올해 딱 2편밖에 보지 않았지만 꽤 높은 평점을 받았다. 조금 비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피한 면도 있지만, 웰메이드 애니메이션이라 정평이 나 있는 작품만 선정해서 본 결과이기도 하다. 


그 다음으로는 역시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와 액션이 차지하고 있다. 스릴러는 중간값인 2.5점을 기록했으며 SF와 코메디, 멜로는 중간 이하의 평점을 기록했다. 영화를 많이 보게 되면서 SF와 코메디는 나의 기준이 상당히 높아져 있음을 느꼈다. 어설픈 특수효과를 사용한 SF에 매우 실망한다던지, 별로 웃기지도 못하면서 작품성도 갖추지 못한 것들.. 그리고 멜로는, 별 감흥이 안생긴다..



■ 영화는 아직 헐리우드가 낫다.


물론, 지금까지 한국영화도 엄청 발전해왔으며 천만관객을 넘기는 한국영화가 계속 나오면서 흥행몰이를 하고 있기도 하다. 2015년에 내가 본 영화 중에서 한국영화는 31편, 외화는 40편이다. 외화는 주로 미국영화가 되겠지만 따로 구분하지 않고 한국영화가 아닌 것은 모두 외화로 구분했다. 



큰 차이를 두지 않고 한국영화와 외화를 고루 보았다고 자평한다. 하지만 각 영화들에 내린 평점은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국영화가 외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면면을 따져 보아도, 저점을 받은 영화들은 대부분 한국영화였다. 


올 2016년에는 한국영화의 더욱 더 빛나는 발전이 있길 바라며. 2015년의 결산을 마쳐본다.


※ 2015년 내가 본 영화 목록

더 시그널
Her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안녕, 헤이즐
마담뺑덕
빅매치
논스톱
툼스톤
존윅
아메리칸 스나이퍼
슬로우비디오
테이큰3
이미테이션 게임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상의원
두근두근 내 인생
워킹걸
나이트 크롤러
오늘의 연애
버드맨
쎄시봉
허삼관
빅히어로
나의 독재자
킹스맨
국제시장
소셜포비아
조선명탐정2 : 사라진 놉의 딸
스물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레드카펫
간신
악의 연대기
포커스
은밀한 유혹
채피
님아, 강을 건너지 마오
무뢰한
극비수사
마진콜
아메리칸 셰프
베리드
나의 절친 악당들
차이나타운
암살
위플래쉬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터미네이터 : 미래전쟁의 시작
퓨리
꾸뻬씨의 행복여행
메이즈 러너
뷰티 인사이드
우아한 거짓말
연평해전
노예 12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
장수상회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
헝거게임 : 캣칭 파이어
헝거게임 : 모킹제이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사도
투모로우랜드
50/50
열정같은 소리하고 있네
내부자들
러시 : 라이벌
액트 오브 밸러
킹메이커
인턴
인사이드 아웃


두둥! 택배가 왔다.

리디북스에서 만든 e북리더기 '페이퍼 라이트'

일명 '리페라'로 통하는 그 녀석!



택배 상자를 열어보니 곱게 포장되어 있었다.

이번에 리페라를 구입하게 된 건 술김이었다.

아주 예전부터 e북리더기를 가지고 싶긴 했으나, 태블릿이라는 대체재가 있기 때문에 구매를 그동안 망설이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연말에 리디북스에서 대형 이벤트를 하는 걸 발견하고야 말았다. 그것도 술을 잔뜩 마신 상태에서..



지금은 169,000원으로 뜨지만, 내가 결제를 했던 12/30일에는 연말까지 2만원 추가할인을 해서 149,000원에 판매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가격은 순전히 책값일 뿐이고, 리페라는 '사은품' 으로 증정한다는 것!!!


전자책 정가는 2,591,980원인데 무려 93% 할인을 한다. 

무려 486권이나 되는 책을 50년간 소장할 수 있는 데에 붙여진 가격이다. 

근데 조금만 뜯어보면 486권이라는 숫자는 단편들을 하나하나 뜯어 놓은 것 같고, 대부분의 소설은 저작권이 만료된 고전소설이다.


이미 지름신이 온 나에게는 486권이라는 숫자보다는 고전 뭉탱이를 한번에 살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사실, 제 돈주고 고전문학을 사서 보긴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잘 사보지 않았는데, 486권이나 사두면 언젠간 보겠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리페라를 포장하고 있는 박스. 심플한 디자인을 하고 있고, 박스를 들어도 매우 가볍다는 생각을 했다. 본체는 얼마나 가볍다는 말인가!



박스을 열었다. 

마치 스마트폰처럼 전면에 리더기가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기름종이 비슷한 걸로 감싸져 있네.




포장을 벗기고 전원을 키니, 와이파이 설정 등을 하고 바로 시스템 업그레이드가 시작되었다.



486권 중에서 가장 먼저 다운받은 책은 조지오웰의 '1984' 와 '동물농장'. 예전부터 조지오웰의 소설은 한번 읽어보고 싶었는데, 잘 됐다 싶은 마음이 든다. 

내가 받은 e북리더기는 리디북스 페이퍼 '라이트' 로 300ppi 가 아닌 212ppi로 해상도가 좀 낮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글자를 보니, 해상도가 낮아서 아쉬운 점은 1도 찾을 수 없었다. 




백라이트를 켜본 모습이다. 

밤에 조명이 없는 곳에서도 조용하게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확실히 태블릿으로 보는 것보다 눈에 자극이 덜 한 것 같다. 




비교적 짧은 소설인 '동물농장'을 퇴근길부터 읽기 시작했다. 

밤 12시가 넘도록 e북을 보다 어느새 '동물농장'을 다 읽어버렸다.


아, 왠지 올해는 독서를 더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 리페라의 장점

 - 가볍다. 태블릿으로 책 보다가 팔 아픈 적도 있었다. 근데 리페라는 코트 주머니에도 쏙 들어가는 크기에, 가벼워서 지하철에서 봐도 무리가 없다.

 - 눈에 피로도가 확실히 덜 하다. e북리더기를 보기 전에 태블릿으로 볼 때는 피로도가 쌓여봤자 얼마나 차이가 크겠어~ 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는 직접 경험하고 나니 확실히 차이가 있다. 

 - 태블릿보다 배터리가 오래 간다. 태블릿도 스마트폰에 비하면 배터리가 상당히 오래가는 편이다. 나는 보통 태블릿으로 책을 많이 읽어도 2~3일에 한번씩 충전했는데, 리페라는 일주일에 한번만 충전해도 될 듯 하다.


* 리페라의 단점

 - 리디북스만 이용이 가능하다. 뭐 원래 e북은 리디북스만 이용해 왔기에 큰 단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쟁제품인 크레마 카르타는 열린 서재 기능을 갖추고 있는 점에 비교하자면 단점은 단점이다.

 - 태블릿에 비교하면 기기적 성능은 상당히 떨어진다. 터치감이나 온라인 연결, 구동속도 등은 태블릿에 비교하기 어렵다. 하지만 오롯이 독서만을 위한 스마트기기로는 충분한 성능이라고 생각한다.

 - 크기가 조금 애매하게 느껴진다. 내가 손이 작아서 그럴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한 손에 딱 들어오지는 않는다. 한손으로 잡으면 약간 불안하다. 뒷면에 '아이링'을 껴서 파지를 좀 더 안전하게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 내구성이 약해 보인다. 리페라를 손에 잡은 순간부터 계속 뭔가 불안하다. 액정도 약할 것 같고, 기기 자체도 외부 충격에 상당히 약할 것 같다. 케이스를 씌워줘야 할 것 같은데.. 인터넷 후기를 보니 케이스 무게가 본체 기기만큼 나간다고 하더라. 그래서 일단은 케이스 없이 조심히 들고 다녀보는 걸로.



나에게 맞는 책을 고르는 방법부터,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지, 그리고 그 책을 내 안에 어떻게 저장시킬 것인지에 대해 나만의 방법을 정리해 보았다.


1) 나에게 맞는 좋은 책을 고르는 법

 -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평생을 책만 읽는다고 해도 이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을 수는 없다. 그 중에서 어떤 책을 선택하여 읽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독서의 초보일 경우에는 주로 베스트 셀러로 올라온 책에 먼저 눈길이 가게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책이 좋은 책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선택했다 하더라도, 그 책이 나에게 꼭 필요한 책인지에 대해서는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베스트 셀러는 아주 가끔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한 정도로 검색해볼 뿐, 베스트 셀러에서 책을 고르는 경우는 매우 적다. 

나의 경우에는, 일단 질 좋은 서평이 많은 블로그들을 주로 둘러보고, 관심이 가는 책들을 'book wish list' 라는 메모장에 기록을 해둔다. 위시 리스트에 기록을 할 때는 언제, 어디서, 왜 이 책을 위시 리스트에 올려놓게 되었는지 기록한다. 관심이 간다고 해서 당장 그 책을 사거나 빌려 읽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이 리스트를 어느 정도 숙성시켜야, 진정으로 나에게 필요한 책인지 판가름할 수 있는 기준이 생기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위시리스트가 쌓이면 리스트에 나의 관심도를 기준으로 우선순위 정렬을 한다. 그리고 그 책을 사서 볼지, 빌려서 볼지에 대한 판단을 한다. 보통 1회성으로 읽고 치우는 소설책의 경우에는 사는 것보다는 빌리는 쪽을 선택한다. 반면 소장해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봄직한 책들은 사야할 목록으로 올려놓는다. 이렇게 시간을 두고 책을 접하는 루트별로 구분을 하면 필요한 책을 사는 데 들이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 책을 고르는 안목이 생기게 된다.

 

2) 책을 읽는 방법

 - 보통 소설을 읽을 때는 묵독으로 문장 단위로 끊어 읽는다. 그리고 극의 전개에 따라 흐름이 끊기지 않는 범위 내에 여러 문장을 한번에 읽기도 한다. 한편, 실용서의 경우에는 통독으로 빠르게 훑어서 읽는다. 그래야 나에게 필요한 부분을 재빠르게 찾을 수 있고,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시각을 만들 수 있다. 나는 인문학 계열 중에서 유독 철학에 대한 책을 많이 찾아보는 편인데, 철학 책은 글의 뜻을 잘 생각하면서 차분하게 하나하나 읽어가는 숙독의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같은 책읽기라도 필요에 따라 다양한 방법의 읽기 방법이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몇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편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처럼 깊은 생각을 하며 읽어야 하는 딱딱한 책을 읽을 때 말랑말랑한 느낌의 가벼운 소설을 같이 읽기도 한다. 그러면 딱딱하고 무거운 책을 읽는 데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반면에 이번에 읽게된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은 '메모 습관의 힘' 이라는 비슷한 내용의 책을 같이 읽기도 한다. 이 방식으로 책을 같이 읽어나가면 따로 2권을 읽었을 때보다 보다 깊이 있는 생각을 할 수 있게되고, 다양한 시각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된다.

장소에 따라 책을 다르게 읽기도 한다. 출퇴근 시간이나 점심시간 같은 자투리 시간에는 흐름이 짧게 끊겨도 읽기 편한 비소설을 읽고, 오랜 시간을 두고 책을 읽을 여건이 된다면 가급적 흐름을 끊지 않고 쭉 이야기를 전개시킬 수 있는 소설을 읽는 것이다. 


3) 필사 or 발췌요약

 - 유시민은 읽은 책을 발췌요약하면서 책의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메모 습관의 힘'을 쓴 신정철 작가는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와닿는 구절을 필사하는 방법을 권한다. 그리고 필사한 아래에 자신의 생각을 곁들여 메모를 하라고 한다. 두 사람은 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책을 읽으며 획득한 지식을 시간이 지나며 휘발시키지 않고 내 안에 가두는 방법을 말하고 있다. 항상 책을 읽고 난 뒤 시간이 오래 지나면, 책을 읽은 기억은 있는데 내용이 생각 안날 때가 생긴다. 책을 그렇게 읽으면 아무리 많은 책을 읽었다 하더라도 남은게 얼마 없기 때문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단 한권을 읽더라도 많은 것을 남길 수 있는 책읽기를 해야 한다.


이 포스팅에 도움을 받은 책


*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유시민)

* 메모 습관의 힘 (신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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