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천명관

먼저 천명관이라는 작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고래>라는 이 소설은 천명관 작가가 어떤 인물인지 모른 채로 읽는다면 소설을 읽는 내내 당혹감이라는 감정이 생길 수도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기껏 소설을 읽는데 무슨 당혹감 씩이나 느끼려나 하며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역설적인 말로 들리겠지만, 이 소설은 소설이 아닌 소설이다. 이건 또 무슨 말이냐고? 조급해하지 말고 이야기를 더 들어보시라. (소설 <고래> 중에서 이렇게 작가가 직접 독자들에게 말을 거는  순간이 있어 오마주를 해보았다.)

우리는 학창시절, 소설의 시점에 대해 배운 것을 기억할 것이다. 1인칭 화자 시점, 3인칭 관찰자 시점, 전지적 작가의 시점 등. 이 이야기는 전지적 작가가 관찰자의 시점으로 그려진다. 이 말인 즉슨, 작가는 우리에게 마치 옛날 옛날 구전으로 떠돌던 이야기를 아주 재밌게 풀어내는 것처럼 얘기한다. 하지만 작가는 얘기를 전하는 순간 순간마다 주인공과 주변인물들을 좌지우지하는 신의 입장이 되기도 한다. 학문적으로 봤을 때는 내 해석은 짝퉁이고, 거짓말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일단 이 소설이 전형적인 소설의 형태가 아니라는 것을 아주 과장해서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천명관 작가는 소설을 쓰기 이전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였다고 한다. 그러한 이력 덕분인지, 그의 소설은 마치 영화를 보듯이 세밀한 장면 묘사가 뛰어나다. <고래>에서도 이야기 위주의 시나리오 기법을 엿볼 수 있게 하며, 여타 소설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천명관의 인터뷰

"난 시인이 부러운데. 소설가는 구차하게 사는 거에요. 멋있는 걸 포기하고 길게 쓰는 거죠. 저는 다시 태어나면 3분짜리를 할 거야.

3분짜리 뭐요?

음악."

한 잡지에 실린 천명관 작가의 인터뷰 중 일부를 발췌했다. 예술은 다양한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하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비슷하다. 음악, 미술, 문학. 이것들은 창작자들이 고통을 감내해가며 만들어낸 것들이고, 그것들에는 창작자가 하고픈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그리고 대중은 창작자들의 작품을 보고 감동하고, 재미를 느끼는 등 마음에 동요를 일으키는 순간을 경험한다. 그런 면에서 이 인터뷰는 천명관이라는 작가가 자신의 업을 예술을 대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고, 장르를 넘어선 다른 예술들도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통찰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천명관 작가는 한국 소설이 본래 가지고 있는 엔터테인먼트의 기능을 잃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소설을 많이 읽는다. 물론 인기있는 소설은 대부분 장르 소설이지만, 영화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영화는 비주얼로, 소설은 스토리로 착실히 나아가고 있다. 할리우드에 이야기를 공급하는 건 다 소설이다. 최근 할리우드의 변화는 만화에서 가져온다. 만화를 실사로 재현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야기꾼들은 또 다시 어디로 가고 있느냐, '미드'로 갔다. 당대 최고의 이야기꾼들은 지금 다 미드 쪽에 있다. 미드를 발전시키고 있는 것도 스토리 즉, 소설이다. 그런데 한국 소설은 이도저도 아니다.

천명관에게 <고래>가 어떤 소설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세상에 대해 할 이야기가 없는 인간이 원고지 2천 매를 쓰라는 미션을 받았을 때 쓰는 소설이라고. 작가에게 에세이를 요구하는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글을 잘 쓰는 전문가들이 많다. 인생은 김난도, 여행은 한비야, 정치는 김어준, 요리는 박찬일.. 작가가 굳이 여기 끼어들이서 경쟁한들 이길 수 있겠는가?


천명관의 인터뷰까지 보고나면 그가 어떤 생각으로 <고래>를 집필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고래>가 왜 그렇게 유독 다른 소설들과 다르다는 것인지 대강의 느낌은 올 것이다. <고래>는 시대적으로 3대에 가까운 시기의 서사를 그려내고 있는데, 그 구조가 매우 탄탄하고 흐름이 유려하다. 이 소설을 요약하고자 든다면, 그 어느 하나 버려야 할 사건들이 없고, 줄여도 될 표현들이 없다. 단언하건대, 이 소설은 결코 영화화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만에 하나 영화화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망할 것이다. 455페이지에 달하는 대서사를 단 2시간 내외의 영화로 표현해낼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들과 표현들이 함축되고, 묵살되어버릴 것이다. 진정한 <고래>는 없어지고 관객은 앙상한 뼈만 남은 형태를 보며 공룡을 상상해내듯이 영화를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스토리는 : 1부

이 소설은 크게 3부로 나뉘어 있다. 극 중 등장인물이 많은데 확실히 이름이 나오는 인물은 이 소설의 주인공 격인 금복과 그의 딸 춘희다. 소설의 시작은 감옥에서 나온 춘희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에서 시작한다. 춘희란 인물은 왜 감옥에 가게 된 것일까? 이제부터 그 궁금증을 파헤쳐보기 위해 다시 먼 과거로 돌아가야만 한다.

국박집을 하는 박색의 노파가 있다. 박색에다 가진 것도 없던 노파는 젊은 시절 부엌데기를 해주던 주인집의 반편이 아들과 스캔들을 일으키며 쫓겨난다. 여기서 이 노파의 세상에서 버려졌다는 마음에서 불거진 세상에 대한 복수극이 시작된다. 노파는 세상에 복수하기 위해 악착같이 돈을 모은다. 하지만 말년에 그 노파는 스캔들을 일으킨 장본인인 주인집 반편이 아들과의 정사로 가지게 된 본인의 딸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렇게 악착같이 벌어둔 돈의 행방은 묘연할 뿐이다.


그래도 스토리는 :  2부

이 소설의 주인공인 금복이 등장하게 된다. 그녀는 어리지만 도화살이 가득한 요망한 젊은 처녀다. 산속 시골에서 자라나, 세상을 떠돌던 생선장수를 만나 고향을 버리고 도망간다. 생선장수와 함께 건어물 장사를 시작하며 장사의 수완을 발휘해 잘 살아볼까 하지만 생선장수에게 사랑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그녀는 그녀의 진정한 사랑인 걱정을 만나 살림을 차리게 된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걱정은 불의의 사고로 불구자가 되어버린다. 생계가 어려워진 금복은 시내 영화관에서 만난 칼자국의 유혹으로 허영과 사치를 경험하게 된다.

스토리를 사건 중심으로 압축해보려고 했지만 이런 식으로 했다가는 나도 4백페이지의 소설을 다시 옮겨 적어야 할 것만 같다. 앞서 얘기한 사건들처럼 금복은 그녀를 원하는 수 많은 남정네들을 겪어가며 엄청나게 굴곡진 인생을 살아간다. 그녀가 벌이는 사업들도 상대하는 남자가 바뀌어 가면서 흥망성쇠를 모두 경험하게 된다. 주된 내용은 이러하며, 이 외의 이야기들은 중요한 스포가 될 수 있어 뒤로 갈 수록 나는 말을 줄여야겠다.


그래도 스토리는 : 3부

3부에서는 금복의 딸 춘희가 주인공이 된다. 소설에는 나오지만 나는 말할 수 없는 그런 사유로 춘희가 감방을 가게 되었고, 감방 안에서 갖은 고초를 겪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10년의 세월이 흘러 춘희는 감옥에서 나오게 되지만, 세상에는 더 이상 그녀의 출옥을 반겨줄 이가 하나도 없다. 춘희는 본인이 자랐던 고향으로 돌아갔고, 어릴 적 아버지에게 배웠던 벽돌을 만드는 기술을 살려 벽돌을 구워내며 산다. 춘희에게 있어 벽돌은 세상 사람들을 다시 자기에게로 불러줄 매개체가 되리라 믿었다. 마지막 춘희의 행방과 벽돌의 쓰임새는 이 소설을 읽을 독자들을 위해 생략한다.


총평

내가 올 해 읽었던 책들을 보면 유독 작가를 중심으로 선택해 읽은 책들이 눈에 띈다.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을 읽고 난 그녀의 팬이 되었다. 그래서 다른 소설도 궁금했던 나머지 그녀의 최신작인 <종의 기원>도 일었고, 그 이전에 그녀를 유명해준 <28>이란 소설도 읽기 위해 책을 빌려놨다. 정유정 작가는 내가 알고 있는 한 한국문단에서 가장 스릴러를 트렌디하고 재밌게 구성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녀의 소설은 굉장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는데, 사건의 전개와 등장인물들의 갈등관계가 마치 씨줄과 날줄이 잘 엉겨있는 직물을 보는 듯한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 이번에 읽은 천명관 작가에 비한다면 매우 뛰어난 모범생이 창의력도 겸비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정유정 작가에 비해 천명관 작가는 야생에서 날것의 생생함을 그대로 글로 옮겨놨다. <고래>를 읽고나서 든 생각은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대책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만 그렇게 느낀 건가 싶어 각종 블로그 리뷰들을 봤다. 그런데 하나같이 공통된 표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보통 훌륭한 소설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 작가의 문장력이나, 스토리가 가진 구성력, 이런 것들을 근거로 내어놓는다. 하지만 천명관 작가에게 수여된 평은 많은 사람들이 '대단한 이야기꾼' 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는 작가나 소설가라는 표현보다는 '이야기꾼'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소설을 썼다. 이 소설을 읽고나면 마치 조선시대 최고의 입담꾼에게 뒤가 궁금해서 미칠 지경에 이르는 이야기를 듣고 난 기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천명관 작가는 일부러 다른 소설을 보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이종격투기장에서 그 누구도 선보인 적 없는 유술을 이용해 상대를 유린하는 파이터같은 소설을 써버린 것이다. 아마 <고래>는 올해 내가 읽은 책 BEST에 들어갈 유력한 후보가 될 것 같다.




우리는 중,고등학교 시절을 통틀어 수 많은 시를 배우게 된다. 각 음절마다 어떻게 끊어 읽는 것이 옳은 것인지, 각 단어마다 내포하고 있는 숨겨진 의미가 무엇인지를 분석하고 해석한다. 교과서엔 그러한 설명들이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고, 시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그것이 시를 해석하는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대한다.

아마 학창시절에 나처럼 시를 '배워야'지만 '이해'가 가능하다고 느꼈던 많은 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를 읽어본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왜냐면 난 교과서의 도움이 없이는 시를 분석하고, 정의하고, 해석할 능력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교과서에 나온 내용을 비판없이 머릿 속에 욱여넣기 바빴던 탓에 교과서에 나오지 않은 새로운 시를 도저히 해석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마침맞게 어울리는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시는 쓰는 사람이 아닌 읽는 사람의 것이다.

지금껏 우리는 주입식 교육의 피해자로 살아왔다. 영화 <곡성>을 보면서 인터넷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난무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누가 '정답'에 가까운 해석을 하는 것인지를 가늠하는 판으로 변질되었다. 영화를 보고 그 영화를 어떻게 해석하고 느낄지는 그 영화를 본 관객의 몫이다. 유명한 영화평론가가 내놓은 해석에 휘둘리는 우리들은 모두 단 하나의 정답을 찾는 과정에 익숙한 주입식 교육의 피해자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라는 책은 우리를 피해자의 입장에서 구제를 받기 위한 첫걸음에 해당한다. 더 이상 시에 휘둘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느껴보려고 해보자.


과연 시는 그렇게 배워야 알 수 있는 것일까?

책 <시를 잊은 그대에게>를 쓴 작가는 한양대에서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시는 정재찬 교수님의 강의 내용을 풀어놓았다. 그는 우리가 그동안 기계적인 학습에 의존한 시 해석에서 벗어나, 시를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책에 가장 처음 실리는 시는 '유명한' 시가 아닌 대중가요의 가사다. 대중가요의 가사도 운율이 있는 시에 속한다.


시가 숨겨놓은 시인의 이야기

시를 알고자 하면, 시인이 그 시를 썼을 당시의 개인적/사회적인 배경을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책의 중간에는 인순이가 부른 <거위의 꿈> 노래를 듣고 혼혈이라는 사회적 편견을 이겨낸 그녀의 개인적 배경을 이야기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누구나 폴 포츠가 되고 인순이가 될 수 있다는 환상과 신화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희망을 노래하라고 권하고 싶다. 희망이 시가 되고, 시가 노래가 된다. 그리고 노래가 다시 희망을 준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름다운 꿈을 꾸는 사람들이라면, 출세하지 않아도, 돈이 많지 않아도, 병들어 늙어도, 정녕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우리라. 안치환이 곡을 붙인 정지원 시인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원시를 감상하여 보라. 그리고 힘차게 노래해 보라. 시인의 말대로 노래가 우리를 지켜 주리라."


우리가 잘 아는 인순이의 노래로 시작해 희망에서 시작해 시와 노래를 언급하고 마지막에는 그에 걸맞는 시를 한편 소개해주는 식이다. 이 얼마나 이해하기 쉽고, 감동스러운 표현이란 말인가.



시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p.138)

피천득의 <기다림>이라는 시를 소개해준다. 시에서는 어린 자녀가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이의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아빠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자식이 이런 마음 알까? 몰라 줘도 상관없다. 그게 사랑이니까. 몰라 주는 섭섭함이야 야속하기 짝이 없지만, 내가 좋아 사랑하는 한, 알아주는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게 사랑인 게다.

하지만 어릴 적에는 누구나 힘든 게 기다림이다. 동네 야구를 하더라도 사구를 기다리느니 휘두르다 삼진 먹고 죽는 편이 나았다."



시는 아련한 그리움이다. (p.210)

김소월의 시와 신경림의 시를 통해 아버지를 바라보는 두 가지 상반된 시를 소개해준다. 그러면서 작가는 그리운 아버지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풀어낸다.

"적어도 나는 김소월이나 신경림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았고 제법 효자라고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틀렸다. 틀려도 한참 틀렸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서야 나는 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훌륭하신 분이었는지, 나는 얼마나 형편없는 아들이었는지 깨닫고 후회하고 감사하며 산다. 운전을 하던 중이었다. 라디오 사연을 듣다가 그만 "아빠!"하고 큰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오십이 넘은 이 아들이 어릴 적 맘 놓고 불렀덙 그 이름, 부를 때마다 세상에 겁날 게 없던 그 이름을 오랜만에 맘 놓고 크게 불러 보고 싶었던 게다. "아빠!" 그리고 펑펑 눈물이 터졌다. 또 부르고 또울고, 아버지의 이름을 실컷 불렀다. 죄송해서 한참 슬펐고 감사해서 한참을 행복해 했다.

풍수지탄이라고, 어리석게도 우리는 늘 뒤늦게야 이를 깨닫는다. 나는 지금 냉면 먹으러 간다."


우리는 시를 통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캐치해야 할 때도 있지만, 이렇게 나에게 대입해 나만의 이야기를 덧붙일 수 있는 것이다. 시의 문장을 자근자근 곱씹다보면 어느새 그 단어 하나하나에서 나의 이야기가 새어나오게 된다. 이제 막 19개월에 접어드는 사랑스러운 딸이 생각나기도 하고,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모습이 역력히 드러나는 우리 아버지가 생각나기도 한다.



이 책을 읽은 사람에게 추천하는 또 다른 책


<시를 잊은 그대에게>를 읽으면서 평소 어렵게 느꼈던 시를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면, 좀 더 넓은 인문학의 세계로 초대하는 책을 추천하고 싶다. 바로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 라는 책이다. 박웅현씨는 창의적인 표현을 잘 하는 유명한 광고 디렉터다. 그가 자신이 읽은 여러 책들을 소개하며 자신이 느꼈던 느낌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어떤 것들을 배웠는지 쉽게 쉽게 풀어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까지 읽고 나면 시, 산문, 소설 등 여러 문학 장르의 입문과정을 모두 배우게 되는 셈이다. 특히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을 통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알려준다. 기술은 발전했어도 사람이 느끼는 감정과 갈등관계를 통한 긴장감은 고전들이 작성되었던 시기에서 변한 것은 없다.

<책은 도끼다> 책을 처음 산게 아마 4~5년전 즈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독서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으례 손이 잘 가지 않던 고전들을 섭렵하기 시작했고, 문장이 가진 힘을 느끼고 그 문장들을 따라해보려는 움직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인문학의 열풍이 불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성인들의 독서량은 저조하다. 만약에 인문학에 대한 호기심은 있으나, 독서에 두려움을 느껴서 시작을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반드시 추천해주겠다.



이 책을 읽은 사람에게 추천하는 또 다른 책2


이번에 읽은 <시를 잊은 그대에게> 책과 바로 앞서 추천한 <책은 도끼다>에서 공통적으로 소개하는 책이 있다. 바로 김훈의 <자전거여행>이다. 김훈은 기자출신의 작가로 <칼의 노래>라는 유명한 소설을 쓴 작가로 알려져 있다. 김훈의 <자전거여행>은 그가 전국을 자전거로 누비면서 보고, 듣고, 맛보면서 느낀 모든 것들을 아름답고 강한 문체로 풀어낸 산문이다. 김훈의 글에서는 거칠고 강인한 남성적인 힘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적재적소에 알맞은 방법으로 쓰인 아름다운 우리말을 참 맛깔나게 사용한다. 내가 글을 쓴다면 단연코 김훈 작가를 오마주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김훈 작가의 글을 필사하면서 그의 필력을 훔쳐내고자 노력한다.

김훈 작가는 <칼의 노래>를 집필하면서 이 소설의 첫 문장을 쓰며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와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 사이에서 엄청난 갈등을 했다고 한다. 단순한 조사 한글자의 차이로 문장 전체의 의미와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김훈 작가의 글에서는 이렇게 단어, 글자 하나하나마다 그가 얼마나 많은 창작의 고통을 감내해가며 써내려갔는지 느껴진다.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가 세상에 나왔을 당시에 인문학의 열풍이 불었다면, 최근에는 '글쓰기 열풍'이 불고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제 인문학에서 보고 배우고 느낀 것들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해내고자 하는 욕구가 생긴 것 같다. 만약에 당신이 글쓰기를 잘 하고 싶다면, 글쓰기를 어떻게 하면 잘 하는지 기술해낸 유수의 책들보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필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배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장담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총평을 읽던 중 포스트잇에 적어보았다.



대학시절, 존경하던 한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며 동양고전에 대해 공부하던 시절이 생각났다. 비록 한 학기의 수업에 그쳤기 때문에, 그다지 깊이있는 연구를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중국의 제자백가 중 유명한 이들이 어떤 주장을 했고, 어떠한 배경에서 학문이 발전하게 되었는지 대강의 그림을 그리는 수준까지는 경험을 해봤다.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에는 '인문학'에 대한 열풍이 불었다. 삼성이 스마트폰의 하드웨어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애플의 아이폰만큼 고객들에게 감성을 자극하는 일이 드물었다. 사람들은 삼성과 애플의 차이에 대한 원인을 '인문학의 부재'로 꼽았다. 스티브 잡스는 살아 생전 기술보다는 심미성에 중점을 두었고, 동양의 철학에도 깊은 조예를 보였다고 한다. 그러한 밑바탕이 아이폰의 성공에 대한 원인이 되었다는 얘기다.

인문학의 인기는 '고전 다시 읽기'라는 행동을 불러왔다. 광고업계에서 유명한 박웅현씨는 고전을 통해 얻은 다양한 통찰들을 <책은 도끼다> 라는 책으로 엮었고 사람들에게 매우 인기를 얻었다. 그는 마치 어려운 고전들을 무턱대고 읽어내면 모두가 통찰을 얻을 수있을 거라는 환상을 심어주었다. 사실,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은 우리가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데 있어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기원전 철학자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와닿을 수 있을까? 장자가 살았던 시기의 '국가'의 개념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시대에서의 '국가' 개념은 완전히 다를 것이다. 국가 뿐이겠는가. 정치, 사회, 문화,, 모든 것들이 그 시대와는 전혀 다르게 돌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나는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을 읽으며 다시 한번 동양고전에 대한 의미를 되돌아보았다. 내가 <담론>을 읽지 않았더라면 이번 <그때 장자를 만났다>를 읽지 않았을 것이다. 신영복 선생님은 담론을 통해 동양고전 중 일부 내용들을 설명하고 이를 어떻게 우리의 삶에 반영할 수 있는지 설명했다. 강상구 기자가 펴낸 <그때 장자를 알았다>는 본인이 장자를 읽으며 얻은 것들을 그리스신화와 연결지어 해석하려는 시도를 했다. 이 점은 분명 색다르고 재미있는 시각이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강상구 기자의 '꼰대스러움'이 곳곳에 묻어나있다는 사실이다. 저자가 서문을 통해 고백했듯 그는 그가 찾은 정답을 후배에게 강요했다. 후배들 역시 그들의 방식으로 정답을 찾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치 못했다면서 말이다. 그런 꼰대가 장자를 읽으며 생각이 바뀌었다고 고백했지만, 본문을 읽어가면서 내가 느낀 건 아직 일말의 꼰대스러움이 아주 흐리게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약한 수위라 못느낀 사람들도 있겠지만 성차별적인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포털에서 강상구 작가에 대해 검색을 해보았다. 그는 'TV조선'이라는 종편업체에서 근무하는 기자다. 내가 바라보는 종편은 편협한 시각에 갇힌 수구(보수)적 집단이다.

어쩌면 종편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이 편협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강상구 기자가 종편에 근무한다는 사실은 이 책을 읽고난 이후였다. 저자에 대한 배경을 알게된 게 책을 다 읽고난 후라 책을 읽을 당시에는 다행히 고정관념이 생성되기 전이었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한 평가는 다행히 온전히 책에 대해서만 할 수 있었다.



내 마음에 들어온 구절

(p.25)
어떤 사람이 탈레스에게 물었다. "무엇이 어려운 일인가요?"
"자기 자신을 아는 것."
"그럼 무엇이 쉬운 일인가요?"
"남에게 충고하는 것."
어떤 똑똑한 사람이 더 똑똑한 사람에게 용 잡는 법을 배웠다. 전 재산을 다 털어놓으며 열심히 배웠더니, 삼 년 만에 용을 잡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그 기술을 쓸 곳이 없었다. (열어구)

->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요, 남에게 충고하는 것은 쉬운 일이라는 말이다. 장기를 두면 흔히 장기판을 직접 두고 있는 선수보다 옆에서 훈수두는 사람이 더 앞 길에 밝은 경우를 볼 수 있다. 이 경우에 딱 들어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직접 장기판에 서 있는 사람에게는 사각형의 장기판이 하나의 프레임으로 작용해 보다 큰 그림을 그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가 두는 한 수, 한 수가 때로는 결정적인 승패를 좌우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게 된다. 하지만 옆에서 훈수두는 사람은 승패에 따른 책임을 지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한 발 떨어져 생각을 하기 때문에 보다 큰 그림을 볼 수 있다. 


(p.59)
못 보고, 못 듣고, 말 못하면서 세상과 치열하게 소통했던 헬렌 켈러가 남긴 글 중에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글이 있다. 한 번도 세상을 본 적 없는 사람에게 세상을 볼 수 있는 단 사흘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하고 싶은 일들을 적은 것이다. 첫째 날은 아는 사람들을 다 불러다가 그 얼굴들을 찬찬히 뜯어보면서 마음에 기억한다. 둘째 날은 미술관에 간다. 셋째 날은, 마지막으로 해 뜨는 광경을 보겠다고 한다. 우리가 매일매일 아무 생각 없이 하거나, 너무나 당연해서 아예 하지 않는 일들이다. 그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경이로운 일들이다.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맺는다. "내일이면 앞을 못 보게 될 것처럼 당신의 눈을 사용하세요. 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축복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 작년에 나는 녹내장 초기 판정을 받았다. 녹내장은 안구 내부의 압력이 증가해 시신경을 압박해 점차 시력을 잃어가는 병이다. 치료를 안하고 방치할 경우, 실명까지 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병이다. 다행히 병을 발견한 이후, 매일같이 눈에 안약을 넣으며 현 상태를 잘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 
녹내장이라는 병명을 얻게된 직후, 나에게 든 생각은 내가 장님이 된다면? 이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봤다. 나는 앞을 못보기 때문에 일을 할 수 없을 것이고,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일상 생활이 정상적으로 하는 게 불가능해질 것이다. 책은 점자책으로 봐야 하며, TV는 소리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안내자가 없다면 집 앞의 슈퍼에 가는 것도 나에겐 매우 큰 모험이고 위험한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다른 것보다 가장 큰 걱정이 하나 있다. 지금 자라나는 내 딸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 내가 지금 시력을 잃게 된다면 나는 우리 딸의 2살 모습 밖에 기억을 못하게 될 것이다. 딸이 자라며 얼마나 예쁜 여자로 자라는지, 커서는 어떤 남자랑 결혼하는지 나는 알 수가 없을 것이다. 내가 시력을 잃어 단 하나의 걱정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까르페 디엠(Carpe diem)' 이라는 말이 있다. 현재를 즐기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과욕이나 탐욕을 내라는 뜻은 아니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현재를 놓치지 말라는 말이다. 헬렌 켈러가 "내일이면 앞을 못 보게 될 것처럼 당신의 눈을 사용하세요." 라는 말을 했다. 내일이면 어짜피 앞을 못 보게 될 터이니, 자극적인 시각을 주라는 말이 아니다. 헬렌켈러는 아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미술관에 가고, 해 뜨는 광경을 보겠다고 했다. 지극히 평범하면서 무난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이다. 현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사명과도 같은 것이다.
매일 밤 자기 전에 스스로에게 되물어봐야겠다. "나는 오늘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가?"




(p.63)
역사상 가장 싸움 잘하는 장군이라는 피로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자신이 왜 싸우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중략) 편히 쉬기 위해서 하는 싸움이라면, 싸움을 하지 않는 편이 더 편히 쉴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고 산다.
(중략)
진실은 가까이에 있다.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서, 마치 발에 너무 잘 맞는 신발처럼, 평소에는 깨닫지 못할 뿐이다. 이미 잘 맞는 신발을 신고 있으면서 자꾸만 더 멋진 남의 신발만 탐을 낸다. 그게 더 눈에 잘 띄니까. 눈 크게 뜨고 잘 보명 내 발에 이미 너무나도 잘 맞는 신발이 신겨져 있다. 중요한 건 내 신발의 가치를 찾는 일이다.

-> 피로스 장군은 전쟁을 통해 세력을 넓혀가는 것을 즐겨했다. 아랫사람이 왜 전쟁을 하냐는 질문에 자신의 왕국을 넓히는 것이라 대답한다. 그러면 왕국을 넓힐 수 있는 데까지 넓히고 나면 무엇을 할거냐고 묻는다. 피로스 장군은 그제서야 마음놓고 편히 쉬면서 살겠다고 말한다. 그에게 전쟁의 끝은 '쉼'이다. 이는 수단과 목적의 상관관계가 지극히 떨어지는 논리다. 그는 이미 자신의 왕국을 가진 왕이고, 그가 하고 싶은대로 쉬고 싶다면, 쉴 수 있는 사람이다. 굳이 전쟁을 해가며 자신을 피곤하게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사느냐고 물으면 '행복하게 살기 위해' 라는 답을 가장 많이 한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과연 무엇인가? 행복은 어떠한 수단과 행위의 끝에 오는 결과물이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하고, 내가 즐길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바로 행복이다. 가족과 함께 있다는 것이 지금은 너무나 당연해서, 그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할 뿐인 것이다. 이미 사랑하는 가족을 가지고 있으면서 무엇을 더 추구해야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내가 신은 신발이 나에게 잘 맞으면 신발의 존재를 잊고 살게 된다. 신발의 존재가 나에게 각인되는 것은 신발이 없거나, 맞지 않거나, 닳아서 불편해지는 경험을 해보고 나서야 느끼게 된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살아가는 것들과 함께하는 행복에 대한 가치다.




(p.102)
멘토르는 해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정답은 어차피 없다. 답은 텔레마코스의 마음속에 있다. 그 답을 스스로 찾도록 한다. 멘토의 역할은 그렇게 찾은 답에 신뢰를 보내는 것이다.
답을 찾지 못해 끙끙거리는 사람 중에는 자기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를 모르는 일이 많다. 더 나아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른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면, 그래서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알면 답은 의외로 쉽게 모습을 드러낸다.주변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이란 여기까지다. 인생 좀 더 살아봤다고 섣불리 정답을 제시하는 건 욕심이자 오만이다. 어디까지나 자기 기준에서 정답일 뿐이다. 다른 사람에게도 정답일 리가 없다.

-> 아이에게 물고기를 잡아줄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주라는 말이 있다. 물고기를 잡아주기만 하면 그 아이는 물고기를 잡아주는 사람이 없어지면 당장 굶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면 스승이 없어도 굶지 않고 물고기를 잡으며 살아갈 수 있다. 나도 이제는 회사생활이 7년차가 되면서 배움을 받기 보다 가르치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작년에 입사한 신입사원에게 멘토의 역할을 해주었는데, 그 후배에게 나는 어떤 멘토였을까? 회사에서 설정한 멘토의 의무기간을 마치고 난 그 후배에게 신경을 거의 쓰고 살지 못했다. 그랬더니 그 후배의 업무역량이 생각보다 늘지 않았다는 것을 1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3개월의 의무 멘토기간을 통해 나는 기초적인 업무 스킬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그 스킬들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치지 못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일을 왜 해야 하는지, 그 일을 통해 본인은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근원적인 목적 의식을 심어주지 못했다. 
나는 다시 한번 그 후배를 가르치기로 했다. 이번에는 스킬이 아닌 일의 근본을 가르쳐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가급적이면 자신이 스스로 해보면서 본인이 그 이유를 깨닫도록 유도해주고 싶다. 왜냐면 같은 일을 하면서도 나와 그 후배가 느끼는 것이 다를 것이라는 전제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일을 하는 목적은 직원들마다 다를 수 있다. 본인이 왜 이 일을 하는지 그에 대한 목적은 스스로 깨닫는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나는 그 후배에게 나의 업무를 보여주고, 그 업무를 모방하고 자신의 방향을 찾을 때까지 무기한으로 옆에서 봐줄 것이다. 그는 나에게 있어 풀지 못한 숙제이고, 일련의 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는 해방구이다. 


벌써 2016년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다. 2016년 상반기의 내 삶을 돌아보며 부문별로 결산을 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그 첫 번째 아이템은 독서다.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2013년부터는 내가 어떤 책을 읽었는지 독서목록을 에버노트를 통해 쭉 기록해왔다. 벌써 4년째를 맞이하고 있는 기록 덕분에 이번 결산이 좀 더 의미있게 다가오는 느낌이 든다.


올 해 나는 6개월동안 총 15권의 책을 읽었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연간 100권씩 읽는다고 하니 나는 거기에 비하면 자라나는 새싹 수준일 것이다. 하지만 기록을 하고 난 뒤 나의 독서량은 매년 늘어났다. 그 점은 내가 꽤나 자부하고 있다. 특히 올 해부터는 전자책 리더기를 통해 보다 손 쉽게 독서에 빠져들 수 있었다. 아래는 주요 통계를 통해 내가 어떤 독서 생활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내용과, 내가 읽은 책의 제목과 그들에 대한 짧은 감상평으로 결산을 진행해보도록 하겠다.



<독서 상반기 결산 요약>


내가 읽은 책들을 각 분야별로 구분을 해봤다. 소설이 무려 60%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전자책의 특징으로 말미암은 경향이 있는데, 전자책을 책의 전체를 한번에 꿰뚫어보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현재 내가 읽고 있는 페이지만 구현이 되기 때문에 책의 두께를 통해 내가 얼마나 읽었는지, 앞뒤를 뒤적여가며 읽는 것에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전자책을 통해서는 주로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겨 읽어내는 소설을 많이 읽게 된다. 앞뒤 문맥을 파악해가며 읽거나 중간 중간 발췌해가며 읽어야 하는 분야의 책들은 전자책으로 읽기 힘들다.



앞서 얘기했듯, 나는 올 상반기에 15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기록을 시작한 2013년부터 연간 독서량을 비교해봤다. 올 해는 절반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15권의 수치가 가히 적어보이지는 않는다. 이대로라면 올 해도 독서량에 대해 신기록을 세울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나는 가을에 책을 몰아 읽기에 강하다. 작년의 경우, 9월 한 달간 읽은 책만 무려 8권이나 된다. 올 해는 드디어 내가 연간 목표로 세우고 있는 30권 읽기를 달성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자책의 경우, 두께를 알기 어렵기도 하고 실제 책의 페이지 구성과 다를 확률이 매우 높다. 글씨 크기나 여백을 독자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기 때문에 환경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페이지가 많이 차이나게 된다. 그래서 각 권별 페이지를 체크할 때는 네이버에서 도서검색을 해보고 기록해두었다.

그리고 예전에 봤던 '1만 페이지 독서력' 이라는 책을 응용해 독서를 하면서 내가 읽은 누적 페이지 수를 기록했다. 연간 1만 페이지를 읽는게 목표라고 한다면 올 해 상반기에 벌써 5,386 페이지를 달성했으니 이대로 간다면 누적 1만 페이지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월별로 다소 편차가 있는 편이다. 그 이유는 2가지를 들 수 있겠다. 첫 번째로는 이상하게 읽히지 않는 책이 생겼을 경우다. 올 해 읽은 책 중 유독 '내 앞의 생' 이라는 소설은 진도를 나가는게 너무 힘들었다. 두 번째 이유는 독서보다 급했던 나의 생활이 있었던 기간이 있었다. 업무적으로 올 해 처음 시작하는 일이 있어 그것에 몰입해야 할 기간이 4월에 있었다. 그래서 독서량이 좀 적은 편이었다. 하반기에는 첫 번째 이유가 아니라면 독서량이 줄어들 일은 크게 없으리라고 예상한다.



마지막으로 독서 형태를 분류해봤다. 역시나 올 해는 전자책 리더기의 원년이다. 리디북스의 페이퍼 라이트 라는 전자책 리더기를 사고 난 뒤, 독서의 편리함이 매우 증가했다. 휴대성이나 편의성이 아주 뛰어나다. 하지만 아직까지 종이책을 완전히 놓을 수도 없다. 왜냐하면 내가 읽고 싶은 모든 책들이 전자책 시장에서 구현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모든 책들이 전자책으로 나오는 세상이 오겠지.



<내가 읽은 책과 짧은 감상평>

1 : 동물농장 (조지오웰/김병익 역) : 1월 리페라 / p.190

 - 감상평 : 약 70년 전에 쓰인 소설이지만, 마치 현재의 세계를 풍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권력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고, 순환한다는 것. 과연 우리는 권력 앞에서 진보한 삶을 살아가기 어려운걸까?


2 :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2 (채사장) : 1월 리페라 / p.376 (누적 566)

 - 감상평 : 정말 아주 얇게만 알고 있던 철학의 연대와 사조에 대해 알게 되었다. 철학 외에 종교, 예술, 과학 등도 있었으나, 철학에 가장 관심이 갔다. 리디북스를 이용해 얻은 책들을 통해 철학 고전들을 많이 섭렵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3 : 달과 6펜스, 과자와 맥주 (서머싯 몸/이철범 역) : 1월 리페라 / p.450 (누적 1,016)

 - 감상평 : 자기밖에 모르는 천재 화가 스트릭랜드와 그 주변의 이야기. 아주 어렸을 때 제목만 보고 뭔가 심오한 내용일 것 같아 내내 피해오다 결국에 읽게된 고전이다. 현실(6펜스)과 이상(달)의 사이에서 고민하고 번뇌하는 예술가의 삶을 바라보았다.


4 : 라면을 끓이며 (김훈) : 12월 영풍문고 구입 / p.412 (누적 1,428)

 - 감상평 : 김훈의 언어는 강하고 정제되어 있는 전형적인 마초의 느낌이다. 그러나 언어의 표현력이 너무 아름답다. 일상에서, 그리고 사회 이슈들을 접하면서 그는 저런 깊은 생각과 표현을 할 수 있구나 싶다. 필사하며 그의 문장력을 훔치고 싶다.


5 : 나의 한국현대사 (유시민) : 1월 리페라 / p.420 (누적 1,848)

 - 감상평 : 작가 유시민의 문장은 명쾌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그가 대한민국에서 살아온 55년의 역사를 그의 관점에서 기술했다. 똑똑한 운동권 선배로부터 우리나라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쟁취했는지 강의를 듣는 느낌이었다. 


6 :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 2월 리페라 / p.358 (누적 2,206)

 - 감상평 : 고아로 대리모에게서 자라는 모하메드(모모)의 성장 이야기.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 세상은 행복하게 살기 어려운 곳이다. 험한 세상에서 자기를 돌봐주는 사람에게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다루고 있다. 어린 모모가 동네 할아버지에게 묻는 말이 가슴을 울린다. "사람은 사랑없이 살 수 있나요?'


7 : 수상한 사람들 (히가시노 게이고) : 3월 리페라 / p.280 (누적 2,486)

 - 감상평 : 짧은 추리소설 7편이 담겨있는 책이다. 장편의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작가와 심각한 두뇌싸움을 하기 마련인데,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추리소설들은 깊이가 깊지 않으면서도 재치있게 풀어낸 추리로 읽는 이로 하여금 재미를 느끼게 한다.


8 : 백마산장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 3월 리페라 / p.334 (누적 2,820)

 - 감상평 : 백마산장에서 오빠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정확히 1년뒤, 그 때 그 사람들이 다시 모이는 그곳으로 동생이 찾아가 산장에 얽힌 미스테리를 풀어나간다. 마치 '소년탐정 김전일'의 만화를 소설로 읽는 듯한 느낌. 범인은 이 안에 있어! 모든 비밀은 풀렸다!


9 : 11문자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 4월 리페라 / p.304 (누적 3,124)

 - 감상평 :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초기 대표작이다. 그래서 그런건지 추리의 전개가 좀 올드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일본 이름은 왜이리 헷갈리는지.. 어디서는 이름을 썼다가 다른 부분에서는 성을 쓰니까 동일인물을 말하고 있다는 걸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다. 


10 : 데미안 (헤르만 헤세) : 5월, 작년에 구입한 책 / p.239 (누적 3,363)

 - 감상평 : 헤세의 대표작 '데미안'은 자아를 찾아가는 젊은이의 이야기다. 니체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은 헤세는 소설이지만 그 어떤 철학책보다 깊은 통찰을 요구하는 글을 썼다. 중학교 1학년때 처음으로 데미안을 읽었었는데, 그 때 지금 읽고 이해한만큼 얻는 것이 있었더라면 지금의 내 삶이 조금은 더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11 : 시민의 교양 (채사장) : 5월 리페라 / p.348 (누적 3,711)

 - 감상평 : 채사장의 전작,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의 후속작으로 경제학적인 입장에서 '세금, 국가, 자유, 직업, 교육, 정의, 미래' 라는 7가지 현실 인문학을 하나로 꿰뚫어 쉽게 설명했다. 야구에 이런 말이 있다. 수비자가 어려운 타구를 멋있게 처리하는 것보다, 쉽게 처리하는 것이 실력이다! 채사장은 이렇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주변 지식을 탐구했을지. 참 재밌게 읽었다.


12 : 7년의 밤 (정유정) : 5월 리페라 / p.523 (누적 4,234)

 - 감상평 : 우리나라 작가 중에 감히 최고의 서스펜스 스릴러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첫장부터 센스있는 작가의 문체부터 흥미를 불러오기 시작해, 무서울 정도로 치밀한 얼개와 구조로 단단한 성을 쌓아 나가는 느낌이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장까지 내 숨이 가쁠 정도로 내달려 읽게 만드는 이야기다. 난 이제 정유정 작가의 팬이다.


13 : 담론 (신영복) : 6월, 작년에 구입한 책 / p.428 (누적 4,662)

 - 감상평 : 동양고전을 통해 '관계론'에 대해 넓게 알아보는 1부와, 감옥에서 다른 사람을 관찰하며 알아보는 '안간론'을 담은 2부! 신영복 선생님은 20년이 넘는 투옥생활을 통해 사람은 '관계'를 통해 정의되고, 발전할 수 있다고 배웠다고 한다.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가장 기본적인 인간성마저 몰락시켜버리는 이 사회 구조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일러주는 책이다.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다.


14 : 이기는 프레임 (조지 레이코프) : 6월 리페라 / p.272 (누적4,934)

 - 감상평 :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라는 책으로 정치에서 프레임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설명해주었던 책의 저자가 쓴 책이다. 조지 레이코프는 진보의 입장에서 보수파가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어떤 프레임으로 아젠다를 이끌어 갈 것인지 설명했다. 단, 이 책의 모든 소스는 미국 정치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온전히 우리나라에 대입시킬 수 없다. 그리고.. 번역이 개판이다.


15 : 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 6월 리페라 / p.452 (누적 5,386)

 - 감상평 : 츤데레의 전형을 보여주는 오베라는 남자. 그가 살아온 일생에 대한 이야기와, 그가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하지만 그만의 방식으로 사랑했던 아내를 세상에서 떠나보내고 그도 따라가려고 자살을 시도하는 헤프닝들에 대한 이야기다. 오베의 말투와 행동으로 인해 읽는 이를 웃음짓게 만들지만, 그 이야기의 끝에서는 눈물을 쏙 빼는 마법을 부린다.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 소설, 읽는 내내 오베의 뜨거운 사랑을 느낄 수 있었던 소설, 복잡하게 살아가는 우리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따뜻한 소설이었다.





나에게 맞는 책을 고르는 방법부터,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지, 그리고 그 책을 내 안에 어떻게 저장시킬 것인지에 대해 나만의 방법을 정리해 보았다.


1) 나에게 맞는 좋은 책을 고르는 법

 -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평생을 책만 읽는다고 해도 이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을 수는 없다. 그 중에서 어떤 책을 선택하여 읽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독서의 초보일 경우에는 주로 베스트 셀러로 올라온 책에 먼저 눈길이 가게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책이 좋은 책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선택했다 하더라도, 그 책이 나에게 꼭 필요한 책인지에 대해서는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베스트 셀러는 아주 가끔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한 정도로 검색해볼 뿐, 베스트 셀러에서 책을 고르는 경우는 매우 적다. 

나의 경우에는, 일단 질 좋은 서평이 많은 블로그들을 주로 둘러보고, 관심이 가는 책들을 'book wish list' 라는 메모장에 기록을 해둔다. 위시 리스트에 기록을 할 때는 언제, 어디서, 왜 이 책을 위시 리스트에 올려놓게 되었는지 기록한다. 관심이 간다고 해서 당장 그 책을 사거나 빌려 읽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이 리스트를 어느 정도 숙성시켜야, 진정으로 나에게 필요한 책인지 판가름할 수 있는 기준이 생기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위시리스트가 쌓이면 리스트에 나의 관심도를 기준으로 우선순위 정렬을 한다. 그리고 그 책을 사서 볼지, 빌려서 볼지에 대한 판단을 한다. 보통 1회성으로 읽고 치우는 소설책의 경우에는 사는 것보다는 빌리는 쪽을 선택한다. 반면 소장해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봄직한 책들은 사야할 목록으로 올려놓는다. 이렇게 시간을 두고 책을 접하는 루트별로 구분을 하면 필요한 책을 사는 데 들이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 책을 고르는 안목이 생기게 된다.

 

2) 책을 읽는 방법

 - 보통 소설을 읽을 때는 묵독으로 문장 단위로 끊어 읽는다. 그리고 극의 전개에 따라 흐름이 끊기지 않는 범위 내에 여러 문장을 한번에 읽기도 한다. 한편, 실용서의 경우에는 통독으로 빠르게 훑어서 읽는다. 그래야 나에게 필요한 부분을 재빠르게 찾을 수 있고,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시각을 만들 수 있다. 나는 인문학 계열 중에서 유독 철학에 대한 책을 많이 찾아보는 편인데, 철학 책은 글의 뜻을 잘 생각하면서 차분하게 하나하나 읽어가는 숙독의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같은 책읽기라도 필요에 따라 다양한 방법의 읽기 방법이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몇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편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처럼 깊은 생각을 하며 읽어야 하는 딱딱한 책을 읽을 때 말랑말랑한 느낌의 가벼운 소설을 같이 읽기도 한다. 그러면 딱딱하고 무거운 책을 읽는 데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반면에 이번에 읽게된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은 '메모 습관의 힘' 이라는 비슷한 내용의 책을 같이 읽기도 한다. 이 방식으로 책을 같이 읽어나가면 따로 2권을 읽었을 때보다 보다 깊이 있는 생각을 할 수 있게되고, 다양한 시각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된다.

장소에 따라 책을 다르게 읽기도 한다. 출퇴근 시간이나 점심시간 같은 자투리 시간에는 흐름이 짧게 끊겨도 읽기 편한 비소설을 읽고, 오랜 시간을 두고 책을 읽을 여건이 된다면 가급적 흐름을 끊지 않고 쭉 이야기를 전개시킬 수 있는 소설을 읽는 것이다. 


3) 필사 or 발췌요약

 - 유시민은 읽은 책을 발췌요약하면서 책의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메모 습관의 힘'을 쓴 신정철 작가는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와닿는 구절을 필사하는 방법을 권한다. 그리고 필사한 아래에 자신의 생각을 곁들여 메모를 하라고 한다. 두 사람은 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책을 읽으며 획득한 지식을 시간이 지나며 휘발시키지 않고 내 안에 가두는 방법을 말하고 있다. 항상 책을 읽고 난 뒤 시간이 오래 지나면, 책을 읽은 기억은 있는데 내용이 생각 안날 때가 생긴다. 책을 그렇게 읽으면 아무리 많은 책을 읽었다 하더라도 남은게 얼마 없기 때문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단 한권을 읽더라도 많은 것을 남길 수 있는 책읽기를 해야 한다.


이 포스팅에 도움을 받은 책


*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유시민)

* 메모 습관의 힘 (신정철)



처음으로 진로를 선택하는 10대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은 1학년 때, 이과로 갈지 문과로 갈지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장래희망에 대한 첫 고민을 하게 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늘 '수포자(수학포기자)'는 일정비율로 존재해왔고, 그들은 수학이나 과학이 싫어 문과를 지원했다. 나도 문과를 지원했지만, 나는 수포자가 아니었다. 정말 순수하게 문학을 좋아했고, 나름 또래들에 비해 독서량도 많은 편이었다. 시험기간에도 소설책 한권을 몰래 읽는 재미가 참 쏠쏠했다. 아직도 그 당시 눈물을 흘리며 읽었던 현진건의 '무영탑'이 생각난다. 수능의 노예라 불리는 고등학교 3학년 시절도 별다를 바가 없었다. 모의고사 문제집을 풀어도 난 언제나 언어영역이 제일 재밌었다. 언어영역에서 제시문으로 나오는 글을 읽는 재미가 있었다고나 할까? 문제를 푸는 건 부차적인 것이었고, 다양한 글을 감질맛 날 만큼만 제시해주는 게 아주 나를 안달나게도 했었다. 


그러고 보니, 난 책이랑 아주 어렸을 때부터 친했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학교 내에 도서관이 따로 있었는데, 친구들과 함께 학교를 마치면 도서관에 모여 앉아 독서카드의 리스트를 채우는 재미로 살았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는 등교를 해서 하교를 할 때까지 공부는 안하고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이라는 소설을 읽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공부보다는 책이 좋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나의 10대 시절은 소위 '문학소년' 이라는 칭호가 부족하지 않을 학생이었다.


수능을 마치고 전국의 수험생들은 3개의 대학에 원서를 낼 수 있었다. 나는 '당연하게' 국문학과를 가고 싶었다. 하지만 집에서는 국문학과를 나오면 취업을 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경영학을 배우길 원했다. 그래서 국문학과를 지원한 학교는 상향지원을 했고, 국제통상학과를 지원한 학교는 커트라인에 달랑말랑한 곳으로, 관광학과는 살짝 하향지원을 했다. 역시나 국문학과는 탈락했고, 국제통상학과는 현실성 없는 대기합격, 관광학과는 합격이었다. 난 그렇게 관광학도가 되었다.


20대 초반, 가치관을 세우다

스무살의 나는 가치관이 상실된 시기였다. 수년간 대학 입시 하나만 바라보고 살았던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고 나니 이미 목표는 완성되었고, 그 이후를 살아갈 목표나 가치관이라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군 입대 전까지 일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잉여로운 시간을 보냈다. 술 마시고, 연애하는 데 나의 모든 젊음을 불태웠다. 방황을 많이 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 그 시절엔 군 입대 전까지 시한부 인생을 판정받은 환자처럼 살았으니까 말이다. 미래를 꿈꾸기 보다는 현실의 재미를 추구하는 돼지처럼 살았다.


2년이라는 군 생활이 나에게는 많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었다. 나의 인생 가치관을 세웠던 시기이기도 하고, 2년동안 7백권의 책을 읽으며 마음 그릇의 너비를 양껏 키울 수 있었던 시기였다. 군 전역 후 했던 유럽 배낭여행, 호주 워킹홀리데이, 토익공부 등이 군 시절 계획했던 일들이었다. 내 인생의 로드맵을 구성했고, 군 전역 후 향후 몇년은 로드맵 대로 실천만 하면 별다른 고민이 없을 듯 했다.


20대 후반, 더 깊은 진로에 대한 고민

2008년 하반기는 4학년 2학기를 맞으며 취업을 준비하는 시즌이 되었고, 세계는 미국발 서브프라임 금융 경제가 무너지는 시즌이었다. 안그래도 좁은 취업문이었는데, 그 시절 모든 기업들은 신규 채용의 문을 더욱 좁혔다. 아니, 아예 닫아버렸다. 나의 가치관을 실현시켜줄 도구인 진로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해본 시기다. 나의 전공인 관광학을 살려 취직을 할 수 있는 모든 관광업은 경제위기로 취업의 문을 굳게 닫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존속 여부도 불투명해보였다. 그래도 대학시절의 전공을 무시하는 진로를 선택하고 싶지는 않았다. 유명 대기업 계열의 호텔에도 원서를 내보고, 대기업 케이터링 업체나 식음료 기업에도 원서를 내봤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시작했던 취업시도는 낙엽이 떨어지는 계절까지 이어졌다. 얼마있음 눈이 내리는 계절이 올텐데, 그 전까지는 취업에 성공하고 싶었다. 가을부터는 전공이고 뭐고, 아무데나 막 찔러넣기 시작했다. 평소에 가지도 않던 성당에 나가 기도도 했다. 내가 감사하게 일 할 수 있는 자리 하나만 찾게 해달라고.


교수님의 추천으로 대기업 계열사 중에 객실 관리하는 곳으로 운 좋게 취업에 성공했다. 하지만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으로, 그 성공은 반쪽짜리였다. 그래도 감사했다. 나의 열정을 다해 기업에서 인정받으면 정규직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취업한 곳은 국내에서 손가락에 꼽는 대형 건설그룹의 계열사였다. 정장 자켓 왼쪽 가슴에 자랑스럽게 회사 뱃지를 달고 다녔다. 대기업이란게 원래 그런 곳인 건지, 건설업체 특유의 성향인건지 신입사원에 대한 트레이닝은 매우 혹독했다. 혼나고 속상한 마음에 밖에 나가 담배를 피다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 그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 다 지나고 나서 든 생각이다. 그 시절의 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민이 이어졌다. 


기업 연수원을 운영하는 자리에 있다보니 다양한 기업의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다양한 교육이 이뤄지는 현장을 보았다. 나와 같은 신입사원부터, 머리가 희끗한 부장급, 임원분들도 교육을 받으러 들락거렸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꾸준히 교육을 받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 공부는 평생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 시기였다. 지금도 내가 종종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하는 것도 그 때 경험한 것들이 자산이 되어주는 것 같다. 직장이라는 조직은 바다와 같다. 그 바다에서 살아남으려면 열심히 헤엄을 쳐야 한다. 힘들고 지쳐서 물길질을 안하고 쉬면 그 바다 속으로 가라 앉게 되는 것이다. 


첫 직장을 가지면서 취미로 삼게된 것이 매월 월급받는 주 토요일에 서점에 가서 맘에 드는 책 서너권씩을 사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달동안 그 책들을 읽으며 다음달까지 버텼다. 첫 직장을 일년 반 정도 다녔는데, 일년 반동안 읽었던 책들은 주로 경영과 자기계발 서적이었다. 어떻게 하면 더욱 생산성 있는 직원이 될지, 시간관리는 어떻게 하는게 좋은지, 문서작성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 신입사원이 열심히 대리급의 퍼포먼스를 익히고자 하는 욕구가 나를 이끌었다. 그리고 나의 이상을 향한 책들도 섭렵했다. 전략기획, 인사, 재무 쪽 책도 많이 읽었다. 이 시기에 읽었던 책들 덕분에 다른 직원들보다 '기업'이라는 본질 자체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깊어진 것 같다. 회사의 정책과 변화에 대해 불만을 가지기 보다는 그것을 이해하고 재빨리 나의 이득에 이용하는 방법을 배우고자 했다. 이 시기엔 소설 책을 읽는 것은 부질없게 여겨졌다. 실무에 필요한 스킬을 연마하고, 현상을 관찰해 본질을 파악해 수치화 시킬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게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남들 살아가는 이야기는 나에게 득이 될 게 없었고, 감성에 충실한 문체들은 이성적인 판단에 걸림돌이라고만 여겼다.


이직, 새로운 진로를 찾다

2010년이 밝아오면서, 경제 위기는 완만한 복구가 되는 중이었다. 다시 여행사 채용의 문이 열렸다. 나는 지난 일년 반동안 쌓아온 실무감각을 무기로 이직에 성공했다. 연봉은 대기업의 비정규직으로 일할 때보다 모자른 돈이지만, 정규직 일자리였다. 작년에 유행한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가 했던 자조적인 질문. "이대로만 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는 겁니까?" 이 말이 내내 나의 마음 속에 있었다. 아니, 가망성은 없었다. 기업을 이해하면 이해할 수록 비정규직은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사실만 깨달을 뿐이었다. 돈은 적지만, 안정적인 정규직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의 가치관을 실현시킬 수 있는 직업이었다. 


여행사에서는 고작 신입사원이었지만, 나름 대기업의 업무를 일년 반동안 트레이닝을 받은 '즉시전력감' 선수였다. 부서의 기획업무를 맡으며, 일개 신입사원 시절부터 능력을 인정받아 부서의 월별 실적 평가 보고서를 작성하고, 연간 목표배분 작업을 수행했다. 익숙한 일이었고, 재밌었다. 행사 유치와 의전도 기업 연수원에서 수도 없이 했던 업무였다. 크게 다를게 없는 업무였다. 아니, 오히려 여행사는 지난 대기업에서 했던 것보다 규모도 작았고, 체계가 명확하지도 않았다. 내가 일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었다. 


기획업무와 함께 맡은 건 마케팅이었다. 전통적인 마케팅이라기 보다는 상품 판촉 마케팅을 주로 담당하는 역할이었다. 여행지를 소개하는 브로셔를 제작하고, 웹의 상품을 관리하는 MD의 역할을 했다.  이 시기에 나의 독서 편식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마케팅 업무를 맡게되면서 알게된 점은, 마케팅의 본질은 사람에 대한 이해 라는 것이다. 다양한 사람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것이 바로 소설이었다. 의도적으로 내가 읽는 책의 절반을 소설에 투자하려고 노력을 기울였다. 


진로와 가치관

진로와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나의 지난 삶을 쭉 돌아보는 글을 쓰게 되었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그 가치관에 따라 진로를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가치관이라는 것은 수학처럼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가치관을 어떻게 정립하느냐에 따라 수 많은 해가 나올 수 있지만, 가치관을 올바른 방향으로 정립하느냐에 따라 오답이 존재하기는 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가치관이 '나만 잘 살면 돼' 라고 설정되었다면, 이는 오답이다. 방향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말이다. 가치관이 정립되었다면, 본인이 생각하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써 진로를 탐색해봐야 한다. 


어디선가 들은 말인데, 꿈이라는 것은 'be'동사가 아닌 'do'동사로 표현해야 한다고 한다. 

I will be a doctor. - 난 의사가 될거야. 라는 꿈은 본인이 의사가 되는 순간 꿈이 이루어진 상태가 되어 버리고, 의사로서의 소명가치가 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꿈을 상실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I will take care of sick people. - 난 아픈 사람을 돌봐주는 사람이 될거야. 라는 꿈은 직업으로써의 '의사'는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된다. 의사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꿈을 지속적으로 이뤄나갈 수 있는 것이다. 


가치관이 진로 탐색에 앞서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더라도 다양한 진로로 뻗어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위의 의사 이야기를 계속 예를 들어 설명을 하자면, 아픈 사람들을 돌봐주는 것에서 보람을 느끼고 나의 사명(이뤄야 할 가치)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의사가 되어도 이룰 수 있지만, NGO기구에서 일하게 될 수도 있고, 간호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론이 실전을 앞선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시대의 젊은이라면 인생의 가치관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에 대해 깊은 고뇌를 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영어 점수를 쌓고, 인턴 경험을 쌓고,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것은 나의 본질을 보는 것이 아닌, 나의 본질이 투영된 현상을 보는 것이다. 처음부터 계속 얘기했듯이, 자신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릇을 키우는 방법으로 제일 쉬운 것이 '독서'인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독서가 가장 큰 힘이다. 경험은 그 뒤의 일이다. 어르신들이 젊었을 때 다양한 경험을 해보랬다고 해서, 무작정 아무 거나 경험하라는 말이 아니다. 내가 해봐야 할 경험이 나의 가치관 실현에 얼만큼 부합되는지 알아보는 과정으로써 해보는 경험이 중요한 것이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봐야 뭐가 자신에게 맞는지 알 수 있다고? 물론,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그렇게 다양한 경험을 하기엔 짧다. 기보지 못한 길을 꼭 가봐야지만 나의 길인지 판단할 수 있는게 아니다. 그래서 다양한 공부가 필요하다. 다양한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독서가 필요하다.


그래서 젊은 날에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을 읽고.



자기혁명

저자
박경철 지음
출판사
리더스북 | 2011-10-05 출간
카테고리
자기계발
책소개
"대한민국의 지성, 실천하는 비판가, 열정적 독서광, 청춘의 멘...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2015년 9월에.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어느덧 2015년도 곧 3분기를 마감하면서 마지막 분기만을 남겨두고 있다. 전에 영화는 상반기 결산을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 책은 그러질 못한거 같아 이번 3분기 결산으로 올 해 읽은 책에 대해 정리를 해 보고자 한다.



17권의 책을 읽다

지난 9개월동안 나는 총 17권의 책을 읽었다. 올해 아이가 태어나면서 집에서 독서를 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졌다는 핑계를 대야겠다. 뭐 예년보다 그리 못 읽은 것도 아니네? 라고 생각될만 한 수치기도 하지만, 예년과 다른 점은 책을 못 읽은 만큼 사이버강의도 덜 들었다는 점을 참고했다. 책을 읽을 시간이 줄어들자, 사이버강의를 줄여 그 시간을 독서에 할애했다. 


무엇을 읽었나?

올 해 유난히 고민이 많은 시기였다. 지금도 그렇고. 그래서 책을 통해 잠시나마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적 욕구라기 보다는 일탈의 수단으로 말이다. 그래서 소설을 많이 읽게 되어다. 소설에 집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현실에 대한 고민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퇴근 후 지인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에서도 잠시 현실을 도피할 수 있지만, 돈은 돈대로 쓰고, 숙취도 남는다는 점에서 독서가 그래도 많이 나를 건강하게 위로해주었다.


구매가 줄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매달 월급받는 날이면 대형서점을 찾아가 이번 달엔 어떤 책을 살까~ 하는 것이 나의 취미였다. 경제력이 허락한다면 집에 서재를 꾸미고 나의 장서를 꾸미고 싶은게 나의 꿈이었다. 

하지만, 올해 나의 서재는 딸아이의 책에 밀려 중고서점에 판매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독서 리스트에 나온 '2nd'라는 표기는 그동안 서재에 잠들어 있던 책을 다시 읽은 것이다. 작년에는 e북을 구매해서 많이 읽었으나, 올해는 e북도 많이 줄어들었고, 대신 서울도서관에서 대여해서 읽은 책이 조금씩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활자'에 대한 갈증

리스트 11번에 있는 책은 자격증 공부를 위해 읽은 교재이다. 시험공부라는 것이 늘 그렇듯, 같은 내용을 최소한 너댓번은 읽었을 것이다. 재독이 반복될 수록 내용이 머릿속에 자리잡기는 했지만 지루해짐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뒷장의 내용이 더 이상 궁금하지 않은 독서는 참으로 재미가 없었다. 그렇게 활자 속에 숨어있는 영화 같은 이야기들에 대한 목마름이 강해졌고, 시험을 채 치루기도 전에 다시 소설의 재미에 빠져들고 말았다. 7~8월 두달간 공부를 하고, 9월달에만 내리 6권을 읽은게 나의 갈증을 조금 해소해주었다. 


올해의 마무리는..

이제 올해는 3개월 정도 남았다. 내가 즐겨찾는 블로그 중에서 재미있는 독서기록을 하는 것을 보았다. '1만 페이지 독서력'이라는 책을 참조한 것인데, 1년에 읽는 책을 책의 권수가 아니라 읽은 총 페이지 수를 기록하는 것이다. 그것을 누적해 1만 페이지를 채우자는 것인데, 현재 나는 6천 페이지를 겨우 넘긴 상태이다. 1만 페이지를 채우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겠지만, 올해 나의 목표는 다른 데 있다. 바로 독서노트를 생활화 하는 것. 



책을 다 읽고 나면 뿌듯한 마음이 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내용이 휘발되어 버리고 책의 내용보다는 느낌만 남아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에 서재안에 잠들어 있던 책들을 다시 읽어보면서 더욱 강렬하게 느끼게 되었다. 한권을 읽더라도 제대로 내 마음에 남겨두고, 이를 체화하는 방법으로 노트를 선택했다.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노트를 어떻게 작성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남아있는 빈 공간이 훨씬 많기 때문에 올 해 안에 이 노트를 다 채우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공간을 조금씩 채워나가면서 노트를 작성하는 방법도 점점 개선할 것이고, 이 습관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나의 올해 남은 목표!


배우고 익히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줄거리

젊은 세 청년이 있다. 이들은 좀도둑질을 하다 나미야 잡화점에 잠시 몸을 숨기게 된다. 아무도 살지 않을거라 여겨졌던 그 집에 갑자기 편지가 들어오고, 그 편지에는 고민을 상담하는 내용이 적혀있다. 좀도둑질이나 하며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세 청년들 앞에 떨어진 편지.

과연 그들은 이 고민을 제대로 상담해줄 수 있을까?

교육학이나 심리학을 전공하고 전문 상담가가 되기 위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도 상담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헤아려주어야 하기 때문에 예민하고 민감한 일이다. 이론적인 상담기술은 전혀 배우지도 못한 이 청년들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은 느낀대로, 그리고 직설적으로 답해주는 것이었다. 

- 그런데 말입니다. -

이들의 조언은 뜻밖의 결과로 상담자를 감동받게 만들었다. 나미야 잡화점의 답장 (세 청년의 느낌대로, 그리고 직설적인..)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 이유는 상담을 듣는 본인들의 마음가짐이 좋았기 때문이다. ~라고 소설에서는 평가한다. 충분히 스스로 고민을 해본 뒤에 조언을 구하는 입장과 자기성찰이 결여된 불만토로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고민상담을 요청하는 이들은 대부분 자기성찰 끝에 잡화점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한다. 

본래 나미야 잡화점은 '나미야'라는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잡화점으로 나미야를 '나야미'(일본어로 고민을 뜻한다고 함. 일종의 언어유희를 보인다. 번역본이라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이런 구절이 종종 있는 듯 하다.)로 부르며 놀리는 아이들에게 장난스런 고민을 진지하게 상담을 해주다 정말 진지한 고민상담실로 바뀌게 되었다.

5개의 챕터로 나뉘게 되는데 이들은 모두 '환광원'이라는 고아원과 연결이 되어있고, 모든 챕터의 등장인물들이 연관성을 가지면서 복잡한 얼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얼개는 마지막으로 가면서 나미야 할아버지의 첫사랑이 설립한 환광원의 주인과의 연결고리를 뜻하게 됨을 알 수 있게 된다.

상담에 나온 고민들

1. 사랑하는 사람이 병에 걸렸다. 자신의 꿈인 운동을 포기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간호해야 할까요? 

2. 뮤지션이 꿈인 생선가게 아들. 아무리 노력을 해봐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데 뮤지션을 포기하고 생선가게를 물려받아야 할까요?

3. 유부남의 아이를 임신한 여성. 미혼모의 몸으로 이 아이를 낳아도 될까요?

4. 야반도주를 해야하는 부모님에 반대하는 청소년. 부모님을 따라가야 할까요?

5. 낮에는 사무직을, 밤에는 호스티스를 하는 여성. 성공하려면 어느 쪽을 택해야 할까요?


- 위의 다섯가지 고민들을 상담하는 것으로 이 소설은 전개를 펼친다. 어느 하나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다. 과연 나라면 뭐라고 상담을 해주었을까? 

'네, 그렇네요. 많이 힘드시겠어요.'

라며 아픔을 동감해주는 것에서 그친다면 조언을 받고자 하는 사람 입장에선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원하는 답을 듣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이렇게 단순한 동감만을 필요로 했던 것이라면 그렇게 나 혼자 치열하게 고민하고 누군가에게 정성을 들여 편지를 써서 고민을 얘기했을까? 

'이렇게 해보세요. 그렇게 하는 것이 맞습니다.'

라며 확신을 가지며 어느 한 방향으로 조언을 해주어야 할까? 만약 그렇게 답한다면 조언을 받는 입장에서 오히려 상담자는 자신의 처지를 동감하지도 못하면서 이래라 저래라 쉽게 말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는 책에서도 종종 나오는 장면이다. 막연히 뮤지션을 꿈꾸느니 안정되게 생선가게를 이어받으라는 조언이나, 호스티스는 안좋은 직업이니 무난하게 사무직을 하며 평범하게 살라는 조언이 그러했다. 하지만 이들은 답장을 받은 즉시 화를 내며, 실은 이러이러하다면서 2차 고민편지를 보내게 된다. 책에서는 진심을 파악하기 위한 좋은 장치였던 것으로 포장되었으나, 현실에서는 그런 것들이 좋은 쪽으로만 흘러갈까? 보통은 '아, 저 상담자는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해. 얘기하는 건 헛수고일 뿐이야.' 라고 생각하고 다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일이 생길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위의 다섯가지 고민거리에 대해 자신이 상담자라고 생각해보고, 내가 상담자라면 이런 고민상담을 답변으로 해주겠다, 라는 생각을 해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재미 중의 하나가 되겠다. 

내 마음에 들어온 구절

"당신의 노력은 절대로 쓸데없는 일이 되지 않습니다. 마지막까지 믿어주세요.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믿어야 합니다." (p.148)

-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하는 행동들이 나중에 어떠한 결과로 되돌아 올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현재를 소홀히 하는지도 모른다. 비록 내가 지금 하찮은 일을 하고, 당장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 꿈을 이루기 위해 하는 모든 일들은 미래의 자양분이 된다는 것을 믿자.


"내가 몇 년째 상담 글을 읽으면서 깨달은 게 있어. 대부분의 경우, 상담자는 이미 답을 알아. 다만 상담을 통해 그 답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거야. 그래서 상담자 중에는 답장을 받은 뒤에 다시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많아. 답장 내용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이지." (p.167)

 -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 보는 일기에서조차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자기 혼자만이 볼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누가 보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자기검열을 한번 거친 뒤, 자신의 마음을 유리한대로 편집해 일기를 작성하게 된다. 편지상담의 경우에도 비슷하다. 자신의 고민을 적으면서도 으례 자기가 미리 내려놓은 답에 유리한 사실만 편지에 기록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편지상담은 2차, 3차의 편지가 필요하게 된다. 그 사람의 진심을 파악해야 제대로 된 상담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다시 나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과연 그게 진짜 이유인가?"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이것은 멋진 일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믿고 인생을 여한 없이 활활 피워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p.447)

 - 소설에서는 세 청년이 편지함이 시공간을 초월하고 있다는 것을 테스트해보기 위해 백지편지를 우편함에 넣는다. 그리고 과거시점에서 이 백지편지를 받아본 할아버지는 이 백지 고민상담 편지를 받고 고민 끝에 위와 같은 답변을 해준 것이다. 무성의하게 보일 수 있는 답변에 이렇게 진실하게 고민한 답변이 있을 수 있을까? 이 답변은 소설의 말미를 장식하는 문구이기도 하다. 작가가 독자에게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이것일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그려나가는 대로 펼쳐지게 되어 있다. 상담을 받는 것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나 스스로를 믿고, 믿는 바를 실천하는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오랜만에 소설 한 권을 읽고 마음이 따뜻해진 기분을 느꼈다. 최근 업무로, 가정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치유가 많이 된 듯 하다.

읽기 전에는 책의 두께에 놀라 이걸 언제 다 읽으려나 싶었는데,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흡입력에 빨려들어 금새 읽어버리고 말았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유명한 저서로는 <용의자X의 헌신> 이라는 영화로도 나와 유명세를 떨친 소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가에 한번 심취하면 그의 대표작 두세 작품 정도는 읽어보는 성향이라, 이 작가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책은 여러 등장인물들의 에피소드가 얽혀있고 복잡하게 구성이 되어 있어 영화보다는 드라마로 재현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봤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출판사
현대문학 | 2012-12-19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히가시노 게이고의 차기 대표작으로 손꼽힐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양력으로는 벌써 2014년이 지난지 한달이 넘었다. 

원래 1월초에 독서목록을 정리하고자 했으나, 빛나가 태어나면서 정신없었던 핑계도 좀 대야겠고, 2015년의 독서 방향에 대해 조금 더 정리를 해보고자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다.

사실, 아이를 낳게 되면 독서와 거리가 멀어질 것이란 인생 선배들의 조언에

내심 쫄아서 독서목표를 낮춰야 하나, 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역시 목표는 목표다. 읽을 시간이 없는 건 핑계고.

태블릿을 이용해 출퇴근시간에만 읽어도 작년에 읽은 만큼은 읽을 수 있을 듯 하다.

자투리 시간이야 만들기 나름이고.

어디가서 책을 좀 읽는 편이라 자부할 수 없는 소박한 양의 책을 읽었다.

그래도 한권 한권이 나에게는 소중한 마음의 양식이 되었다고 느끼기에

그 소중한 책들의 이름을 나열하고, 

감히 평점을 매겨보았다. 


* 정리 양식

 - 책 제목 (저자) : 읽게된 경로. 별점


1. 라스베이거스에 반하다. (유강호) : 1월 독서통신 ★☆

2. 생각이 많으면 진다. (임건순) : 2월 톡서통신 ★★☆

3. 미생 3권 (윤태호) : 3월 온라인교육 교재 ★★★

4. 광고효과와 매체계획 (이강원,박원기,오완근) : 개인 프로젝트 참고도서 ★★★☆

5. 열정이 있다면 가볍게 떠나라 (조승희) : 3월 독서통신 ★★

6. 구글 완전 활용법 : 업무능력 200% 업그레이드 (강재욱, 김응석 외3명) : 5월 독서통신 ★★★★☆

7. 비즈니스 트리즈 (한국트리즈협회) : 6월 독서통신 ★★★★★

8.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이병률) : 7월 독서통신 ★★

9. 조금은 삐딱한 세계사 (원종우) : 7월 리디북스 아이패드 ★★★★★

10.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 8월 리디북스 아이패드 ★★★★★

11. 나를 찾아줘 (길리언 플린) : 4월 책 구입 ★★★★

12. 칼의 노래 (김훈) : 8월 리디북스 아이패드 ★★★★★

13.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 9월 리디북스 ★★★★☆

14. 여자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 9월 제수씨 선물 ★★★☆

15. STOP SMOKING (알렌 카): 9월 독서통신 ★★★

16. 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델) : 책장에 있던 그냥.. ★★★☆

17. 시나공 토익 Part1,2,3,4 실전 STEP1 : 10월 온라인 교육 교재 ★★

18.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 11월 리디북스 ★★★☆

19. 애자일 셀링 (로버트 월런, 나빈 재인, 마이클 힐드) : 11월 프로젝트를 위한 구입 ★★★☆

20. 김기훈의 토익 숏컷 파트 5&6 : 11월 온라인 교육 교재 ★

21~23. 장길산 1~3권 (황석영) : 11월 리디북스 구입 ★★★

24. 모바일 트렌드 2015 (커넥팅랩) : 12월 보고서 작성용 구입 ★★★


2014년에는 나름 다양한 방면의 독서를 하고자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총 24권 중 

소설이 9권

경제/경영 4권

예술/대중문화 4권

어학 2권


나머지

자기계발, 인문, 역사/문화, 정치/사회, 컴퓨터/IT 분야는 각 1권씩이다.


역시 소설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고,

경제/경영이 뒤를 이었다. 

2014년에는 예술/대중문화 분류가 많이 늘었는데 여행과 관련이 깊었던걸로 보인다.


2015년 목표

아무래도 아이가 생겼으니 육아와 교육 관련 분야를 우선적으로 늘려야 겠다.

그리고 과학, 예술, 정치, 사회 분야를 고르게 읽어봐야겠다.

얇고 넓은 지식을 만들기 위한 2015년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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