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을 처음 봤을 때

청소년 필독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책이 바로 '데미안'이다. 중학교 시절, 필독서로 지정되어 나도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20년이 지나 다시 읽어 보니, 과연 내가 읽고 이해했던 그 책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심오한 철학적 내용이 담긴 책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책에 적힌 글자를 그 표면만큼도 이해를 못했던 것 같다.

내가 중학교때 읽고 느꼈던 것 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데미안'같은 나의 우상 찾기였다. 중산층 네 명의 가족의 첫째로 자라난 내 성장환경은 조금은 싱클레어와 비슷한 점이 있었다. 프란츠 크로머같이 나를 괴롭히는 아이가 있으면 부모에게 알리지 않고 나 혼자 전전긍긍했던 점. 나에게도 데미안과 같은 형이 있다면 크로머의 괴롭힘에서 벗어나고, 또래 아이들보다 성장한 의식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며 말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나에게는 데미안과 같은 우상을 발견할 수는 없었고, 나는 악의 세계에서 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내가 더 악인인 척 하는 불량한 사춘기를 보냈던 것 같다. 그 때의 나는 '권선징악'이라는 순수의 세계에서 벗어나 어른의 세계로 들어간다고 생각했었다. 이 세상은 나쁜 놈이 오히려 더 성공할 수 있는 사회고, 착하다는 건 바보같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데미안을 두번째 봤을 때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데미안에서 나오는 가장 유명한 말이다. 우리 모두는 알에서 나오고자 하는 새이며, 새가 진정한 새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그 새를 보호해주던 알을 스스로 깨야 한다는 말이다. 싱클레어는 부모가 모든 것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세계를 깨는 데 데미안의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 싱클레어는 이제 막 알에서 깨어났으나 본인은 유약한 정신으로부터 벗어나질 못했다. 이 즈음에서 싱클레어는 술을 마시며 방황하는 삶을 산다. 그리고 그 방황의 끝에서 다른 이들과의 관계를 통해 점점 더 구도자의 모습을 완성해 나간다.

내가 데미안을 두번째로 봤을 땐 대학생이었다. 교양으로 인문학 수업을 들으며 과제 비슷하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두번째 읽은 데미안에서는 청소년에서 갓 성인이 된 상태에서 부모의 보호를 '알'로 표현한 것을 몸소 체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첫 알을 깨고 나왔으나 나는 아직도 '대학'이라는 울타리에서 보호받는 어린 양이었음을 알았던 것은 덤이고. 하지만 중학교 이후 나의 성장은 겨우 여기까지였다. 내 자신에 대해 깊게 성찰하고, 진정한 내 삶을 만들어가는 것은 전혀 하지 못했다. 대학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사회에 던져졌을 때 나는 발가벗겨진 채 거리로 내몰린 아이처럼 부끄럽고,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는 것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스펙은 부모가 만들어준 허울이었고,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내가 읽은 책으로 만든 지성은 현실에서는 초라한 티끌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사회에 나오고 깨달았다.


(p.66)

누구나 이런 어려움을 겪는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인생의 분기점이다. 자기 삶의 요구가 가장 혹심하게 주변 세계와 갈등에 빠지는 점, 앞을 향하는 길이 가장 혹독하게 투쟁으로 쟁취되어야 하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의 운명인 이 죽음과 새로운 탄생을 경험한다. 삶에서 오로지 한 번, 유년이 삭아가며 서서히 와해될 때, 우리의 사랑을 얻었던 모든 것이 우리를 떠나가려고 하고 우리가 갑자기 고독과 우주의 치명적인 추위에 에워싸여 있음을 느낄 때 경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이 절벽에 매달려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지나간 것에, 잃어버린 낙원의 꿈에, 모든 꿈 중에서 가장 나쁘고 가장 살인적인 그 꿈에 한평생 고통스럽게 들러붙어 있다.


그리고, 세번째 데미안..

우리나라 나이로 서른넷. 어느덧 30대의 중반을 향해 가고 있다. 더 이상 원대한 꿈을 찾아 방황하는 나이도 아니고, 적당히 현실과 타협도 할 줄 아는 나이가 된 것이다. 하지만 타협을 '할 줄' 아는 것과 능수능란하게 밀당을 하는 것과는 엄격한 차이가 있다. 나는 아직 그러한 일에 닳고 닳은 노인이 아니다. 자칫 그런 것에 도취되어 내 자신을 기만하면 그대로 도태되어 버릴 것이다. 현실과 타협한다는 것은 도전의 반대말이요, 안주한다는 것의 동의어에 지나지 않다. 도전하지 않는 삶은 청춘이라 부를 수 없다. 어찌보면 세번째로 데미안을 읽게 된 이유는 내가 아직 청춘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 답을 찾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시 도전하는 마음으로 데미안을 읽었다.


자아를 찾는 여행

진정한 자아를 찾는다는 걸 요새 주변에 얘기해보면 그런건 10대때나 고민하는거라며 코웃음친다. 하지만 우리들은, 과연 자아를 찾았을까? 극 중 싱클레어는 초등학교부터 시작해 대학시절까지 자아를 찾아 고민하고 방황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데미안은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해주는 인물이다. 10대의 극중 인물을 통해 심오한 철학적 문답을 하기도 한다.


(p.76)

내가 물었다. "하지만 의지는 어떻게 되는 거지? 자유의지란 없다고 말했잖아. 그런데 다시, 오직 자기 의지만 확고하게 그 무엇에 쏟으면 된다고 말했지, 그러면 자기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고. 그건 말이 맞지 않잖아! 내가 내 의지의 주인이 아니라면, 내가 의지를 마음대로 이런저런 데로 향하게 할 수도 없는 것 아니야"

그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그건 내가 그를 기쁘게 할 때 그가 언제나 하는 행동이었다.

"네가 그걸 묻다니 훌륭해!" 하고 그가 웃으며 말했다.

"언제나 물어야 해, 언제나 의심해야 하구. 그러나 일은 아주 간단해. 예를 들면 그런 나방이 자신의 뜻을 별이나 뭐 비슷한 곳까지 향하게 하려 했다면, 그건 이룰 수 없는 일이겠지. 다만 나방은 그런 따위 시도는 안해. 나방은 자기에게 뜻과 가치가 있는 것,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 자기가 꼭 가져야만 하는 것, 그것만 찾는 거야.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일도 이루어지는 거지. (후략)"


꿈이 없는 청년들이 늘어났다고 세상이 떠든다. 그들을 탓할 수는 없다. 경쟁적인 학업 평가와 허울만 좋은 스펙 쌓기에 내몰린 그들에게 꿈을 꿀 시간과 여유조차 주지 못한 것은 이 사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꿈을 꾸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언제나 물어야 하고, 언제나 의심해야 한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질 것인지, 그 끝에 만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먼 미래의 원대한 꿈을 꾸는 것은 몽상가들이 하는 것이다. 현실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은 자기에게 뜻과 가치가 있는 것,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 자기가 꼭 가져야만 하는 것들을 먼저 이루고 얻어내야 하는 것이다. 꿈은 '무엇이 되는' 형태의 be동사가 아닌, '무엇을 하는' do동사로 구성되어야 한다. 무엇을 '하는 것'에서 가치를 찾는다면 그 가치는 그것을 행하는 순간 순간이 목표 달성의 연속이 될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되어 버리면' 그 이후가 없다. 



사랑은 쟁취하는 것

<자기 앞의 생>에서 모모가 하밀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사람이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살 수 있지, 슬프지만."

우리가 사랑없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슬프지만 살 수 있다는 하밀 할아버지의 말에 나는 동의하지 못할 것 같다. 나는 사랑없이는 이 세상을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을 사랑하고, 나의 아내와 딸을 사랑하고, 20년지기 친구들을 사랑한다. 그 외에도 나와 연을 맺고 같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한다. 나에게 사랑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그 모든 사람들이 없어져야 가능한 일이다. 불가능하기도 하겠지만,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난 사랑없이 살아갈 수 없다.


(p.200)

"사랑은 간청해서는 안 돼요." 그녀가 말했다.

"강요해서도 안 됩니다. 사랑은, 그 자체 안에서 확신에 이르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은 더 이상 끌림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끕니다. 싱클레어, 당신의 사랑은 나에게 끌리고 있어요. 언젠가 내가 아니라 당신의 사랑이 나를 끌면, 그러면 내가 갈 겁니다. 나는 선물을 주지는 않겠어요. 쟁취되겠습니다."


요새 젊은 층에서 쓰는 말 중에 '관심종자' 라는 것이 있다. 사람들의 관심(사랑)을 받고 싶어 무리한 일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소설 데미안에서 주인공 싱클레어는 그가 꿈꿔온 이상형을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바로 자신의 멘토인 데미안의 어머니다. 쉽게 말해 친구의 어머니를 사랑한다는 말이다. 우리의 정서상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사랑을 갈구하는 싱클레어에게 에바부인은 사랑은 간청해서 되는 게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라고 일러준다. 무리한 행동을 하면서까지 나를 봐달라며 간청할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매력적인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얘기다. 



책을 덮으며.

배가 대양을 건너기 위해 항해를 할 때, 처음 목표를 지정하고 끝까지 그 길을 고수하면서 가지 않는다. 끊임없이 지도와 나침반을 이용해 나의 위치를 찾고, 지금 뱃머리가 향하는 방향이 맞는지 점검하고 방향을 수정해가며 길을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풍랑에 휩쓸려 처음 목표를 세웠던 곳이 아닌 전혀 엉뚱한 지역에 도착하고 말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배를 항해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한번 정해둔 목표를 향해 앞만 보며 달려가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목표를 향해 내가 얼만큼 왔고, 지금 가는 방향이 맞는지 반성하고 다시 설계해야 한다. 배가 지도와 나침반을 이용해 점검을 한다면, 내 인생에 있어 '데미안'이라는 소설이 내 인생의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해주는 것 같다. 길을 잃은 것 같은 지점마다 데미안이 다가와 내 인생의 방향을 다시 잡게 해주었다. 언젠가 데미안은 다시 읽힐 것이다. 그 날에 지금을 돌아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

인문학으로 떠나는 가장 먼 여행.

보통 소설책은 막 불타오르는 연애의 감정으로 읽게된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고, 더 빨리 읽고 싶고, 손에서 내려놓기 너무나 아쉬운 그런 감정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뜨겁게 읽어내버리고 끝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 읽고 난 후에는 '정말 재밌었어' 하는 추억의 장으로 넘겨 곱게 갈무리를 하는 것으로 매조짓게 된다.

하지만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을 읽을 때는 마치 결혼 후 부모님을 찾아뵙는 마음으로 읽어냈다. 출가 후 간간히 찾아뵙는 부모님은 나이듦이 눈에 보여, 조금이라도 젊은 모습을 내 마음속에 각인하고픈 마음에 오래두고 천천히 보고싶고, 오늘 본 내용을 마음 속 깊이 새겨두고 싶다.

더 이상 신영복 선생님의 새로운 책이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기 그지없다. 일면식도 없는 분이지만, 그 분은 나에게 책을 통해 스승의 자리에 계신 분이다. 조금 더 일찍 그분을 알고, 살아 생전 그 분의 강의를 청강이라도 해봤음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후회가 드는 마음이다.



내 마음에 들어온 구절


(p.200)
우리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룬 것이 많을 수 없습니다. 꼬리를 적신 어린 여우들입니다. 그 실패 때문에 끊임없이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자위합니다. 한비자의 졸성이 그런 것이라 하겠습니다. 졸렬하지만 성실한 삶, 그것은 언젠가는 피는 꽃입니다. 빅토르 위고가 <레미제라블>에서 한 말입니다. "땅을 갈고 파헤치면 모든 땅들은 상처받고 아파한다.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꽃 피우는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사실입니다. 아름다운 꽃은 훨씬 훗날의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하물며 열매는 더 먼 미래의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씨앗과 꽃과 열매의 인연 속 어디쯤 놓여 있는 것이지요. 고전의 아득한 미래가 바로 지금의 우리들인지도 모릅니다. 그 미래 역시 아직은 꽃이 아니라고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동안 고전 강의는 다루지 못한 것이 많고 또 다루었다고 하더라도 미흡하기 짝이 없습니다. 고전은 태산이라고 합니다. 호미 한 자루로 그 앞에 서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습니다.


(p.209)
나는 같은 추억이라고 하더라도 당사자들의 마음에 남아 있는 크기가 서로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힘겨운 삶을 이어 왔을 그들에게 청구회에 대한 추억이 나의 것과 같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p.226)
<한 발 걸음>을 함께 읽기로 하겠습니다. 이 글의 핵심은 이론과 실천의 통일입니다. '한 발'이란 실천이 없는 독서를 비유한 표현입니다. 감옥에서는 책 읽고 나면 그만입니다. 무릎 위에 달랑 책 한 권을 올려놓고 하는 독서. 며칠 지나지 않아서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시루에 물 빠져나가도 콩나물은 자란다고 하지만, 사오십 페이지를 읽고 나서야 이미 읽은 책이란 걸 뒤늦게 알아차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책 제목마저 기억 못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독서가 독서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실생활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독서이기 때문입니다. 화분 속의 꽃나무나 다름없습니다. 이론과 실천의 변증법적 발전 과정에서 '실천'이 제거된 구조입니다. 실천이 없다는 사실은 한 발 보행이나 마찬가지입니다.


(p.258)
마지막으로 교도소는 인간학의 교실입니다. 우리가 가장 많이 공부하는 것이 '사람'공부입니다. 인생의 70%가 사람과의 일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에 대한 공부가 쌓여서 어느덧 인간에 대한 공부로 비약합니다. 사람 공부가 인간학으로 비약하려면 우선 수많은 만남과 공부를 통하여 내공을 쌓아 가야 합니다. 그것을 내공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란 많기도 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이 복잡하기도 하고, 보여주는 모습도 천의 얼굴입니다. 여러 경우의 사람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조금씩 공부하기로 하겠습니다.

(p.284)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쓴 이야기입니다. 결혼을 앞둔 여인이 친구로부터 그 사람과 결혼하기로 결심한 이유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 여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 사람과 함께 살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야." (I really conceived I could be a better person with him) 인간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정곡을 찌르는 답변입니다.


(p.324)
~만남으로 채워진 여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행은 떠나고 만나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종착지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 변화된 자기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비단 여행에서만 확인되는 것은 아닙니다. 생각하면 여행만 여행이 아니라 우리의 삶 하루하루가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소통과 변화는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의 존재 형식입니다. 부단히 만나고, 부단히 소통하고, 부단히 변화하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여행도 그렇고, 우리의 삶도 그렇고, 우리가 함께 만들고 있는 인문학 교실도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p.329)
여행은 '돌아오는 것'입니다. 떠나고 만나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 전 과정이 자기 변화로 이어지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것은 아무리 멀리 이동하고 아무리 많은 것들을 만났더라도 진정한 여행은 아닙니다.


(p.337)
오늘날도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고 이 발상의 전환을 강조하는 예로서 반드시 콜럼버스가 등장합니다. 여러분도 잘 아는 계란 이야기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계란을 책상 위에 세우지 못하는데 콜럼버스만이 계란을 세웠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단지 발상의 전환에 관한 일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계란의 모양은 어미 닭이 체온을 골고루 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모든 알이 그렇습니다. 어미 품을 빠져나가 굴러가더라도 다시 돌아오게끔 만들어진 타원형의 구적입니다. 바로 생명의 모양입니다. 이것을 깨트려 세운다는 것은 발상의 전환이기에 앞서 생명에 대한 잔혹한 폭력입니다. 잔혹한 폭력을 발상의 전환이라고 예찬하는 우리의 무심함은 무심함이 아니라 비정함에 다름 아닙니다.


(p.343)
인간의 자유는 카르마karma를 제거하는 일입니다. 부정적 집합 표상을 카르마라고 합니다. 표상(representation)은 인간의 인식활동입니다. 우리는 남산을 바라보지 않고도 남산을 표상할 수 있습니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떠올릴 수 있는 것처럼 대상과 격리되어 있지만 대상을 재구성하는 인식 능력입니다. 대상은 그에 대한 1개의 표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표상 즉 집합표상으로 구성됩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도 고유의 집합표상이 있습니다. 중세에는 마녀라는 집합 표상이 있었습니다. 마녀라는 집합표상은 부정적이란 점에서 카르마입니다. 이 카르마를 깨뜨리는 것이 달관입니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선언이 바로 '카르마의 손損'입니다. 카르마를 깨뜨리지 않고는 그 시대가 청산되지 못합니다. 봉전제의 집합표상이 청산되지 않는 한 프랑스 혁명이 성공할 수 없습니다. 
~~ 한사람의 개인은 물론이고 한 시대가 다음 시대로 나아가려면 부정적 집합표상인 카르마를 청산해야 합니다.

(p.418)

<자기 앞의 생>에서 모모가 하밀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사람이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살 수 있지, 슬프지만." 하밀 할아버지의 대답은 정답이 못 됩니다. 살 수 있다면 결코 슬프지 않습니다. 생각하면 우리가 생명을 저버리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한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것ㅇ느 기쁨만이 아닙니다. 슬픔도 사랑의 일부입니다. 마치 우리의 삶이 그런 것처럼.




나에게 맞는 책을 고르는 방법부터,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지, 그리고 그 책을 내 안에 어떻게 저장시킬 것인지에 대해 나만의 방법을 정리해 보았다.


1) 나에게 맞는 좋은 책을 고르는 법

 -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평생을 책만 읽는다고 해도 이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을 수는 없다. 그 중에서 어떤 책을 선택하여 읽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독서의 초보일 경우에는 주로 베스트 셀러로 올라온 책에 먼저 눈길이 가게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책이 좋은 책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선택했다 하더라도, 그 책이 나에게 꼭 필요한 책인지에 대해서는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베스트 셀러는 아주 가끔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한 정도로 검색해볼 뿐, 베스트 셀러에서 책을 고르는 경우는 매우 적다. 

나의 경우에는, 일단 질 좋은 서평이 많은 블로그들을 주로 둘러보고, 관심이 가는 책들을 'book wish list' 라는 메모장에 기록을 해둔다. 위시 리스트에 기록을 할 때는 언제, 어디서, 왜 이 책을 위시 리스트에 올려놓게 되었는지 기록한다. 관심이 간다고 해서 당장 그 책을 사거나 빌려 읽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이 리스트를 어느 정도 숙성시켜야, 진정으로 나에게 필요한 책인지 판가름할 수 있는 기준이 생기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위시리스트가 쌓이면 리스트에 나의 관심도를 기준으로 우선순위 정렬을 한다. 그리고 그 책을 사서 볼지, 빌려서 볼지에 대한 판단을 한다. 보통 1회성으로 읽고 치우는 소설책의 경우에는 사는 것보다는 빌리는 쪽을 선택한다. 반면 소장해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봄직한 책들은 사야할 목록으로 올려놓는다. 이렇게 시간을 두고 책을 접하는 루트별로 구분을 하면 필요한 책을 사는 데 들이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 책을 고르는 안목이 생기게 된다.

 

2) 책을 읽는 방법

 - 보통 소설을 읽을 때는 묵독으로 문장 단위로 끊어 읽는다. 그리고 극의 전개에 따라 흐름이 끊기지 않는 범위 내에 여러 문장을 한번에 읽기도 한다. 한편, 실용서의 경우에는 통독으로 빠르게 훑어서 읽는다. 그래야 나에게 필요한 부분을 재빠르게 찾을 수 있고,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시각을 만들 수 있다. 나는 인문학 계열 중에서 유독 철학에 대한 책을 많이 찾아보는 편인데, 철학 책은 글의 뜻을 잘 생각하면서 차분하게 하나하나 읽어가는 숙독의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같은 책읽기라도 필요에 따라 다양한 방법의 읽기 방법이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몇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편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처럼 깊은 생각을 하며 읽어야 하는 딱딱한 책을 읽을 때 말랑말랑한 느낌의 가벼운 소설을 같이 읽기도 한다. 그러면 딱딱하고 무거운 책을 읽는 데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반면에 이번에 읽게된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은 '메모 습관의 힘' 이라는 비슷한 내용의 책을 같이 읽기도 한다. 이 방식으로 책을 같이 읽어나가면 따로 2권을 읽었을 때보다 보다 깊이 있는 생각을 할 수 있게되고, 다양한 시각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된다.

장소에 따라 책을 다르게 읽기도 한다. 출퇴근 시간이나 점심시간 같은 자투리 시간에는 흐름이 짧게 끊겨도 읽기 편한 비소설을 읽고, 오랜 시간을 두고 책을 읽을 여건이 된다면 가급적 흐름을 끊지 않고 쭉 이야기를 전개시킬 수 있는 소설을 읽는 것이다. 


3) 필사 or 발췌요약

 - 유시민은 읽은 책을 발췌요약하면서 책의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메모 습관의 힘'을 쓴 신정철 작가는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와닿는 구절을 필사하는 방법을 권한다. 그리고 필사한 아래에 자신의 생각을 곁들여 메모를 하라고 한다. 두 사람은 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책을 읽으며 획득한 지식을 시간이 지나며 휘발시키지 않고 내 안에 가두는 방법을 말하고 있다. 항상 책을 읽고 난 뒤 시간이 오래 지나면, 책을 읽은 기억은 있는데 내용이 생각 안날 때가 생긴다. 책을 그렇게 읽으면 아무리 많은 책을 읽었다 하더라도 남은게 얼마 없기 때문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단 한권을 읽더라도 많은 것을 남길 수 있는 책읽기를 해야 한다.


이 포스팅에 도움을 받은 책


*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유시민)

* 메모 습관의 힘 (신정철)




꾸뻬씨의 행복여행

저자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출판사
오래된미래 | 2004-07-28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전 유럽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한 정신과 의사의 특별한 행복론 2...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서울도서관에서 회원증을 발급받고 처음으로 빌린 책이 바로 <꾸뻬 씨의 행복 여행> 이다. 몇 년전에 이미 베스트셀러로 유명세를 탄 책이고, 얼마 전에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 꾸뻬는 환자들을 상담하면서 세상이 발전할 수록, 정신적으로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왜 사람들은 점점 불행하다고 느끼게 되는걸까? 진정한 행복이란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라는 화두를 품은 채,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자신의 물음에 대한 답을 직접 구하기로 한다. 작가인 프랑수아 를레르도 정신과 의사이다. 어찌보면 이 소설은 를레르의 자전적 소설이기도 한 셈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분명 말랑말랑하고 가벼운 행복을 찾아 떠나는 여행기 쯤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책을 읽을 수록, 꾸뻬가 찾은 '배움' 의 명제가 주어질 때마다 나는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행복에 이르는 명제는 아주 간단하고 명료하다. 이를테면 '행복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다.' 이런 명제들이 나온다. (꾸뻬의 배움7) 이 명제는 세살 먹은 어린아이도 알 만한 사실이다. 큰 돈을 들이고, 많은 시간을 투자해 얻을 수 있는 배움치고는 너무나 단순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이를 역으로 생각해보자면,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이라는 것이 사실은 엄청나게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말과도 같게 된다. 행복은 바로 옆에 있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으로도 채워진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바로 옆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고 멀리 있는 것들만 바라보기 때문에 오히려 더 불행해지는 것이다. 그럼 나는 정작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얼마만큼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걸까 라고 자문하게 된다. 이 책의 묘미는 바로 거기에 있다. 내가 직접 세계 여행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행복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러 다니지 않아도 꾸뻬가 배우게 된 간단한 명제들로부터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 꾸뻬의 배움은 스무가지가 넘는 화두를 던진다. 그리고 나는 각각의 화두를 통해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P.32

여행을 떠나면서 운 좋게 비즈니스석을 타게 된 꾸뻬. 그리고 늘 퍼스트 클라스석을 타다가 비즈니스석을 타게 된 비비엥. 그 둘은 같은 자리에 앉았지만 행복의 질은 달랐다. 우리가 느끼는 불행은 나보다 나은 사람과 나를 비교하면서 찾아온다. 책의 한참 뒤에서 나오는 얘기지만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면서 행복을 찾는 사람도 있다. 과거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는가? 결국 우리는 남과 비교하는 것을 자제하고, 내 스스로 과거보다 진보한 삶을 살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그래야 행복해질 수 있다.



P.40

중국에서 만난 친구 뱅쌍은 꾸뻬보다 두배나 많은 시간을 일하지만 일곱배나 많은 돈을 번다. 3백만달러를 벌면 이 일을 그만둘 것이라는 뱅쌍. 고되게 일하는 지금은 행복하지 않을지라도 나중에 원하는 돈을 벌게 되면 행복할 것이라 믿고 있다. 미래에 행복할 것이란 믿음을 위해 현재를 담보잡혀 살고 있는 삶이다. 이 책에서는 행복의 가치가 미래가 아닌 현재에 있다고 얘기한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찢어지게 가난한 미혼모가 아이를 입양시키기로 결정했다. 이 미혼모는 지금 당장 아이와 떨어져 살아야 하지만, 이 아이에게는 현재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보다 나은 부모 밑에서 자라게 될 것이므로 나중에는 행복해질 것이란 판단을 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보아왔다. 입양된 아이가 얼마나 생모를 그리워 했는지, 그리고 자신을 버린 부모에게서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는지 말이다. 과연 그 입양된 아이는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의 행복은 지금 이 순간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해야 결국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하게 된다.

하지만 이와 반대의 시각을 가진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것도 예를 들어보자. 당신은 이제 주말을 맞이한 금요일 저녁이 좋은가, 내일이면 출근을 해야 하는 일요일 저녁이 좋은가?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에서 금요일 저녁이 훨씬 기분 좋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금요일 저녁은 고된 일주일을 마치고 몸이 힘든 상태이고, 일요일 저녁은 토요일부터 충분히 쉬어서 컨디션이 좋을 것이다. 사람은 지금의 컨디션보다는 미래에 쉴 수 있다는 기대감 또는 희망이 있는 금요일을 더 선호하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의 행복은 미래의 시점에 존재하게 된다. 



P.50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자들이 말했다. 걷다보면 너무 힘들어서 아무 생각도 안나더라고. 그리고 그렇게 걷다보면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나도 며칠 휴가를 내고 순례길을 걷듯이 그렇게 마음을 비워내고 싶다. 그렇게 하면 조금 더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을까? 올 해 나에게는 많은 시련이 있었다. 가족과 회사 모두 떠나서 어디 조용한 곳에서 명상을 하거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듯이 마음을 비워내고 싶다. 걸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될텐데, 과연 무슨 생각을 끊임없이 하다보면 마음을 비워낼 수 있게 되는 걸까? 11월에 지리산 둘레길을 탐방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 전까지 많은 생각을 해보면서 나의 정신 세계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작업을 해야겠다.



P.64

행복을 목표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꾸뻬가 산속에서 찾은 수도원의 노승이 얘기해주었다. 우리는 다양한 수단을 통해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었나? 삶의 목표는 다른 어떤 무엇인가이고, 그 목표를 이루었을 때 결과물이 행복이어야 한다는 말일까? 하긴, 추상적 명사인 행복은 목표설정에 있어 적합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목표란 것은 실재하는 무엇인가를 달성 또는 성취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겠지.

언젠가 이런 말을 본 적이 있다. 장래희망을 얘기할 때는 무엇이 되겠다~ 라는 Be동사보다는 무엇을 하겠다~ 라는 Do동사의 형태를 가진 말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의사가 되겠다'는 의사가 됨으로 해서 이미 꿈이자 목표를 이루어 버렸다. 의사가 된 이후의 삶에서 그는 삶의 목표를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세워야 할 판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의사가 됨으로 해서 꿈과 목표를 잃은 사람이 되고 만다. 하지만 '남들을 치료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삶을 살겠다' 라는 것이 목표가 된다면 남을 치료해야 하는 직업인 의사는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된다. 그리고 정작 의사가 되고 나서야 꿈을 지속적으로 이뤄낼 수 있는 것이다. 

행복을 목표로 여기지 말라는 것은 위와 같은 이유가 아닐까 한다. 추상적인 '행복' 자체를 목표로 두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과정에서 행복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게끔 사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닐까?


P.87

나의 가족에게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음을 아는 것이 행복이라면, 행복이라는 것은 어쩌면 이루기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족함이 없는 상태로 삶을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지 않을까? 재벌가의 아들들은 뭐가 부족하길래, 형제간의 싸움을 신면지문에서 다룰만큼 크게 벌이는 것인가? 가진 게 많다는 것이 부족함이 없음과 유사하지 않다는 말일까?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아도, 가족이 함께 할 집이 있고, 먹여 살릴 직장이 있어 부족함이 없다고 느끼는 이도 있을 것이고, 재벌처럼 많은 걸 가지고 있어도 남보다 덜 가지고 있다는 비교를 함으로써 부족함이 있다고 느낄 수 도 있다. '부족함이 없음을 아는 것'은 절대적인 경제 가치 상 부족함이 아니라 정작 내 마음의 그릇이 얼만큼 채워져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 


행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는 말. 나에게는 매우 해당되는 말이다. 지금보다 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떠나 우리 사회에서는 정작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청년들이 너무나도 많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좋아할 수 있도록, 그리고 나아가 그 길에서 직업을 찾고 그 일로 먹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구직을 하는 청년들이 많이 하는 고민 중 하나가 '좋아하는 일'과 '잘 할 수 있는 일'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결정하는 것이다. 소위 사회의 멘토라 불리는 이들 사이에서도 이 가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직업' 이라는 기준으로 생각해보자면 잘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사회에 나온 이들이 푸념처럼 하는 말이 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어도 그게 직업이 되는 순간 괴롭고 하기 싫어진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직업(창업이나 취직 모두에 해당됨)을 구함에 있어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은 비교적 남들보다 더 잘 할 수 있다는 의미로 생각해본다면, 잘 하기 때문에 직업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상당히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자신이 잘 해내지 못한다면, 그 직업을 선택한 것에 후회를 하고 일을 하는 내내 스트레스를 더욱 받게 될 것이다. 물론 잘 할 수 있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 가장 베스트 컨디션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면 나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것이다. 효율적인 업무 처리를 한 뒤, 여가시간을 활용해 좋아하는 일을 취미삼아 해보는 건 어떨까? 

정답은 없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업무 몰입이 잘 되고, 그래서 업무 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면 좋아하는 일을 하는게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미련이 남지 않을까? 좋아하지도 않는데 잘 하는 일을 취미 삼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P.93

행복은 집과 채소밭을 갖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생산수단(채소밭)을 갖추고, 생산물을 안정되게 소비할 수 있는 개인공간(집)이 행복에 꼭 필요한 요소이다. 전세난에 시달리고, 비정규직 일자리에 목매다는 우리 사회의 청년들은 과연 행복할까? 전세값 급등으로 인한 하우스푸어인 나도, 그리고 삼포세대라 불리는 우리 청년들이 행복에 필요한 요소를 가지지 못한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


좋지 않은 사람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에서는 행복한 삶을 살기 어렵다. 점점 극우화되어가는 우리 사회에서 독재자의 딸이 그 독재자의 후광에 힘입어 대통령이 되었고, 심지어 그렇게  대통령이 된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책임지지 않는 발언을 일삼는다. 말을 해도 듣지 않으며, 말을 하는데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다. 이 외에도 구구절절히 나열하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현 대통령이 좋은 사람이라고 보기엔 지금 언급한 말로도 이미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



P.126

행복은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오늘 간단한 결막염을 치료하고자 안과에 들렀는데 왠지 덜컥 겁이 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더 안좋은 일이 생겨 실명하게 된다면 어떨까?

실명한다면 일단 직장을 잃겠지,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 특히 한참 커나갈 우리 딸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너무 무서웠다.

결막염 외에 진짜 무서울 수 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안압이 높아 녹내장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사무실에 돌아와 녹내장을 검색하니 심하면 실명할 수도 있는 무시무시한 병이었다.

후~ 말이 씨가 된걸까? 일단 지금부터라도 내 몸을 아낄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겠다. 담배나 술과는 멀리하고, 눈에 좋다는 음식을 많이 섭취해야지.

일단 안좋은 얘기를 듣고 난 후라 그런지, 내가 지금 보는 이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 보인다. 내가 걷는 한걸음, 한걸음도 눈으로 보이기 때문에 걷는 것이고, 일을 하고, 아내에게 문자를 보내는 것도 눈이 보이기 때문이다.

꾸뻬는 노상강도에 잡혀 죽을 뻔한 위기를 겪으며 경이한 삶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행복해한다. 난 지금 볼 수 있음에 감사하며, 행복하다.



P.137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게 되면서 언젠가부터 나도 나의 가족을 나보다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매달 한정적인 월급으로 살아감에 있어 항상 경제적 행위는 선택과 양보로 이루어진다. 이 전에는 내가 선택을 하는 입장이었지만, 이제는 딸을 위해, 가족을 위해 내가 양보하는 입장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좀 더 검소하게 살면 모두가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P.167

평생동안 행복을 연구해온 전문가를 만난 꾸뻬. 그 학자에게서 행복이라는 가치를 측정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꾸뻬는 정신과 전문의라는 직업을 잠시 중단하고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찾기 위한 여행을 한다. 그것은 마치 구도자의 모습과 닮아있다. 실제의 생활에서 행복을 찾고, 그것을 일반화하여 하나의 명제를 이룬다. 그렇게 찾은 조건들을 실천하면 행복이라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P.189

근원적 행복.

행복에 대한 욕망이나 추구마저 잊어버리고 지금 이 순간과 하나가 되어 존재할 때 저절로 얻어지는 것.



P.190

진정한 행복은 먼 훗날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순간 존재하는 것이다.

64페이지에 나왔던 행복은 목표로 삼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라는 말에 대한 노승의 답변이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이며, 이 문장으로 소설을 끝맺음을 한다.



※ 나는 지금 이 순간, 행복한가?


#1. 나의 취미는 독서

책을 사서 읽고 모으는 것을 취미로 삼은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났다. 결혼하고 나서 서재 한편의 절반을 책장으로 꾸미고 책을 하나하나 모으는 재미도 쏠쏠했고, 아주 예전에 읽어 기억이 가물가물한 책들은 다시 꺼내어 읽어보는 재미도 있었다. 

보통 소설책은 한번 읽으면 다시 안읽게 되고, 경영서나 사회계열의 어려운 책들은 필요할 때 발췌독을 하거나 다시 읽어보곤 했다. 그래서 나에게 책장은 소중한 곳이다.


#2. 서재를 정리하다

하지만 최근에 딸에게 필요한 책이 점점 많아지면서 내 책들이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되었다. 



일단 최근 몇 년간 읽지 않았던 책들을 모아 알라딘 중고서점에 팔아버렸다. 그 때의 심정은 뭐랄까..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집안 형편이 어려워 내 자식을 남에게 입양시키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물론, 진짜로 그 정도겠냐만은.. 뭔가 아쉽고 허전한 마음이 크기는 컸다. 그래도 저것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



#3. e북의 발견

이제 책장은 딸에게 물려주고, 나는 나대로 마음의 양식을 채울 길을 찾아봐야겠다고 다짐했다. 2년전 태블릿이 생기면서 보기 시작한 e북이 있다. 나는 주로 리디북스를 이용했다. 왠지 책은 종이로 보는 것이 아직은 더 익숙하고 편하다. 그래서 많이 사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32권이나 되는군.



작년 가을쯤이었나, 도서정가제라는 것이 시행되었다. 예전에는 리디북스에서 50% 이상 세일하는 책들을 주로 사서 휘리릭 읽고 지나간 것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제는 리디북스도 할인율이 10%로 고정되어 있다. 종이책을 사는 것에 비해 메리트가 많이 없어졌다.



e북 리더기라도 사야할까 싶어 인터넷을 뒤졌다. 교보문고에서 나온 샘, 예스24를 비롯한 크레마 연합 서점들의 크레마 샤인, 중국의 보위에. 아마존의 킨들..... e북 리더기도 참 많다. 하지만 난 이미 태블릿을 가지고 있는데 추가로 e북 리더기를 구입할 만한 여유도 없고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이내 마음을 접기로 했다.


#4. 전자도서관을 발견하다!

e북 리더기를 사면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알아보던 중, 전자도서관을 알게 되었다. 수년 전 회사 앞에 있는 서울도서관에 카드만 만들어 놓고 한번도 이용해보지 않았는데, 그 시절엔 책은 모름지기 사야 하는 거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종이책만 빌릴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전자책을 대여할 수 있다니! 이런 IT강국 대한민국이 사랑스러워지는 순간이라니. 


#5. 서울도서관 회원으로 가입하다.

일단 서울도서관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가 회원으로 가입했다. 



서울도서관은 서울에 거주하는 서울시민이거나, 서울 소재의 직장에 다니면 회원증을 발급할 수 있다. 난 경기도에 살지만, 서울도서관 바로 옆에서 근무하는 서울 직장인. 그래서 일단 홈페이지에 회원으로 가입을 하고, 업무 중 짬을 내 서울도서관에 찾아갔다. 서울 도서관 정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앞에 계단이 있는데 계단을 올라 2층 우측으로 가면 회원증을 발급해주는 곳이 있다. 신분증과 서울 소재 직장인임을 증명할 수 있는 명함을 보여주니 그 자리에서 바로 회원증 발급!!




#6. 어떻게 빌리나?

서울도서관에서 도서를 대출할 수 있는 자격은 회원증 소지자다. 그리고 한번에 3권을 빌릴 수 있으며 14일동안 빌릴 수 있다. 대출 연장은 1회에 7일 연장이 가능하며 연체 시에는 늦은 일수 만큼 대출이 불가하다고 한다.



소장 자료를 검색해서 내가 원하는 책이 있는지 검색할 수 있다.  

나의 성향에 맞춰서 책은 소설 책으로, 그리고 한번 읽고나면 다시 읽을 필요가 없을 책들을 몇 개 검색해서 '책꽂이'라는 위시리스트에 저장을 해둔다. 그 중 하나를 일단 테스트해보기로 한다. 



'꾸뻬 씨의 행복 여행' 이라는 책을 골라 예약을 걸어두었다. 서울도서관에는 2권이 소장되어 있고, 모두 대여중이라 예약을 걸어두었다. 조만간 사기엔 좀 아깝지만 꼭 읽고 싶었던 책을 읽을 수 있게 될거라는 생각에 맘이 살짝쿵 설레기까지 한다.


#7. 어플을 설치하자.



내 폰은 안드로이드라서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서울도서관' 을 검색하자 바로 공식앱이 나타난다. 다운 ㄱㄱ



어플에 들어가 로그인까지 마치고 났을 때 메인 화면. 




아까 PC로 예약을 걸어둔 책을 확인해보자. 역시, 바로 나타난다.

우측 하단에 있는 전자책으로 넘어가보자.



바로 전자책을 뒤져볼 수 있는 곳이 나온다. 하하핫~


오늘 한 일은 일단 여기까지. 앞으로 서울도서관을 이용해 전자책을 빌려 읽거나, 내가 좋아하는 종이책을 빌려서 읽어야 겠다. 더 이상 내 서재에 쓸 데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책들은 이제 안녕. 9월달에 치를 자격증 시험만 끝나고 나면 원 없이 독서의 계절, 가을을 즐겨줄테니 조금만 더 참자.




줄거리

젊은 세 청년이 있다. 이들은 좀도둑질을 하다 나미야 잡화점에 잠시 몸을 숨기게 된다. 아무도 살지 않을거라 여겨졌던 그 집에 갑자기 편지가 들어오고, 그 편지에는 고민을 상담하는 내용이 적혀있다. 좀도둑질이나 하며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세 청년들 앞에 떨어진 편지.

과연 그들은 이 고민을 제대로 상담해줄 수 있을까?

교육학이나 심리학을 전공하고 전문 상담가가 되기 위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도 상담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헤아려주어야 하기 때문에 예민하고 민감한 일이다. 이론적인 상담기술은 전혀 배우지도 못한 이 청년들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은 느낀대로, 그리고 직설적으로 답해주는 것이었다. 

- 그런데 말입니다. -

이들의 조언은 뜻밖의 결과로 상담자를 감동받게 만들었다. 나미야 잡화점의 답장 (세 청년의 느낌대로, 그리고 직설적인..)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 이유는 상담을 듣는 본인들의 마음가짐이 좋았기 때문이다. ~라고 소설에서는 평가한다. 충분히 스스로 고민을 해본 뒤에 조언을 구하는 입장과 자기성찰이 결여된 불만토로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고민상담을 요청하는 이들은 대부분 자기성찰 끝에 잡화점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한다. 

본래 나미야 잡화점은 '나미야'라는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잡화점으로 나미야를 '나야미'(일본어로 고민을 뜻한다고 함. 일종의 언어유희를 보인다. 번역본이라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이런 구절이 종종 있는 듯 하다.)로 부르며 놀리는 아이들에게 장난스런 고민을 진지하게 상담을 해주다 정말 진지한 고민상담실로 바뀌게 되었다.

5개의 챕터로 나뉘게 되는데 이들은 모두 '환광원'이라는 고아원과 연결이 되어있고, 모든 챕터의 등장인물들이 연관성을 가지면서 복잡한 얼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얼개는 마지막으로 가면서 나미야 할아버지의 첫사랑이 설립한 환광원의 주인과의 연결고리를 뜻하게 됨을 알 수 있게 된다.

상담에 나온 고민들

1. 사랑하는 사람이 병에 걸렸다. 자신의 꿈인 운동을 포기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간호해야 할까요? 

2. 뮤지션이 꿈인 생선가게 아들. 아무리 노력을 해봐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데 뮤지션을 포기하고 생선가게를 물려받아야 할까요?

3. 유부남의 아이를 임신한 여성. 미혼모의 몸으로 이 아이를 낳아도 될까요?

4. 야반도주를 해야하는 부모님에 반대하는 청소년. 부모님을 따라가야 할까요?

5. 낮에는 사무직을, 밤에는 호스티스를 하는 여성. 성공하려면 어느 쪽을 택해야 할까요?


- 위의 다섯가지 고민들을 상담하는 것으로 이 소설은 전개를 펼친다. 어느 하나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다. 과연 나라면 뭐라고 상담을 해주었을까? 

'네, 그렇네요. 많이 힘드시겠어요.'

라며 아픔을 동감해주는 것에서 그친다면 조언을 받고자 하는 사람 입장에선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원하는 답을 듣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이렇게 단순한 동감만을 필요로 했던 것이라면 그렇게 나 혼자 치열하게 고민하고 누군가에게 정성을 들여 편지를 써서 고민을 얘기했을까? 

'이렇게 해보세요. 그렇게 하는 것이 맞습니다.'

라며 확신을 가지며 어느 한 방향으로 조언을 해주어야 할까? 만약 그렇게 답한다면 조언을 받는 입장에서 오히려 상담자는 자신의 처지를 동감하지도 못하면서 이래라 저래라 쉽게 말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는 책에서도 종종 나오는 장면이다. 막연히 뮤지션을 꿈꾸느니 안정되게 생선가게를 이어받으라는 조언이나, 호스티스는 안좋은 직업이니 무난하게 사무직을 하며 평범하게 살라는 조언이 그러했다. 하지만 이들은 답장을 받은 즉시 화를 내며, 실은 이러이러하다면서 2차 고민편지를 보내게 된다. 책에서는 진심을 파악하기 위한 좋은 장치였던 것으로 포장되었으나, 현실에서는 그런 것들이 좋은 쪽으로만 흘러갈까? 보통은 '아, 저 상담자는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해. 얘기하는 건 헛수고일 뿐이야.' 라고 생각하고 다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일이 생길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위의 다섯가지 고민거리에 대해 자신이 상담자라고 생각해보고, 내가 상담자라면 이런 고민상담을 답변으로 해주겠다, 라는 생각을 해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재미 중의 하나가 되겠다. 

내 마음에 들어온 구절

"당신의 노력은 절대로 쓸데없는 일이 되지 않습니다. 마지막까지 믿어주세요.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믿어야 합니다." (p.148)

-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하는 행동들이 나중에 어떠한 결과로 되돌아 올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현재를 소홀히 하는지도 모른다. 비록 내가 지금 하찮은 일을 하고, 당장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 꿈을 이루기 위해 하는 모든 일들은 미래의 자양분이 된다는 것을 믿자.


"내가 몇 년째 상담 글을 읽으면서 깨달은 게 있어. 대부분의 경우, 상담자는 이미 답을 알아. 다만 상담을 통해 그 답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거야. 그래서 상담자 중에는 답장을 받은 뒤에 다시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많아. 답장 내용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이지." (p.167)

 -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 보는 일기에서조차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자기 혼자만이 볼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누가 보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자기검열을 한번 거친 뒤, 자신의 마음을 유리한대로 편집해 일기를 작성하게 된다. 편지상담의 경우에도 비슷하다. 자신의 고민을 적으면서도 으례 자기가 미리 내려놓은 답에 유리한 사실만 편지에 기록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편지상담은 2차, 3차의 편지가 필요하게 된다. 그 사람의 진심을 파악해야 제대로 된 상담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다시 나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과연 그게 진짜 이유인가?"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이것은 멋진 일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믿고 인생을 여한 없이 활활 피워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p.447)

 - 소설에서는 세 청년이 편지함이 시공간을 초월하고 있다는 것을 테스트해보기 위해 백지편지를 우편함에 넣는다. 그리고 과거시점에서 이 백지편지를 받아본 할아버지는 이 백지 고민상담 편지를 받고 고민 끝에 위와 같은 답변을 해준 것이다. 무성의하게 보일 수 있는 답변에 이렇게 진실하게 고민한 답변이 있을 수 있을까? 이 답변은 소설의 말미를 장식하는 문구이기도 하다. 작가가 독자에게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이것일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그려나가는 대로 펼쳐지게 되어 있다. 상담을 받는 것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나 스스로를 믿고, 믿는 바를 실천하는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오랜만에 소설 한 권을 읽고 마음이 따뜻해진 기분을 느꼈다. 최근 업무로, 가정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치유가 많이 된 듯 하다.

읽기 전에는 책의 두께에 놀라 이걸 언제 다 읽으려나 싶었는데,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흡입력에 빨려들어 금새 읽어버리고 말았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유명한 저서로는 <용의자X의 헌신> 이라는 영화로도 나와 유명세를 떨친 소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가에 한번 심취하면 그의 대표작 두세 작품 정도는 읽어보는 성향이라, 이 작가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책은 여러 등장인물들의 에피소드가 얽혀있고 복잡하게 구성이 되어 있어 영화보다는 드라마로 재현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봤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출판사
현대문학 | 2012-12-19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히가시노 게이고의 차기 대표작으로 손꼽힐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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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모든 의미 있는 말들을 마음속에 새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작 메모를 실행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10년 동안 메모를 하라. 그러면 누구든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 있을 것이다." 

- 모든 혁신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지만,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실행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메모란 그 결과가 아주 극대화되서 나타나는 좋은 예시인 듯 하다. 우리의 머리는 순간 순간 많은 아이디어들을 떠올리지만 그것들은 이내 사라지고 마는 휘발성이 강한 존재이다. 그러한 작은 아이디어를 모아 편집하고, 주물러서 내 것으로 만들고 나면 나중에는 커다란 결과를 나에게 선물할 것이다. 나는 얼마 전 메모의 중요성을 깨닫고 몰스킨 노트를 하나 샀다. 독서노트로도 써보고, 일기로도 써봤다. 근데 블로그를 같이 운영하다 보니 손으로 적는 것에는 영 쉽게 손이 가지 않아 많이 적지 못했다. 앞으로 실행력을 더 키워 많은 메모를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메모는 결점이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메모 하나만으로 인간이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결점을 보완해준다면 굳이 마다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

- 나도 원래 메모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해봤자 학창시절 학습노트를 작성하는 것 이외에는 메모를 굳이 하려고 들지 않았다. 그러나 취업을 하면서부터 달라졌다. 학업을 할 때보다 많은 양의 정보를 보다 빠르게 처리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포스트잇을 활용해 메모를 하기 시작했고, 메모장을 하나 준비해 시간에 따른 메모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제 업무를 위한 메모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결점을 메우기 위한 메모, 내가 살아남기 위한 적절한 수단이 되어 주었다.


메모로 인한 나의 변화

메모에는 정답이 없다. 아무거나 떠오르는 대로 작성하면 된다. 쉽게 접근하라.. 이 책에서 가르쳐준 메모의 방법들이다. 내 관심사, 지금 막 떠오르는 것들부터 메모를 펼쳐 나가다 보면, 나무가 숲을 이루듯이 생각이 뻗어나갈 것이다. 메모는 여러 방면의 다양한 생각을 메모를 통해 수집함에 모아놓고, 수집함에 모아둔 메모들을 각자의 분류에 따라 정리를 하고, 그것들을 묶어서 하나의 커다란 생각으로 발전시킬 것이다. 

나의 메모는 업무와 개인적인 삶, 이렇게 크게 2가지로 분류될 것이다. 업무는 나의 업무능력을 보좌해주는 보조 기억력으로 사용되면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현시킬 수 있는 씽크탱크로 활용할 것이다. 그리고 나의 개인적인 삶은 좀 더 사유가 있고, 내실있는 자기 반성을 통해 오래 숙성시킨 와인처럼 깊은 맛을 내는 사람이 되는 것이 나의 목적이다.




한국의 메모 달인들

저자
최효찬 지음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 2010-02-10 출간
카테고리
자기계발
책소개
“성공한 사람들의 메모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대한민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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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여자 착한 남자

저자
이만교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3-08-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이만교는 문학에서의 새로움이 의심하기나 뒤집어보기를 통한 반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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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만교

이만교의 소설은 이 전에 "결혼은 미친 짓이다" 를 읽어보았다. 그 책을 읽었던 시점은 공교롭게도 결혼을 두 달 앞두고 였는데, 어쩌면 그 상황이 나로 하여금 그 책을 읽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이 전에 이만교의 소설은 하나만을 읽었을 뿐이지만, "나쁜여자 착한남자"를 읽어보니 그만의 특유한 문체가 익숙하게 느껴진다. 젊은 감각으로 남녀의 감정을 가볍게 터치하며, 농담인듯 진담인듯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들이 적재적소에 재치있게 들어가 있다.

간결하고 빠른 리듬을 가진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어, 책을 읽는데 속도가 붙었다. 그렇다고 감정선의 흐름이 끊김없이 끈끈하게 이어져 있어 다음장이 궁금하게 여겨지는 그러한 소설이었다. 이만교 작가가 만약 이러한 문체로 다른  책들도 썼다면 나는 기꺼이 그의 팬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나쁜여자 착한남자

주인공은 중년의 남자로 상처의 경험이 있는 싱글남이다. 죽은 아내로부터 나온 보험금 덕분에 여유있는 재력을 가지고 있는 이 남자는 회사에서도 중간관리자급으로 능력있는 남자로 묘사된다. 그런 주인공에게 같은 회사에 다니는 두 종류의 여자와 인연을 맺게 되는 것이 이 소설의 핵심이다.

그저 매력이라곤 "착한 것"만 가지고 있는 그녀, 그리고 젊고 성적 매력이 넘치는 그애. 사람들 몰래 그애와 사내연애 중이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 입사한 그녀는 이상하게 남자의 눈에 밟히는 존재가 되었다. 이상하다, 회사에서는 자기 실속 차릴 줄 모르는 '호구'이면서 심성이 착해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여긴다. 일이나 잘 하면 몰라. 게다가 그녀는 가정이 있는 유부녀이다. 

가지고 있어도 훅~하고 불면 멀리 날아가버릴 것 같은 그애와는 다르게 가질 수 없지만 그래서 더욱 가지고 싶게 만드는 그녀. 주인공은 이 둘 사이에서 아슬한 '썸'의 줄타기를 한다. 종국에는 이 세 명의 남녀는 결국 도덕적 한계를 넘어서고야 말게 된다. 이 즈음에서 작가는 비로소 하고 싶었던 말을 하게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선(善)과 악(惡)이라는 개념이 상황에 따라서는 뒤바뀔 수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이중적인 면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겉으로는 매너있고, 능력있는 착한 남자가 속에 감추어진 음흉한 괴물이 들어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이 소설의 말미에 나오는 아내에 대한 반전이야기에서 우리는 주인공의 내면에 있는 순수 악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글쎄, 이렇게 생각해보자고. 정신이나 육체나 정숙하기만 한 여자가 있다면 어떨까? 질색이지! 정신만 노골적인 애가 있다면? 그래, 졸라 약 오르지. 하하. 그럼 육체만 노골적인 아줌마 아저씨들은? 역겹지, 대부분의 인간들이 역겹지. 탐욕스러울 대로 탐욕스러우면서 정신은 점잖은 척. 하지만 그애는 안 그래. 정신도 발랑 까졌어. 그게 해방감을 줘.


그 외의 단편들.

이만교는 이 단편 소설집을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이 결코 달콤하고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듯 하다. 낭만이 있는 로맨스 소설을 기대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적잖이 실망을 주게 될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나이나 신분이 직장인의 30대인 나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많아 몰입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쁜 여자, 착한 남자'를 재밌게 읽었던 탓일까, 이후의 단편들은 마치 락밴드 정규집 테이프를 샀는데 타이틀곡이 들어간 A면이 아닌, B면을 들을 때 실망하는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 번지점프하러 가다'

주인공 그녀는 사랑에 대한 경험을 많이 해보지 못하고 결혼을 했고, 권태로운 감정에 쌓인 채 오늘을 살고 있다. 그런 그녀가 하루는 남편이 모르는 나만의 비밀을 하나 가지고자 하는데, 그것이 바로 '번지점프' 를 해보는 것이다. 짜릿한 번지점프를 하고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온다. 그렇게 지내던 중, 번지점프를 하는 곳에서 사진찍는 젊은 남자가 연락을 해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 남자를 만나러 가게 되는데. ㅋㅋㅋ 그 남자에게서 받은 사진은 번지점프를 하며 괴상한 표정을 짓고있는 자신. 그리고 그 남자는 사진만 전해준 채 떠난다. 그녀는 이것을 두고 강간당한 것보다 더욱 지독한 느낌이라고 표현하며 끝이 난다.

재미있다.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권태. 나도 결혼 3년차에 딸아이가 생기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찾아왔을지도 모를 권태로움. 그 느낌을 어찌나 잘 표현했던지, 마치 내가 권태로움을 겪고 있는 자신이고, 아내 몰래 짜릿한 비밀스러운 경험을 만들고픈 마음까지 생겼다. 


이 책은 사랑의 아름다움 이면의 다양한 감정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삶을 보다 풍요롭고 입체적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문화적인 체험을 직간접적으로 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은 유한하고, 시간적인 제한이 걸려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의 삶을 선택하게 되면서 자연적으로 우리가 선택하지 못했던 삶을 곱씹으며 후회를 하게 된다. 그런데 내가 선택하지 못한 삶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줄 길이 있는 것이다. 바로 다양한 문화적 체험을 해보는 것이다.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문화양식으로는 책이나 영화다. 사람들은 소설을 통해 타인의 인생을 살아보기도 하고, 내가 선택하지 못한 전공이 있더라도 그 분야의 전문가가 친절하게 설명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텍스트를 시각화해준 것이 영화이다.

문화를 통한 다양한 간접체험이 나의 인생을 보다 풍족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음에 우리는 문자를 만들어준 조상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문자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들은 우리의 삶을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나를 있게 만들어준 책들.

지금까지 30년이 넘게 살면서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들어준 책들은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그 중 손에 꼽아보라면 과연 어떤 책을 꼽을 수 있을까? 아니, 과연 나의 인생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책이라는게 존재는 하기나 했을까?

생각해보니 참 막연하기도 하고, 스쳐가는 책들 중 그 어느 하나 "이것이다!" 라고 자신있게 외칠만한 것들이 마땅하지가 않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는 성경? 글쎄다, 난 그리 독실하지 못한 천주교 신자다. 아니, 천주교 신자라는 타이틀도 부끄러울만큼 냉담중이다. 내가 읽었던 성경의 구절을 떠올려보면 그저 옛날 동화를 읽는 느낌 외에는 감동이 없다. 좋은 교훈이 있고, 서사가 있을 뿐이다.

사색의 시간을 충분히 가진 뒤에나 선택이 가능할 듯 하다. 내 인생의 책을 꼽는게 이렇게 어려운 일일줄이야..



아, 깜박잊고 놓친 문화 양식이 있군. 바로 음악이다. 가장 나의 곁에서 내 인생을 풍부하게 만들어주고 있는 친구인데. 이 메모를 쓰는 퇴근길 이 순간에도 내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 있고, 이어폰을 타고 음악이 흐르고 있다. 요새 조용하게 사색 즐기는게 취미가 되다보니 시끄러운 음악보다는 조용한 클래식을 많이 듣게 된다.

인류의 역사에서도 언어나 문자보다 음악이 더 먼저 발명되었다는 것에서 어쩌면 우리는 더욱 친숙함을 느끼는걸수도.



가족이라는 이름.

가족이 우리의 인생을 보다 풍부하게 만들어준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생물학적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보통의 범주라면 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부모님 밑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라게 된다. 그리고 그 자녀는 자라나 성인이 되면서, 자신이 평생 사랑하며 살아야 할 짝을 만나게 되며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된다. 서로 다른 가정에서 자라난 두 사람이 한 가정을 이루면서 많은 것들이 변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사랑의 결실을 그들의 아이를 갖게되며 또 다른 인생이 시작된다. 지금까지 모든 세상의 중심은 "나"라는 존재를 통해서 시작했지만, 자녀가 나오면서 이제 "자식"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나는 이제 막 그 3장을 열었다. 앞으로 가족이라는 단어는 또 나를 어떻게 다양하게 만들어줄지 참으로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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