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중,고등학교 시절을 통틀어 수 많은 시를 배우게 된다. 각 음절마다 어떻게 끊어 읽는 것이 옳은 것인지, 각 단어마다 내포하고 있는 숨겨진 의미가 무엇인지를 분석하고 해석한다. 교과서엔 그러한 설명들이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고, 시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그것이 시를 해석하는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대한다.

아마 학창시절에 나처럼 시를 '배워야'지만 '이해'가 가능하다고 느꼈던 많은 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를 읽어본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왜냐면 난 교과서의 도움이 없이는 시를 분석하고, 정의하고, 해석할 능력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교과서에 나온 내용을 비판없이 머릿 속에 욱여넣기 바빴던 탓에 교과서에 나오지 않은 새로운 시를 도저히 해석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마침맞게 어울리는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시는 쓰는 사람이 아닌 읽는 사람의 것이다.

지금껏 우리는 주입식 교육의 피해자로 살아왔다. 영화 <곡성>을 보면서 인터넷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난무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누가 '정답'에 가까운 해석을 하는 것인지를 가늠하는 판으로 변질되었다. 영화를 보고 그 영화를 어떻게 해석하고 느낄지는 그 영화를 본 관객의 몫이다. 유명한 영화평론가가 내놓은 해석에 휘둘리는 우리들은 모두 단 하나의 정답을 찾는 과정에 익숙한 주입식 교육의 피해자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라는 책은 우리를 피해자의 입장에서 구제를 받기 위한 첫걸음에 해당한다. 더 이상 시에 휘둘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느껴보려고 해보자.


과연 시는 그렇게 배워야 알 수 있는 것일까?

책 <시를 잊은 그대에게>를 쓴 작가는 한양대에서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시는 정재찬 교수님의 강의 내용을 풀어놓았다. 그는 우리가 그동안 기계적인 학습에 의존한 시 해석에서 벗어나, 시를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책에 가장 처음 실리는 시는 '유명한' 시가 아닌 대중가요의 가사다. 대중가요의 가사도 운율이 있는 시에 속한다.


시가 숨겨놓은 시인의 이야기

시를 알고자 하면, 시인이 그 시를 썼을 당시의 개인적/사회적인 배경을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책의 중간에는 인순이가 부른 <거위의 꿈> 노래를 듣고 혼혈이라는 사회적 편견을 이겨낸 그녀의 개인적 배경을 이야기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누구나 폴 포츠가 되고 인순이가 될 수 있다는 환상과 신화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희망을 노래하라고 권하고 싶다. 희망이 시가 되고, 시가 노래가 된다. 그리고 노래가 다시 희망을 준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름다운 꿈을 꾸는 사람들이라면, 출세하지 않아도, 돈이 많지 않아도, 병들어 늙어도, 정녕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우리라. 안치환이 곡을 붙인 정지원 시인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원시를 감상하여 보라. 그리고 힘차게 노래해 보라. 시인의 말대로 노래가 우리를 지켜 주리라."


우리가 잘 아는 인순이의 노래로 시작해 희망에서 시작해 시와 노래를 언급하고 마지막에는 그에 걸맞는 시를 한편 소개해주는 식이다. 이 얼마나 이해하기 쉽고, 감동스러운 표현이란 말인가.



시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p.138)

피천득의 <기다림>이라는 시를 소개해준다. 시에서는 어린 자녀가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이의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아빠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자식이 이런 마음 알까? 몰라 줘도 상관없다. 그게 사랑이니까. 몰라 주는 섭섭함이야 야속하기 짝이 없지만, 내가 좋아 사랑하는 한, 알아주는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게 사랑인 게다.

하지만 어릴 적에는 누구나 힘든 게 기다림이다. 동네 야구를 하더라도 사구를 기다리느니 휘두르다 삼진 먹고 죽는 편이 나았다."



시는 아련한 그리움이다. (p.210)

김소월의 시와 신경림의 시를 통해 아버지를 바라보는 두 가지 상반된 시를 소개해준다. 그러면서 작가는 그리운 아버지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풀어낸다.

"적어도 나는 김소월이나 신경림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았고 제법 효자라고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틀렸다. 틀려도 한참 틀렸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서야 나는 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훌륭하신 분이었는지, 나는 얼마나 형편없는 아들이었는지 깨닫고 후회하고 감사하며 산다. 운전을 하던 중이었다. 라디오 사연을 듣다가 그만 "아빠!"하고 큰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오십이 넘은 이 아들이 어릴 적 맘 놓고 불렀덙 그 이름, 부를 때마다 세상에 겁날 게 없던 그 이름을 오랜만에 맘 놓고 크게 불러 보고 싶었던 게다. "아빠!" 그리고 펑펑 눈물이 터졌다. 또 부르고 또울고, 아버지의 이름을 실컷 불렀다. 죄송해서 한참 슬펐고 감사해서 한참을 행복해 했다.

풍수지탄이라고, 어리석게도 우리는 늘 뒤늦게야 이를 깨닫는다. 나는 지금 냉면 먹으러 간다."


우리는 시를 통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캐치해야 할 때도 있지만, 이렇게 나에게 대입해 나만의 이야기를 덧붙일 수 있는 것이다. 시의 문장을 자근자근 곱씹다보면 어느새 그 단어 하나하나에서 나의 이야기가 새어나오게 된다. 이제 막 19개월에 접어드는 사랑스러운 딸이 생각나기도 하고,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모습이 역력히 드러나는 우리 아버지가 생각나기도 한다.



이 책을 읽은 사람에게 추천하는 또 다른 책


<시를 잊은 그대에게>를 읽으면서 평소 어렵게 느꼈던 시를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면, 좀 더 넓은 인문학의 세계로 초대하는 책을 추천하고 싶다. 바로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 라는 책이다. 박웅현씨는 창의적인 표현을 잘 하는 유명한 광고 디렉터다. 그가 자신이 읽은 여러 책들을 소개하며 자신이 느꼈던 느낌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어떤 것들을 배웠는지 쉽게 쉽게 풀어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까지 읽고 나면 시, 산문, 소설 등 여러 문학 장르의 입문과정을 모두 배우게 되는 셈이다. 특히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을 통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알려준다. 기술은 발전했어도 사람이 느끼는 감정과 갈등관계를 통한 긴장감은 고전들이 작성되었던 시기에서 변한 것은 없다.

<책은 도끼다> 책을 처음 산게 아마 4~5년전 즈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독서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으례 손이 잘 가지 않던 고전들을 섭렵하기 시작했고, 문장이 가진 힘을 느끼고 그 문장들을 따라해보려는 움직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인문학의 열풍이 불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성인들의 독서량은 저조하다. 만약에 인문학에 대한 호기심은 있으나, 독서에 두려움을 느껴서 시작을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반드시 추천해주겠다.



이 책을 읽은 사람에게 추천하는 또 다른 책2


이번에 읽은 <시를 잊은 그대에게> 책과 바로 앞서 추천한 <책은 도끼다>에서 공통적으로 소개하는 책이 있다. 바로 김훈의 <자전거여행>이다. 김훈은 기자출신의 작가로 <칼의 노래>라는 유명한 소설을 쓴 작가로 알려져 있다. 김훈의 <자전거여행>은 그가 전국을 자전거로 누비면서 보고, 듣고, 맛보면서 느낀 모든 것들을 아름답고 강한 문체로 풀어낸 산문이다. 김훈의 글에서는 거칠고 강인한 남성적인 힘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적재적소에 알맞은 방법으로 쓰인 아름다운 우리말을 참 맛깔나게 사용한다. 내가 글을 쓴다면 단연코 김훈 작가를 오마주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김훈 작가의 글을 필사하면서 그의 필력을 훔쳐내고자 노력한다.

김훈 작가는 <칼의 노래>를 집필하면서 이 소설의 첫 문장을 쓰며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와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 사이에서 엄청난 갈등을 했다고 한다. 단순한 조사 한글자의 차이로 문장 전체의 의미와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김훈 작가의 글에서는 이렇게 단어, 글자 하나하나마다 그가 얼마나 많은 창작의 고통을 감내해가며 써내려갔는지 느껴진다.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가 세상에 나왔을 당시에 인문학의 열풍이 불었다면, 최근에는 '글쓰기 열풍'이 불고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제 인문학에서 보고 배우고 느낀 것들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해내고자 하는 욕구가 생긴 것 같다. 만약에 당신이 글쓰기를 잘 하고 싶다면, 글쓰기를 어떻게 하면 잘 하는지 기술해낸 유수의 책들보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필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배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장담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총평을 읽던 중 포스트잇에 적어보았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