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경제학과 교수인 라지 체티(Raj Chetty). 이 글은 체티 교수가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내용 중 일부를 발췌했다.



당신이 세명의 경제학자들에게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을 물어보면 세 가지 다른 대답을 얻을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난 주 노벨상 위원회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를 발표했을 때 우리는 이 말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됩니다. 왜냐면 세 명의 수상자 중 두 명인 예일대학의 로버스 쉴러 교수와 시카고 대학의 유진 파마 교수는 금융 시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 완전히 상반되는 의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만약 가장 권위있는 상을 받은 두 학자가 전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 무슨 과학이냐?”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노벨상 수상자들의 충돌하는 견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제와 관련된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서 과학적인 방법론을 통해 모델을 세우고 이를 테스트해야 한다는 경제학자들 사이의 확고한 합의입니다. 저는 어떤 질문에 대한 대답에 있어서 서로 다른 견해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경제학이 진짜 과학이 아니며 따라서 정책 결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견해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체티 교수는 이 컬럼을 통해 다양한 경제학의 과학적 실험을 사례로 들면서 경제학에서도 이용 가능한 데이터가 증가할수록 경제학은 더 경험에 의거한 과학적 분야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제학자들이 직면하는 근본적인 도전은 바로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어떠한 정책을 만들면서 그 정책이 경제와 사람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테스트해볼 수 있다면 우리는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히 알 수 있고 정책을 어떻게 향상시켜야 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테스트는 현실적으로, 그리고 윤리적 차원에서 거의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미친듯이 치솟는 부동산 가격을 제어하기 위해 국가에서 내놓은 정책이 마치 수학공식처럼 들어맞아 바로 부동산 가격이 제어가 될 수 있는가? 우리는 이미 이에 대한 경험적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반드시 명확한 경제 정책을 제시할 수 있었다면, 우리는 실패한 경제 정책을 경험으로 가지고 있지 않았겠지.




자, 다시 경제학은 과학인가? 에 대한 질문에서 다시 시작해보기로 하자.

앞서 체티교수가 예로 언급한 올 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였던 로버트 쉴러가 직접 기고한 컬럼을 통해 들어보기로 한다.



저는 올 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세 명 중 한명입니다. 수상자 중 한명으로서 저는 경제학이 화학이나 물리학, 그리고 의학과 같이 노벨상이 수여되는 다른 분야와 같이 과학이 아니라는 비판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이 옳은 것일까요?


경제학이 가지고 있는 한가지 특징은 우리는 근본적인 진리의 발견보다는 정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경제 관련 데이터의 유용성은 정책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할때만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경제학을 그것이 무엇을 생산해 낼 수 있는가에 따라 평가합니다. 그런면에서 본다면 경제학은 물리학보다는 공학(engineering)에 가깝고 실용적인 것에 무게를 둡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노벨상에 공학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직까지 노벨 공학상은 없습니다. 우리가 경제 정책에 중점을 둘 때 과학으로 분류되기 어려운 것들이 더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정치가 개입되고 정치적 입장은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질 수록 더 강화됩니다. 노벨상은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수를 쓰는 사람보다는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기 위해서 고안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노벨 경제학상(Nobel Prive for Economics)이 아니라 노벨 경제과학상(Nobel Price for Economic Science)라고 부를까요? 다른 분야들은 노벨 화학과학(chemical science)나 노벨 물리과학(physical science)이 아니라 그냥 노벨 화학상(chemistry)과 노벨 물리학상(physics)로 불리고 있는데 말이죠. 학문 분야에 과학(science)라는 이름을 붙이는 경우는 그 분야가 가진 불명예스러운 부분과 결별을 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치학(Political Science)이라는 단어는 18세기 말에 널리 쓰였는데 이 분야 학자들은 표를 얻고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당파적 행태를 보이는 사람들과는 달리 정치 현상 이면에 놓여져 있는 진실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과학이라는 말을 붙였습니다. 천문학(Astronomical Science) 역시 19세기에 널리 쓰이는 단어가 되었는데 그 목적은 점성술이나 별자리에 관한 고대의 믿음에 관한 연구와 분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대중들은 당파적 정치나 점성술에 더 쉽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이분야의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과학”이라는 타이틀을 필요로 했습니다.


경제학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경제학이 수학 방정식만 잔뜩 보여주고 통제 실험과 같은 과학적 방법론은 전혀 없다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물리학도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2004년 출판한 책(The Trouble with Physics: The Rise of String Theory, The Fall of a Science, and What Comes Next)에서 리 스몰린(Lee Smolin)은 물리학이 실험으로 확인할 수 없는 고고한 이론(초끈이론)에만 탐닉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피터 우잇(Peter Woit) 역시 2007년 출판한 책(Not Even Wrong: The Failure of String Theory and the Search for Unity iin Physical Law)에서 물리학이 수학식으로만 도배되어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저는 경제학의 모델이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원자를 대상으로 하는 물리학보다는 근사치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모델의 정당성 측면에서는 취약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마음을 바꿀 수도 있고 전혀 다른 행동을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제학에서 쓰이는 수학이 비판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거처럼 모두 속임수는 아닙니다. 경제학에 주어진 과제는 수학적 통찰력을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는 이 필드에 맞게 어떻게 잘 적용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최근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의 발전은 수학적 경제학과 근본적으로 충돌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학이 당명한 방법론적 문제들이 있지만 연구자들이 직면한 기본문제들은 다른 분야의 연구진들이 당명한 문제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경제학이 발전할수록 방법론과 근거는 풍성해 질 것이고 과학은 강해질 것이며 사기꾼들은 사라질 것입니다. (Project Syndicate)



두 경제학자들은 모두 경제학도 과학이라고 주장을 한다. 물론, 경제학을 과학으로 보기 위한 근거에 약점이 있음을 모두 언급, 그 약점은 동일하게 "인간"에 대한 학문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케팅 업무를 하는 나도 마케팅은 수학과 아주 밀접하다고 생각한다. SNS를 분석할 때 개개인의 성향등을 분석해야 하는 "미분"을 해서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기도 하고, 고객들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수집한 빅데이터를 활용해 "적분" 하기도 하니까.

그리고 상당한 노동량을 선사해주는 통계 분석 작업은 이미 다들 알다시피 수학이다.

학창시절에는 그렇게 수학과 과학이 싫었는데, 이제는 내가 스스로 대부분의 업무를 수학적으로 분석하고, 과학적으로 접근하려고 하고 있다. 



잔에 절반이 남은 물

프레임이란 과연 무엇인가? 에 대한 대답으로 누구난 아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어떤 병에 물이 절반 들어 있다.  이때 A는 "절반밖에 안 남았네."라고 하였고, B는 "절반씩이나 남았네."라고 했을 때 B는 A에 비해서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때 A와 B의 해석의 차이는 두 사람이 갖는 프레임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른 프레임

트버스키와 카너먼의 1981년 연구에서 같은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제시했을 때 다르게 해석되는 점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아시아의 질병에 관련된 문제에서 

"미국에서 흔하지 않은 아시아의 질병이 발병된다면 600명이 죽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처하기 위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법이 제안 되었다. 이 방법이 가져다줄 결과에 대해 과학적으로 정확한 것이 어떤 것인지 예상해 보시오."


첫 번째 그룹의 응답자에게 다음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였다.


프로그램 A: 200명을 구할 수 있다.

프로그램 B: 600명중 3분의 1의 확률로 모두를 구할 수 있다. 그리고 3분의 2의 확률로 아무도 구할수 없을 것이다.

72퍼센트의 응답자가 A를 선호하였고 28퍼센트는 B를 선호하였다.


두 번째 그룹의 응답자에게 다음 두가지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였다.


프로그램 C: 400명이 죽을 것이다.

프로그램 D: 3분의 1의 확률로 아무도 죽지 않을 것이고 3분의 2의 확률로 모두 죽을 것이다.

78퍼센트의 응답자가 D를 선호하였고 22퍼센트는 C를 선호하였다.



프레임과 정치의 관계

사실, 프레임을 활용하는데 있어 기업의 마케팅에서도 많이 이용하지만 정치에서도 이 "프레임"을 활용한 인간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낡은 구시대의 정치 대 희망찬 새 정치,

통합 대 분열,

이와 같은 프레임을 통해 사람들의 선택기준에 중요한 관점을 선점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2008년에 나라를 한번 떠들석하게 했던 광우병 파동을 들여다 보자.

 

2008년 5월 8일 정부가 일간지에 게재한 광고 내용이다.


‘국민의 건강보다 더 귀중한 것은 없습니다. 정부가 책임지고 확실히 지키겠습니다’


1.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견되면 즉각 수입을 중단

2. 이미 수입된 쇠고기에 대해 전수조사 실시

3. 검역단을 파견해 현지 실사

4. 학교와 군대 등 단체 급식에서 제외


정부가 쟁점 현안에 대해 국민에게 긴급히 알리겠다고 서둘러 광고를 낸 것으로 예산만 45억 원을 들였다. 이것은 광고일까? 공시일까? 정부 해명은 정부의 공고, 즉 공시가 아닌 광고라는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한다’는 약속이 아니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의견 광고였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신문 광고 나간 다음에 그해 9월에 전염병 예방법을 개정하면서 ‘즉각 중단한다’가 아니라 ‘중단할 수 있다’로 바뀌었으니 당장 조치를 취할 책임이 정부에게는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아무리 다시 읽어도 정부가 신문에 실은 내용의 문맥은 의견광고가 아닌 공시에 가깝다. 어렵게 따질 필요 없이 결론은 간단하다. 정부가 국민을 처음부터 속이려고 수를 쓴 것이다. 미국에게 협상에서 밀리고 국민은 안전하게 고쳐 오라고 하는데 기가 꺾여 말도 못 꺼내 보는 상황에서 촛불 정국을 피해가려고 꼼수를 쓴 것이다.


정부가 ‘광우병 발생 즉시 수입중단 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다면 국회가 전염병 예방법에서 ‘중단할 수도 있다’로 바꾸려 할 때 ‘정부가 국민에게 한 약속이 있어 그렇게 바꾸는 것은 곤란하다’고 반발했어야 한다. 어쩌면 ‘중단할 수도 있다’로 바꾸어 달라고 정부가 먼저 부탁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니면 최소한 당정 협의에서 만장일치로 잡음 하나 없이 합의를 본 것이다.


일단 광고에 홍보로 국민 반발을 피한 뒤 국민과 야당의 눈을 피해 법령을 몰래 바꿔 미국산 쇠고기는 어떤 상황에서라도 수입해 들여오는 걸로 조치한 것이다.





이걸 광고냐 공시냐를 놓고 따지고 들면 바보가 된다. 국민을 속인 책임자들을 색출해 책임을 묻고, 수입중단 방책을 마련해야 할 판에 광고, 공시를 놓고 다투는 건 프레임 조작에 말려드는 것이다. 정부가 연일 펼치고 있는 미국 소 광우병 발생에 대한 물 타기 내지는 초점 흐리기 프레임 조작을 살펴보자.


정부의 대책 발표 내용은 육우가 아닌 젖소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광우병이 발생하면 수입중단, 급식중단이라더니 광우병이 발생했지만 ‘젖소인데 뭘 그러느냐’로 말을 바꾸는 것이다. ‘미국에 더 이상 광우병은 없다, 있다’에서 ‘젖소냐 아니냐’로 슬그머니 초점을 옮기고 있다. 우리 정부의 발표는 당연히 미국 정부의 해명에 기초한 것이다. 미국이 원하는 프레임 속으로 우리 정부가 우리 국민을 끌고 들어가려 하고 있다. 


이렇게 초점을 흐리고 물타기 하는 교묘한 프레임 전환은 광우병 파동 때 이미 겪은 바이다. 광우병 위험이 상존하는 미국 쇠고기를 사다 먹을 것이냐 아니냐를 놓고 싸우다 어느 날부터 30개월령 송아지이냐 아니냐로 프레임이 바뀐다. 또 30개월 넘어도 뇌, 척수 등 특정위험부위만 아니면 드셔도 된다는 특수부위 논쟁도 벌어졌다.


( * 괴담을 활용한 프레임의 정치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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