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여자 착한 남자

저자
이만교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3-08-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이만교는 문학에서의 새로움이 의심하기나 뒤집어보기를 통한 반성하...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작가 이만교

이만교의 소설은 이 전에 "결혼은 미친 짓이다" 를 읽어보았다. 그 책을 읽었던 시점은 공교롭게도 결혼을 두 달 앞두고 였는데, 어쩌면 그 상황이 나로 하여금 그 책을 읽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이 전에 이만교의 소설은 하나만을 읽었을 뿐이지만, "나쁜여자 착한남자"를 읽어보니 그만의 특유한 문체가 익숙하게 느껴진다. 젊은 감각으로 남녀의 감정을 가볍게 터치하며, 농담인듯 진담인듯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들이 적재적소에 재치있게 들어가 있다.

간결하고 빠른 리듬을 가진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어, 책을 읽는데 속도가 붙었다. 그렇다고 감정선의 흐름이 끊김없이 끈끈하게 이어져 있어 다음장이 궁금하게 여겨지는 그러한 소설이었다. 이만교 작가가 만약 이러한 문체로 다른  책들도 썼다면 나는 기꺼이 그의 팬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나쁜여자 착한남자

주인공은 중년의 남자로 상처의 경험이 있는 싱글남이다. 죽은 아내로부터 나온 보험금 덕분에 여유있는 재력을 가지고 있는 이 남자는 회사에서도 중간관리자급으로 능력있는 남자로 묘사된다. 그런 주인공에게 같은 회사에 다니는 두 종류의 여자와 인연을 맺게 되는 것이 이 소설의 핵심이다.

그저 매력이라곤 "착한 것"만 가지고 있는 그녀, 그리고 젊고 성적 매력이 넘치는 그애. 사람들 몰래 그애와 사내연애 중이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 입사한 그녀는 이상하게 남자의 눈에 밟히는 존재가 되었다. 이상하다, 회사에서는 자기 실속 차릴 줄 모르는 '호구'이면서 심성이 착해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여긴다. 일이나 잘 하면 몰라. 게다가 그녀는 가정이 있는 유부녀이다. 

가지고 있어도 훅~하고 불면 멀리 날아가버릴 것 같은 그애와는 다르게 가질 수 없지만 그래서 더욱 가지고 싶게 만드는 그녀. 주인공은 이 둘 사이에서 아슬한 '썸'의 줄타기를 한다. 종국에는 이 세 명의 남녀는 결국 도덕적 한계를 넘어서고야 말게 된다. 이 즈음에서 작가는 비로소 하고 싶었던 말을 하게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선(善)과 악(惡)이라는 개념이 상황에 따라서는 뒤바뀔 수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이중적인 면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겉으로는 매너있고, 능력있는 착한 남자가 속에 감추어진 음흉한 괴물이 들어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이 소설의 말미에 나오는 아내에 대한 반전이야기에서 우리는 주인공의 내면에 있는 순수 악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글쎄, 이렇게 생각해보자고. 정신이나 육체나 정숙하기만 한 여자가 있다면 어떨까? 질색이지! 정신만 노골적인 애가 있다면? 그래, 졸라 약 오르지. 하하. 그럼 육체만 노골적인 아줌마 아저씨들은? 역겹지, 대부분의 인간들이 역겹지. 탐욕스러울 대로 탐욕스러우면서 정신은 점잖은 척. 하지만 그애는 안 그래. 정신도 발랑 까졌어. 그게 해방감을 줘.


그 외의 단편들.

이만교는 이 단편 소설집을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이 결코 달콤하고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듯 하다. 낭만이 있는 로맨스 소설을 기대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적잖이 실망을 주게 될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나이나 신분이 직장인의 30대인 나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많아 몰입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쁜 여자, 착한 남자'를 재밌게 읽었던 탓일까, 이후의 단편들은 마치 락밴드 정규집 테이프를 샀는데 타이틀곡이 들어간 A면이 아닌, B면을 들을 때 실망하는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 번지점프하러 가다'

주인공 그녀는 사랑에 대한 경험을 많이 해보지 못하고 결혼을 했고, 권태로운 감정에 쌓인 채 오늘을 살고 있다. 그런 그녀가 하루는 남편이 모르는 나만의 비밀을 하나 가지고자 하는데, 그것이 바로 '번지점프' 를 해보는 것이다. 짜릿한 번지점프를 하고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온다. 그렇게 지내던 중, 번지점프를 하는 곳에서 사진찍는 젊은 남자가 연락을 해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 남자를 만나러 가게 되는데. ㅋㅋㅋ 그 남자에게서 받은 사진은 번지점프를 하며 괴상한 표정을 짓고있는 자신. 그리고 그 남자는 사진만 전해준 채 떠난다. 그녀는 이것을 두고 강간당한 것보다 더욱 지독한 느낌이라고 표현하며 끝이 난다.

재미있다.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권태. 나도 결혼 3년차에 딸아이가 생기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찾아왔을지도 모를 권태로움. 그 느낌을 어찌나 잘 표현했던지, 마치 내가 권태로움을 겪고 있는 자신이고, 아내 몰래 짜릿한 비밀스러운 경험을 만들고픈 마음까지 생겼다. 


이 책은 사랑의 아름다움 이면의 다양한 감정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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