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문구 덕후의 길로 접어드는 내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는 중이다.


나는 원체 글씨를 잘 쓰지 못하기 때문에 글쓰기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메모는 비교적 왕성하게 하는 편이다. 개인적인 생각을 쓰거나, 일기를 쓰지는 않지만 회사에서 업무를 하면서  사용하는 노트가 2개다. 하나는 회사에서 나눠주는 다이어리. 이 다이어리는 주로 회의용으로 사용된다. 또는 일주일의 시작에 있어 나의 to-do 리스트를 '공식적'으로 쓸 때 주로 사용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A5 사이즈의 줄지 노트다. 여기는 오만가지를 쓴다. 아이디어를 끄적거리기도 하고, PPT를 작성하기에 앞서 대강의 스토리보드를 그려보기도 한다. 또는 정말 스쳐가는 인스턴트 메모도 이 노트에 한다. 

다이어리에 쓰는 회의내용 등은 다시 보고 회의록을 작성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3색 볼펜으로 색을 구분해 사용한다. 몇 회차에 걸쳐 회의의 주제를 이어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날짜와 안건 등 제목도 꼼꼼하게 기록하는 편이다. 하지만 줄지 노트의 경우는 좀 다르다. 그냥 스쳐가는 생각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글씨도 겨우 나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쓰고, 참 멋없게 쓴다. 말 그대로 '초안'들이니까.



개인적인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올 해, 2015년부터다. 몰스킨을 하나 장만했고 거기에 독서노트도 쓰고, 일기도 썼다. 그리고 내년을 위해 두번째 몰스킨도 샀다. 문구 덕후의 시작은 여기서부터 시작이 된 것 같다. 몰스킨을 사면서도 이것저것 엄청 따져가며 골랐다. 무심코 서점에서 집어들었던 첫 번째 몰스킨은 검은색 무지 커버였다. 심플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나의 두 번째 몰스킨은 만화 심슨이 입힌 검은색이다. 나름대로 작은 변화를 준 셈이다. 그리고 노트 커버에 각인도 새겼다. 



뚱뚱한 3색볼펜으로 글을 장시간 쓰다 보면 손이 아프다. 손에 힘을 주어 글씨를 한자 한자 쓰다보니 오래 쓰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손에 힘을 빼고 슬슬 굴려가며 쓰다 보면 글씨체가 참 지렁이스럽다. 이번에 새로 산 몰스킨에 곁가지로 받게 된 싸구려 만년필에 눈이 갔다. 만년필은 볼펜과 달리 글자 하나하나에 힘을 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잉크가 흘러나와 글씨를 쓰게끔 되어 있다. 그리고 만년필 펜촉의 특유한 사각거림이 있어 필기감이 꽤 괜찮았다. 


나의 첫 번째 만년필은 'preppy'라는 일본 제품이다. 투명한 플라스틱 몸체를 가지고 있는 이 녀석은 겉모습이 일반 볼펜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만년필 촉이 달려 있다. 나의 A5 사이즈의 줄지 노트에 만년필로 글씨를 써보기 시작했다. 손가락에 힘을 빼고 잉크가 흘러나옴을 느끼며 사각사각 글씨를 썼더니 볼펜으로 쓸 때보다 글씨가 이쁘다. 비교를 해보기 위해 같은 글자를 3색 볼펜으로 밑에 다시 써보았다. 볼펜 글씨는 여전히 못났다.


만년필을 하나 사야겠다. 얼마 전에 몰스킨을 구입할 때는 아주 특정 제품이 정해져 있었다. 몰스킨 제품이고, 플레인 무지 형식이고, 사이즈는 라지. 내가 선택해야 할 것은 커버의 색이나 꾸밈 무늬 정도였다. 그래도 몰스킨을 구입하기 까지 2주일은 고민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사야 할 물건은 그저 '만년필' 일 뿐이고, 어떤 브랜드인지, 가격대도 설정하지 않았다. 


만년필에 대한 방대한 탐험이 시작되었다. 일단 나는 만년필에 대한 입문자니까 그렇게 값 나가는 것은 지양하기로 했다. 만년필로 유명한 몽블랑 같은 브랜드는 들고 다니면 폼은 좀 나겠지만, 실용적이지 못하다. 나는 실생활에서 글쓰기를 함에 있어 보다 편리한 펜을 찾는 것이다. 만년필을 구매하려고 여러 정보들을 알아보다가 알게 된 사실 몇 가지는. 첫째, 몰스킨과 만년필은 좋은 궁합이 아니다. 몰스킨은 종이가 얇아 만년필로 쓰면 뒤에 비침이 심하다는 것이다. 3색 볼펜으로 써도 비침이 살짝 있었는데 만년필은 매우 심한 듯 하다. 고민이 됐다. 몰스킨은 이미  샀는데.. 만년필을 포기해야 하나?


둘째, 만년필을 사용하기 좋은 노트는 따로 있다. 일본 미도리사의 MD노트나, 국내 제품인 복면사과 까르네. 만년필을 사용하는 자들에게 이 두 가지의 노트가 유명한 것 같다. 이 두가지 중에서도 특히 복면사과의 제품이 유명한 것 같다. 복면사과에서 사용하는 만년필이 사각거림의 느낌이 더 살아 있고, 비침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복면사과는 몰스킨보다 얇아서 쓰면서 한권 한권 채워나가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셋째, 몰스킨처럼 하드커버가 아닌 노트들은 가죽 커버를 애용한다. MD노트나 복면사과는 커버가 내지보다 좀 더 두꺼운 종이로 되어 있다. 구김이나 접힘에 있어 취약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가죽 커버를 별도로 구매해서 멋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가죽커버에는 '탄조공방' 의 제품이 가장 유명한 것 같다. 고풍스러운 디자인에 내부에 노트를 몇 권씩 끼워다닐 수 있게 디자인 되어 있다. 가죽이라는 소재가 그렇듯이 커버를 쓰면 쓸 수록 예스러움이 묻어나 더욱 멋지게 변한다. 


다시 내가 산 몰스킨을 바라보았다. 심플하지만 멋은 없다. 별 특징없는 모던한 양복을 입은 느낌의 몰스킨. 반면에 패셔너블하지만 전통의 멋스러움을 잃지 않은 느낌의 가죽커버를 입힌 노트. 그리고 만년필과의 궁합.


일단 몰스킨을 샀으니 후회없이 써봐야 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하지만 올 해처럼 띄엄띄엄 할 게 아니라, 되도록 많은 생각을 빠른 시간 안에 쏟아내어 글쓰기 실력도 좀 늘리고, 몰스킨을 끝내야 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곤 멋스러운 가죽커버를 입은 노트에 만년필을 쓸 것이다. 나중에 하나씩 구매를 하면서 포스팅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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